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실을 달래주는 거짓된 향수
뜨거운 여름날, 차고지에서 하는 첫 키스. 여름방학을 맞아 내려간 할머니 댁에서 마시는 시원한 레모네이드. 그리고 다락방에서 찾은 어릴 적 러브레터. 왜인지 우리의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사소한 기억들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경험하기 어려운 추억들. 한국에 즐비한 아파트에는 차고지는 물론 다락방이 존재하기는 힘들죠. 그리고 할머니 댁에서 우리가 마실 수 있는 것은 레모네이드가 아니라 미숫가루가 아닐까요? 우리 머릿속은 허황된 노스탤지아를 추억하고 있습니다.
'노스탤지아(Nostalgia).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서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뜻하기도 합니다. 사회학자 프레드 데이비스(Fred Davis)에 따르면, 우리는 자아에 불안과 불만이 있을 때 과거가 떠오르고, 노스탤지아는 이런 부정적인 상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감정입니다. 즉, 노스탤지아는 과거를 무조건 지향하는 것이 아닌 현실의 결핍과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꺼내는 것이죠.
하지만 Y2K가 유행하는 현재, 우리가 그리워하는 과거는 우리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시간과 장소로 데려가 줍니다. 에디터 역시 Y2K 스타일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배기팬츠와 누드립을 좋아하고, '아침'과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를 즐겨 듣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해보니 에디터가 동경하는 것은 경험해 보지 않은 1990년대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경험해 보지 못한 시공간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신기한데요.
이 현상들은 '미디어의 등장'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미디어의 급격한 보급으로 인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정서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미디어 때문에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추억과 정보들이 증가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텍스트 속에서 경험한 적 없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들어진 시대는 우리가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습니다. 해당 드라마는 그 시절을 살아가는 가상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를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에게 막연한 동경을 갖게 합니다. 그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그 시절의 패션과 메이크업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늘어나며,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우리의 시대로 혼동하기까지 하죠. 1988년을 살아보지 못한 세대들도 콘텐츠를 통해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과 추억을 나누고, 새로운 추억을 쌓는 기회의 장을 미디어가 제공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추억하는 허황된 과거는 완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끄집어내는 과거는 1990년대와 2000년대가 섞여 있고, 미국과 한국, 일본의 과거 모습들이 뒤죽박죽 뭉쳐있습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얻게 된 소멸한 과거 정보의 파편을 재조립하여 새로운 이상향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거는 우리가 만들어 낸 허구의 시공간이며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결핍에서 도피하기 위해 찬란해 보이는 과거를 만들어 그 곳을 추억하며 현실의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어쩌면 기이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것을 그리워하는 것이 잘못된 행위는 아닐 것입니다. 현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낸 과거를 추억한다는 것이 어쩌면 가성비가 좋은 행위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말로 과거의 발자취만 좇는다면 발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것을 그리워 하면서도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 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