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
내가 미국에 온 후 처음 의사가 필요했을 때는 누가 아파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여름학교에 등록하러 갔을 때다. 미국에서 학교를 옮길 때마다 혹은 새 학기마다 써내야 하는 서류에는 꼭 주치의의 이름과 전화번호 항목이 있었다. 이제 막 미국에 와서 의료보험도 없고 아는 의사도 없던 나는 다시 한번 한국마켓에서 받아 온 전화번호부 책에서 소아과 의사를 찾았다.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하고 주소대로 찾아갔더니 아무런 간판도 없었다. 잘못 왔나 싶어 몇 번 주소를 다시 확인하고 초인종을 눌렀더니 여직원이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의사사무실을 제대로 찾은 것이었다. 그날 만난 한국인 소아과의사는 우리 아이들의 키와 체중을 재고 청진기 한 번씩 눌러본 후 아이 한 명당 100 달러를 받았다. 우리가 버클리에 살았던 그 후 열 달 동안 아이들의 학교에 내는 서류에 그의 이름을 주치의 난에 쓸 수 있게 된 값이다. 다행히도 나의 아이들에게는 그 애들이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학교에서 주치의에게 연락해야 했던 일은 생기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에게 주치의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만나게 되는 의사라는 뜻이었다. 우리말의 병원도 미국에서는 Hospital과 Dr's office로 다르게 표현한다.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치의는 Dr's office에서 만나는 의사를 뜻한다. 미국에서 Primary Care Position이라 하는 의사는 지역사회에서 나의 건강 관련 전반을 관리하는 의사를 말한다. 이를 주치의라 번역하겠다. 미국에서 주치의는 내가 어떤 종류의 보험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내가 가입한 의료보험과 계약한 의사 중에서 새로운 환자를 받는 가정의학과, 내과 혹은 소아과의사를 찾아 진료 신청을 하고 일단 진료를 본 후부터 그 의사는 나의 주치의가 된다. 주치의는 일차적으로 내가 아플 때 찾아가는 사람일 뿐 아니라 일 년에 한 번씩 정기 혈액 검사의 오더를 낸다든가 미국의사협회에서 정해 놓은 지침에 따라 파상풍예방주사를 맞으라고 하기도 하고 대장 내시경검사를 의뢰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일하던 20년 동안 나는 일 년에 한 번씩 병원에서 하는 정기직원신체검사라는 걸 했다. 기본적인 혈액 소변검사, 방사선 흉부촬영, 나이 든 후엔 심전도 검사도 있었다. 시력, 청력, 혈압 체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미국에서 취업한 이십 년 동안엔 그런 걸 해 본 적이 없다. 그건 모두 각자 개인이 자기 주치의와 알아서 할 일이다. 이걸 미국에서는 "physical"이라고 한다. 일 년에 한 번 주치의와 만나서 하는 신체검사이다. Physical examination을 위해 하는 일 년에 한 번 하는 약속은 모든 의료보험에서 무료이다. Physical에서 하는 것 중 하나는 유방검진이다. 다행히 나는 이십 년 내내 주치의가 여자였는데 올해 보험을 바꾸면서 가능한 여의사가 없어 남자 의사로 주치의를 정했는데 다음 physical 때 좀 민망할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유방방사선촬영도 매년 하기 때문에 손으로 하는 유방검사는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매년 해야 하는 검사 중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유방방사선 촬영이다. 방사선 촬영을 의해 두 개의 판 사이에 한 줌도 안 되는 유방을 쥐어짜 집어넣고 사진을 찍는다. 나는 가끔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하고 그 방사선사가 사디스트 임에 틀림없다고 속으로 원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늘 주치의에게 혼날 때까지 유방방사선 촬영을 미루곤 했다. 최근에 지인들 중 유방암 치료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여럿 있다 보니 앞으론 제때 해야겠다 싶다, 나이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