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나의 자랑, 나의 멍에
집 앞의 자목련이 만발했다. 봄마다 어김없이 피는 꽃이지만 늘 새삼스럽고 늘 누구에겐가 자랑하고프다. 이제 곧 목련 밑의 철쭉도 백합도 피어날 것이다. 철쭉 뒤에 가려진 군자란도 주황색 꽃대를 내밀기 시작했고 장미들도 새 줄기들을 내어 밀기 시작했다. 겨우내 정원 한쪽을 밝게 장식하던 분홍색 동백꽃은 이제 늦게 핀 몇 송이만 남아있다. 어제는 드디어 미루고 미루던 정원 일을 조금 했다. 군자란 사이에 시들은 잎들을 치워 주고 말라버린 덤불 장미의 가지들을 조금 잘라 주는 척했다. 장미들은 가시 때문에 정말 돌보기가 어렵다. 옆 집과 우리 집 사이를 가르는 울타리 나무-이름을 모른다-도 가지들을 조금 잘라 주었다. 이 울타리 나무는 옆 집 소속인데 그 주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사실 그 집 쪽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내버려 두면 울타리 밑의 내 수국들이 자라지 못할까 봐 염려하는 마음에 봄마다 가지치기를 한다. 옆 집 울타리 나무 사이에 블랙베리 덩굴이 숨어 있어서 내가 몇 달만 가보지 않으면 어김없이 우리 집 쪽에 뿌리를 내린다. 이 녀석들은 보이는 족족 잘라내야 한다. 너무나 번식력이 좋아서 우리 동네 근처 숲에는 블랙베리들이 엄청 자란다. 앞 뒷마당에 코스코에서 사 온 복합 비료도 뿌려 주었다. 할 일은 사실 산더미지만 고 잠깐 사이에 모기에게 왼팔을 네 방이나 물린 나는 이제 그만하자고 털고 들어왔다.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 그중에서도 새크라멘토 카운티에 산다. 여긴 여름엔 비가 안 오고 겨울에만 비가 온다. 그래서 모기는 겨울에 주로 날 괴롭힌다. 여름엔 너무 더워서 시원한 에어컨이 되는 실내에만 있어야 하고 겨울엔 모기 때문에 안에 있어야 하는데 난 왜 이렇게 공들여 집 밖을 가꾸나 싶다. 그렇다고 내가 많은 시간을 뜰에서 일하는 걸로 오해는 마시라. 그저 일 년에 몇 번 잡초 뽑고 여기저기 꽃나무들 가지치기하고 감나무와 배나무에서 열매 따고 두어 번 비료 사다 뿌리는 일이 전부다. 은퇴하면 정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 반대다. 정원사 아저씨는 이주일에 한 번씩 와서 잔디 깎고 가스바람으로 낙엽들을 모아 치운다.
오래전 한국에서 잠깐 다니러 오셨던 부모님은 내 잔디밭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 무어 쓸모없는 풀들을 물 줘가며 키운단 말인가.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고 키우면 얼마나 좋냐며 나무랐었다. 사실 나도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처음 이 집에 왔던 게 2004년 가을이었는데 이듬해 봄에 나는 기세 좋게 홈디포에 가서 상추며 토마토를 사다 화분에 심기도 하고 빈 땅에 심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의 날씨는 여름에 너무 고온 건조해서 아침저녁으로 돌보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했다. 게다가 우리 집 뒷마당은 내가 모르는 벌레와 동물들이 너무 많아 누구에겐 지도 모르게 다 먹혀버렸다. 오늘은 놀랍게도 다람쥐가 내 화분에서 자라는 몇 안 되는 실파를 쥐고 먹는 걸 목격했다. 아이들이 모두 성장해서 집을 떠난 후에 시간이 남아 돈 나는 깻잎에 도전했다. 한국 식품을 파는 가게에서 들깨 씨앗을 사다 화분 네 개에 뿌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촘촘히 싹이 난 깻잎들을 솎아 볶아 먹고 웬만큼 키가 크면 주로 위쪽에 달린 연한 잎들은 따다 쌈을 해 먹고 깻잎 김치도 하고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깨들은 이듬해에도 그 자리에서 다시 싹이나 삼 년째 깻잎을 원 없이 먹게 해 주었다. 작년엔 내가 여행 다니느라 집을 비운 날들이 많아서 깨들이 다 말라죽었고 어느새 거기 먹이가 있는 걸 알아차린 벌레들이 꼬여서 제대로 된 잎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씨앗이 달렸었다. 올해 다시 화분에서 싹이 올라오지 않을까 혹시나 하며 기다린다. 물이 없어 말라죽은 화분에서 다시 싹이 올라오길 기다리는 게 바보 같기도 한데 난 꼭 죽은깨들이 씨앗 몇 개는 떨구어 놓아서 다시 싹이 나올 것만 같은 것이다. 왜 다시 사다 심지 않냐고? 다시 죽게 될 것 같아서.. 올여름에도 또 장기 여행이 계획되어 있고 스프링클러를 화분까지 연장할 만큼 기술이 없고 그걸 위해 배관공을 부를 만큼 돈을 쓰고 싶지도 않고 등등 변명을 하자면 끝이 없다.
뒷 집에는 커다란 떡갈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여름엔 우리 집 뒷마당에 반나절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고마운 녀석이지만 가을이 되면 내 고마움은 원망으로, 봄이 되면 미움으로 바뀐다. 한 없이 쌓이는 낙엽은 그래도 가을 한 달만 치우면 되고 지붕 위에 쌓인 낙엽도 일 년에 한 번만 치워 겨울 우기에 빗물 통로가 막히지 않게 하면 된다. 그러나 봄이 되어 여기저기서 뿌리를 내리는 도토리들은 암세포 같아서 아주 조기에 발견해서 뽑아내지 않으면 뽑는 게 내 힘으론 불가능하다. 사실 지금도 뿌리를 뽑지 못해 가능한 한 땅 가까이 줄기만 자르고 또 자르는 애들이 장미 덤불 사이에 몇 개 있다. 떡 잎이 딱 세장 피어났을 때 그 밑의 뿌리는 벌써 30센티는 자라 있는 게 보통이다. 고백하자면, 사실 도토리를 뿌리째 뽑아서 그 밑의 도토리를 보는 게 내겐 희열 가까운 기쁨을 준다. 가끔 창 밖을 보다 도토리 떡 잎이 보이면 내 게으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당장 달려 나간다. 몇 년 전엔 내 돈 들여서 일꾼을 사서 도토리나무의 큰 가지 중 우리 집 쪽으로 뻗은 몇 개를 자르기도 했다. 뒷 집주인은 내가 나무 얘기를 하러 갔을 때 이 나무는 크지 않다부터 시작해서 가지 자르기에 매우 회의적이었지만 나무의 외관을 해치거나 안정성을 해하지 않는 만큼만 자르는 것에 동의해 주었다. 아무튼 이렇게 심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자라는 나무들은 골칫덩어리이다. 나는 얘들을 volunteer 라 부른다. 우리 집과 오른쪽 옆집 사이 그쪽 울타리 안에는 이렇게 자발적으로 자라기 시작한 느릅나무가 두 그루나 있다. 나는 제발 그 사람들이 이 느릅나무들의 위험성을 알아차리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얘들은 정말 쑥쑥 자란다. 내버려 두었다간 언젠가는 우리 집뿐 아니라 그쪽 하수관도 느릅나무뿌리에 막힐지 모른다. 그래도 내 땅에 자라는 게 아니어서 어쩔 수가 없다. 미국에선 내 땅으로 경계를 넘어온 나뭇가지는 마음대로 잘라도 되고 열매가 있으면 따도 된다. 집을 떠나 멀리 장기간 있을 땐 늘 앞 뒷마당에 어떤 volunteer 식물들이 자라고 있을까 잡초 떡갈나무 느릅나무의 어린놈들이 더 깊이 뿌리내리기 전에 뽑아야 한다고 세상 쓸데없는 하찮은 걱정을 걱정한다.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나는 나에게 사르코코사 한 다발을 선물했다. 이 애들은 작은 하얀 꽃에서 엄청난 향기를 내뿜는다. 이른 봄철에 작은 노동 끝에 내가 누릴 수 있는 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