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공립학교 5

미국 학교 학부모는 처음이라

by 새 날

2003년 봄, 우리가 미국으로 이민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나이를 물어보고 '딱 좋은 때'라는 말들을 많이 했다. 이민 가는 나의 불안한 마음을 위로하는 말들이었겠지만 그게 딱히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처음 버클리의 교육청에 가서 아이들의 다음 학기 등록을 위한 수속을 할 때 나는 첫째 아이를 한 학년 낮춰서 6학년으로, 둘째 아이는 1학년으로 등록하기를 고집했다. 교육청 직원은 매우 곤란해했지만 결국 나의 고집이 관통되어 아이들은 한 학년 씩 낮은 학급에서 2003년 가을 학기를 시작했다. 그때 내 마음은 아이들이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간을 1년으로 잡고 1년 낮은 학년에서 시작해야 영어를 늦게 배우기 시작한 데서 오는 불리함을 떨치고 대학입학 경쟁에서 제 실력대로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 삼수하는 경우도 수두룩한데, 지금 1년 늦추는 게 더 낫지 싶었던 것이다. 그런 나의 결정은 그 후 선생님들의 조언과 첫째 아이가 6학년 아닌 7학년으로 가길 원하는 바람에 새크라멘토로 이사 오면서 번복될 수밖에 없었다. 첫째 아이, 지은이의 6학년 담임 선생님은 마지막 인사차 만났을 때 '아이가 7학년으로 가도 우수한 축이다, 6학년에 있을 이유가 없다'라고 하셨고, 지은이가 반에서 친구로 사귀었던 다른 아이가 지은이보다 훨씬 어렸던 것도 마음에 걸렸다. 사춘기 때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하며 동갑내기들이 아닌 어린아이들과 친구 하게 하는 것도 아이가 제대로 성장할 어쩌면 더 중요한 기회를 빼앗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결국 아이들은 새크라멘토로 이사하며 7학년과 2학년으로 편입되었다. 그 결과 지은이는 7학년 교과과정에 넉 달 밖에 다니지 않았으나 7학년을 마치며 모든 과목에서 우등생 상장과 트로피를 받았다.

8학년에서 지은이는 생소한 수업이 하나 배정되었는데, 그건 AVID class였다. AVID class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만 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게 뭔지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 보았지만 뭔지 선명하지 않았다. 지은이는 이 수업시간을 좋아했다. 근처 도시에 있는 대학교 방문도 하고 그 수업 시간에 숙제도 할 수 있었다. 지금 검색해 보니 Gemini가 이렇게 답한다 ; AVID(Advancement Via Individual Determination) 프로그램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미국의 비영리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특히, 가정 내 대학 진학 전통이 없거나 저소득층, 소수 인종 학생 등 고등 교육에서 소외되기 쉬운 학생들의 대학 및 직업 준비를 돕는 데 중점을 둡니다.

지은이는 8학년부터 10학년까지 3년 동안 AVID class를 들었다. 지은이가 11학년으로 진학할 때 나는 카운슬러에게 AVID를 빼 달라고 했다. 그 과목은 대학에 갈 생각이 없는 아이들을 대학에 진학하도록 격려하기 위한 과목이라 지은이에게는 필요 없는 수업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AVID class는 대학 입학에 필요한 다른 학과목을 놓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하루 6과목 듣는 수업시간 중 한 시간을 3년이나 AVID에 뺏긴 것은 너무 큰 손실이었다.

지은이는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집 근처에 있어 걸어가면 5분 이내에 갈 수 있는 학교를 거부하고 10km는 떨어져 있는 고등학교에 가길 원했다. 친구들이 모두 멀리 있는 M 고등학교로 간다는 것이었다. 지은이의 담임선생님도 내게 지은이를 꼭 M 학교로 보내라고 당부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 학교에서 IB program을 하기 때문이었다.

다시 Gemini의 도움을 받아보자. : IB 프로그램(International Baccalaureate Program)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 3세부터 19세까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적, 개인적, 사회적, 정서적 기술을 개발하여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살고, 배우고,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IB 프로그램의 특징:

국제적인 교육: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 개발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교육 과정입니다. 현재 150개 이상의 국가에서 5,000개 이상의 학교가 IB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균형 잡힌 교육 과정: 학생들은 언어, 사회, 과학, 수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학습하며 폭넓고 깊이 있는 지식을 습득합니다.

비판적 사고 능력 강조: 단순 암기보다는 분석, 평가, 종합 능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둡니다.

탐구 학습: 학생 스스로 질문하고 조사하며 학습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장려합니다.

전인적인 성장: 학업 능력뿐만 아니라 사회성, 책임감, 봉사 정신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성장을 강조합니다.

엄격한 평가: 내부 평가와 외부 평가를 병행하여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합니다.

지은이는 IB program diploma를 받지 못했다. 9학년 수업시간 카운슬러를 만나러 갔을 때에서야 나는 지은이가 IB program에 들어가지 않은 걸 알았다. 알고 보니 중학교에서 IB program에 들어 있지 않는 학생이 고등학교에서 IB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름방학 기간에 시험을 보고 신청해야 했던 것이다. 지은이의 중학교 선생님은 내게 이런 설명을 전혀 해 준 적이 없었으니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나는 카운슬러에게 '중학교 선생님이 꼭 IB를 위해 이 학교에 가라고 했다. 시험을 안 봤더라도 GATE 학생으로 선정되었으니 이미 자격은 증명된 거 아니냐'라고 항의를 했다. GATE는 Gifted and Talented Education의 약자로 매년 주 정부에서 치르는 학생 평가 시험에서 상위 5%에 속하는 학생에게 주어지는 우수학생이라는 걸 확인해 주는 징표였다. 카운슬러가 '지은이가 GATE에 뽑혔다는 편지를 보여달라'라고 했다. 나는 '지금이라도 집에 가서 가져오겠다'라고 했다. 결국 카운슬러는 수업시간표를 보다가 우선 영어만 IB 영어로 바꿔보자고 했다. 수학은 어차피 지은이가 대수학을 하고 있으니 그대로 하고 11 학년이 되면 IB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우수한 아이를 우수한 학급에 넣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건 모두 내 잘못이다 싶었다. 당시 같이 일하던 곳에 베트남에서 온 간호사가 있었는데 자기 아이도 'M학교에서 IB program을 했었다. 그걸 위해 데이비스에서 새크라멘토로 이사를 왔다. 데이비스 선생님이 알려주어 시험도 치고 미리 준비했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땐 중학교 선생님을 원망도 했다.


일주일을 IB영어 수업을 들은 후 지은이는 다시 원래의 영어 수업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너무 어렵다고 했다. 8학년에서 9학년으로 넘어가던 여름방학 동안 나는 지은이를 마을 도서실에서 운영하는 읽기 프로그램에 등록했었다. 나는 지은이의 읽기 능력이 한글 읽기보다 영어 읽기에서 훨씬 쳐진다고 생각했고 그걸 보충할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그 무렵 지은이는 확고하게 반항했고, '방학은 놀아야 하는 시간'이라고 주장하며 40여만 원의 거금을 그냥 날렸다. 등록하기 전에도 지은이는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냥 무시하고 아이의 동의 없이 등록해 놓고 이러면 가겠지 했던 나의 판단 실수였다.

지금 확인해 보니 지은이는 대학에서 AP(Advanced Placement Class)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업을 12학년에 수학과 사회 2과목을 이수했다. 당시 나는 AP classs는 그저 우수한 학생들이 가는 수업이라고만 알고 있었지 그 중요도나 가치에 대해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했다. IB program은 전 과목을 통합하고 봉사활동 등 기타 활동까지 포괄하여 전체 학업과정을 구조적으로 짜고 인재양성하는 것이라면 AP class는 개별 학과목별로 대학 수준의 수업을 하고 평가하였다. 대학입학심사관들이 이 두 program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AP class를 많이 이수하면 대학 입학 시 유리한 건 당연하고 만약 그 과목이 대학에서 필요한 과목이라면 대학에 가서 다시 이수하지 않고 고교 AP class 학점을 그대로 인정해 주므로 대학학비를 절약할 수도 있다.

지은이는 고교시절 거의 공부하지 않고서도 늘 all A 학생이었다. 그때 나는 그걸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고교시절 좀 더 많은 AP class를 이수하는 것이 대학 입학 시 유리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느라 아이들의 고교성적표를 비교해 보니 7학년 때 미국에 온 지은이는 2학년 때 미국에 온 지아에 비해 고교 수업과정이 1년씩 늦어 있었다. 예를 들면 지아는 대수학 2를 9학년에서 배웠는데 지은이는 10학년에서 배웠다. 지아는 6학년부터 IB program 교육을 받은 반면 지은이는 두 과목의 AP 과정 이수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지은이가 미국에 1년 먼저 왔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만약 지은이가 사립고등학교를 다녔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만약 지은이가 미국 교육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엄마를 가졌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지은이가 버클리 대학을 못 가서 서운했던 나는 한국의 전형적인 일류병에 물든 엄마였고 아이를 이해하기보다 몰아세우는 엄마였으나 지은이는 이 모든 어려움을 뚫고 훌륭한 성인이 되었다. 지은이는 UCSC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서른도 되기 전인 6년 후 UCSB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을 졸업하기도 전에 지은이가 S 주립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다고 내게 전화했던 날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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