패션계의 이단아 AVAVAV
해마다 선보이는 패션쇼에서는 브랜드의 철학과 더불어 디자이너의 독창성, 창의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런웨이를 이끄는 모델들에만 초점이 맞춰져 패션쇼를 진행했지만, 이제는 패션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 연출 등 쇼를 구성하는 부가적인 요소들에도 신경을 쓰며 풍부한 볼거리를 선사합니다. 이처럼 많은 패션쇼에서 브랜드의 개성을 드러내는 ‘새로움’을 보여주지만 왜 유독 아바바브는 논란의 중심에 서있을까요?
AVAVAV의 2023 S/S 패션쇼는 완전히 망친 쇼입니다. 모든 모델이 넘어지고, 미끄러졌기 때문이죠. 심지어 쇼 마지막에는 관객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등장했던 디렉터 본인도 넘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이는 모두 연출된 상황이었습니다. 아바바브의 디렉터 칼손은 이 쇼를 통해서 인생을 꾸며내는 사람들에게 ‘연출된 부’는 밝혀졌을 때 ‘넘어질 위험성’과 ‘부끄러움’을 동반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https://youtu.be/VUNqfawFyR0?si=kV6vDYlTUGu1osi5
‘No Time to Design, No time to explain’.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24SS 밀라노 패션위크 컬렉션입니다. 모델들은 허겁지겁 백스테이지에서 뛰쳐나오거나 옷을 입으며 워킹하는 등 시간에 쫓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디자인 코멘트를 그대로 노출시켜 미완성된 옷의 제작 과정을 보여주거나, 노란 포스트잇으로 둘러싸인 슈트를 입고 나와 무한한 To do list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칼손은 아바바브를 인수한 뒤부터 수많은 회의와 계약서에 둘러싸여 지내며 옷을 만드는 데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 좌절과 분노를 디자인에 녹여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한 패션쇼이다.’, ‘모델이 불쌍하다.’, ‘이게 행위예술인지. 패션쇼인지.’ 등 패션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 다수였습니다. 이처럼 실험적인 시도를 보여주는 아바바브 패션쇼는 왜 매 시즌 논란에 휩싸일까요?
바로 아바바브 패션쇼의 모습이 ‘낯설기’ 때문입니다. 패션쇼는 모든 것이 완전하고, 완벽한 상태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아바바브의 패션쇼에서는 ‘완벽한 불완전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루어진 완벽한 상황이지만, 그 상황이 보이는 모습은 매우 불완전한 형태를 띠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바바브의 패션쇼에는 일정한 형식을 깨뜨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파격적인 창조’라는 말이 매우 잘 어울립니다.
김정운 작가의 <에디톨로지>에 따르면 우리는 ‘창조 강박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이러한 창조적 사고는 일상의 당연한 경험들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됩니다. 매일 똑같이 출근하고, 퇴근하고, 참고, 인내해야 하는 삶의 굴레 속에서 우리는 삶에 한 치의 의심 없이 살아가곤 합니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에서 비롯된 의심은 기존의 생각을 재구조화하고 재구성해서 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아바바브의 디렉터 칼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쇼는 완벽해야 해?’라는 의심에서부터 그녀의 파격적인 창조가 시작된 것이죠. 화려하게만 보이는 쇼의 이면을 퍼포먼스로 선보였고, 자신의 매너리즘을 투영하여 파격적인 디자인과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패션쇼 자체의 틀을 깨버림으로써 우리가 알던 패션쇼를 낯설게 만든 것이죠. 이는 실용적인 패션을 선보이는 웨어러블 컬렉션 쇼가 아닌, 디자이너의 철학에서 비롯된 상상력과 창의성이 반영된 하이패션 컬렉션 쇼에서만 볼 수 있는 묘미가 아닐까싶네요.
이쯤에서 논란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최고의 찬사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논란은 주로 일반화된 관행에서 탈피하고자 했을 때 생기기 마련입니다. 수많은 논란 속에서 기존의 관행을 의심해보게 하는 것이 디렉터 칼손의 의도였을지도 모르죠. 패션계의 이단아, 아바바브는 또 어떤 신선한 충격으로 우리에게 찾아올까요? 아바바브가 패션계에 뿌린 변화의 씨앗은 과연 어떤 낯선 꽃을 피울지 더욱 더 기대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