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혹은 짐 6

인터넷에 연결하기

by 새 날

우리가 미국에 왔던 2003년 TV에서 들었던 광고 중 지금도 가장 뚜렷이 기억하는 광고 카피는 'Do you hear me now?' 였었다. 잘 생긴 백인 남자가 길 건너편에서 걸어가며 손에 든 전화기에 대고 하는 말이다. 이 광고가 말하지 않는 반대쪽 이야기; 얼마나 통화가 안 되는 곳이 많았으면 이런 광고가 대히트를 치고 수년간 계속되었겠는가. 미국은 인구 밀집지역은 비교적 전화도 잘 되고 고속 인터넷망도 깔려 있지만 조금만 변두리로 가도 잘 안된다. 나는 V 회사의 통신서비스를 받고 있고 내 친구는 T회사의 통신 서비스를 쓰고 있는데 한 번도 끊김 없이 통화한 적이 없다. 5G는 대도시에서만 가능하고 변두리로 나가면 금방 전화기 신호가 LTE로 바뀌고 그마저도 마을이 없는 고속도로, 벌판이나 국립공원 같은 곳에서는 전화조차 할 수 없다.

집에서 쓰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캘리포니아의 수도인 새크라멘토 카운티에 속하지만 약간 외곽지대이다. 이 동네는 1960-1970 년대에 지어진 집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가능했던 최선의 인터넷 서비스는 C 회사여서 이곳에서 살아온 20여 년간 나는 충실하게 그 회사의 통신서비스를 사용해 왔다. 잦은 접속 단절에 화가 날 때면 다른 회사를 찾아보기도 여러 번 하였으나 다른 가능한 대체 회사가 없어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A 회사의 광고는 매주 왔지만 전화해 보면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아직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가능하지 않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C 회사는 통신 단절이 잦은 반면 샌프란시스코와 LA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내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보다 값은 훨씬 비쌌다. 인터넷 속도와 접속 장애 때문에 아이들이 가끔 집에 오면 재택근무를 하는 둘째와 화상회의를 자주 해야 하는 첫째는 늘 속을 끓였다. 나는 모뎀도 바꿔보고 서비스 용량도 최대한으로 늘려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한국에 가서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를 제대로 맛보고 온 뒤론, 은퇴하고 하루 종일 답답한 컴퓨터를 붙잡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재부팅을 해야 하는 나는 안 그래도 초고속인 나의 성정을 다스리기 힘들었다.

어느 날 지은이가 " 엄마, 스타링크로 바꿔 볼래요?" 했다.

"아니,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우리 동네에서도 스타링크를 쓸 수 있는지 알았으면 진작 바꿨지."

스타링크는 C통신사보다 월 25불이 비쌌고 안테나 값도 따로 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도 참을 만큼 참았고, 돈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다. 지은이가 스타링크에 신청하고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던 게 지난 1월이었다. 그런데 4월 어느 날 이메일에 낯선 스타링크 안내문이 올라왔다. 내 차례가 된 모양이다 하고 나는 내라는 돈을 냈다. 며칠 후 커다란 상자가 배달되었다. 나는 상자를 뜯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지은이에게 연락했고 지은이는 그 주 주말에 집에 와서 상자를 뜯고 설치를 시작했다. 여기서 문제가 터졌다.

안테나는 집 외부에 커다란 나무 등 장벽이 없는 곳에 설치해야 했고 모뎀은 전기 코드를 꽂을 수 있는 곳에 설치해야 했다. 우선 안테나는 뒷마당에 놓고 케이블 연결은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살짝 열어둔 채로 선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모뎀과 컴퓨터를 연결했다. 우리는 안테나를 지붕이나 외벽 어디에 설치할 것인지 케이블은 어느 곳을 통해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 올 수 있는지를 놓고 다퉜다. 지은이는 창문이나 문을 다 닫지 않고 그냥 살짝 열어 두면 된다고 했고 나는 그건 임시방편이니 전문가를 불러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기존의 C회사 케이블이 들어오던 벽에 만든 구멍으로 새 케이블 선을 들어오게 하기를 원했는데 그러려면 기술자를 불러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은이는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다툼은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기술자, 앞 집에 살고 있는 전기기술자 아저씨가 자기는 못한다고 하는 바람에 나의 패배로 끝났다.

안테나를 어떻게 설치해야 하나 검색하다가 나는 처음부터 설치서비스를 같이 주문했더라면 스타링크에서 기술자가 와서 설치했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이미 안테나가 와 있어서인지 이젠 설치서비스 신청이 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지붕에 추로 고정하여 안테나를 얹어 놓는 방법으로 설치하기로 하고 장비를 추가구매 했다. 지은이는 그다음 주 주말에 다시 내 집에 와서 벌벌 떨면서도-그 애는 자기가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한다- 지붕 위에 올라가 안테나 설치를 마쳤고 케이블 선은 주차장 뒷문 문틈으로 통과시켜 주차장 안에 모뎀을 두는 걸로 해결했다. 장비 속에는 선을 고정하는 클립과 나사 못이 있었고 우린 나사못을 벽에 박지 못해서 일반 못을 간신히 외벽에 두어개 박아 고정한 후 나머지 선은 찍찍이를 벽에 붙이고 케이블 선이 그 위로 지나가게 한 후 다른 찍찍이로 그 위를 덮어 붙여서 고정시켰다.

지은이는 와이파이가 없는 내 낡은 컴퓨터를 대체할 새 컴퓨터를 주문하고 새 컴퓨터가 도착하자 내가 주로 사용하는 몇 개 프로그램까지 로그인하여 내가 다시 어려움 없이 스크린을 즐길 수 있게 도와주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컴퓨터는 커다란 상자 크기였는데 새로 산 컴퓨터는 작은 탁상시계만 해서 난 깜짝 놀랐다. 압축된 컴퓨터 사이즈가 신기술의 발전을 웅변하는 것만 같았다.


나이 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독립성을 잃고 자신이 누군가의 짐이 되는 것일 것이다. 나는 이번에 인터넷 통신사를 바꾸고 컴퓨터를 바꾸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의존적이었다. 가족 중에 도와줄 젊은이가 없는 사람들은 이런 어려움들을 어떻게 뚫고 나갈는지 모르겠다. 나는 평균적인 미국인들과 비교해서 절대 전자 기술 정보에 뒤떨어지는 건 아니라고 자부했었다. 퇴직하기 전 직장에서 나는 대체로 다른 동료 직원들의 컴퓨터 관련 업무를 도와주는 편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이 신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독자적으로 살아가기는 오래전부터 불가능했다. 프린터만 일을 안 해도 아이들에게 전화해서 해결 방법을 물었고 서류 파일을 업로드해야 할 때도 도움이 필요했다. 요즘엔 여행을 가려해도 여권을 업로드하고 얼굴 사진을 업로드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사진의 크기와 용량을 맞춰야 할지 몰라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내가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속도는 달팽이인데 신기술이 변화하는 속도는 독수리 날 듯한다.

내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도움을 받는 걸 그냥 당연히 여기고 받아들여야 할지 내가 아이들에게 짐이 되는 것이 단지 컴퓨터 관련 기술적인 것뿐일지.... 어쩌면 흐르는 시간의 길이가 자랄수록 아이들에게 지우는 짐의 무게도 커져만 가는 것 같아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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