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ty college
내가 병원에 취업하여 일하기 시작한 후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무척 나이 든 신규 간호사들이 입사하는 것이었다. 한 분은 50이 넘은, 반백의 아저씨였는데 그때 막 간호사 면허를 따고 입사하여 일을 시작했었다. 그분은 간호사가 되기 전에 목수로 일을 했었는데 community college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간호사가 된 경우였다. 다른 한 분은 경찰관일을 하다가 간호사로 직업 변경을 하셨다. 이런 직업 변경을 가능케 하는 나라가 미국이고 그런 재교육의 기회를 줄 수 있는 곳이 community college이다. Community college는 굳이 한국말로 번역하면 전문대학교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실체는 상당히 다르다. 한국에서 전문대학은 다른 대학들처럼 입시철에 똑같이 응시하고 합격 여부가 결정되지만 미국의 는 약간 그 성격이 다르다. 때로는 community college 한국의 학원 같은 역할도 하고 때로는 4년제 대학을 가기 전에 기초 공부를 하며 자신의 진로를 탐색한 후 4년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하기도 한다. 새크라멘토에서 community college에서 간호학을 공부하려면 접수 후 2년 정도 기다려야 하고 3년 과정 중 반정도가 탈락한다고 한다. Community college에 입학하는 건 성적 순이 아니나 입학 후 따라가지 못하면 탈락하는 것이다. 다만 간호학과 수업을 시작하기 전 요구되는 기초 과목들을 먼저 수강해야 한다. 내가 본 간호사들 중에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후 community college에서 2년간 더 공부하여 간호사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생물학을 전공한 후 간호학을 공부할 때에는 공통 학과들이 있어 이수 학점이 인정되므로 공부하는 기간이 단축된다.
나의 community college 경험은 처음 버클리에서 새크라멘토로 왔을 때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아직 영주권 획득에 필요한 영어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상태여서 영어 공부를 계속해야 했다. 새크라멘토에는 버클리처럼 다양한 어학원이 없었고 K어학원 한 곳이 있었는데 교통도 불편하고 시간도 잘 맞지 않았다. 누군가 community colleage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학습과정이 있다고 하여 나는 집 근처에 있던 community college에 가서 수업 신청을 하고 level test도 받았다. 결국 무엇 때문에 내가 community college에서 공부하기를 포기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level test 후 English Learner Class로는 입학하지 말라고 권유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다음 community college를 찾아갔던 건 아이들의 방과 후 혹은 여름방학을 보람되게(?)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온 간호사 중 한 분으로부터 그 집 아이들이 여름방학 동안 community college에서 수학과 제2외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의 아이들은 Community college를 가는 행운을 누릴 수 없었는데 수강 신청이 시작되자마자 신청해도 이미 꽉 차서 대기 순번을 받기를 두 번 정도 한 후엔 더 시도하지 않았다.
내가 몇 달간 community college에 다닌 건 동료간호사 중 한 분의 경험과 미국 이민 생활의 여정을 듣고 '나도 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녀는 나이지리아에서 홀로 미국에 와서 community college에서 공부하여 호흡치료사가 되었다. 호흡치료사로 일하며 다시 community college에서 공부하여 간호사가 되었고 그 후에는 간호사로 일하며 다시 community college에서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여 자격을 딴 후 집을 샀다. 당시 공인중개사 수수료가 보통 집값의 6%이니 40만 불짜리 집을 산다면 2만 4천 불을 벌고 집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공인중개사로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집을 사고팔 때 수수료를 벌기 위해 공인중개사가 되었던 것이다. 집을 산 후 그녀는 해외에서 사 온 옷들을 온라인 마켓에서 파는 일을 하며 부수입을 올린다. 천재적인 그녀는 매년 매상이 세금을 내야 하는 한계점에 다다르면 온라인 마켓을 폐쇄한다. 아무튼 그녀를 존경하는 마음이 나도 해보자로 변경되어 둘째 아이가 대학을 간 후 혼자 남은 나는 community college에서 공인중개사 과정을 시작했었는데 결국 한 과목 수강 후 그만두었다. 왜 그만두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데 아마 40시간 정도의 현장 실습이 필요했는데 그 걸 도와줄 공인중개사를 찾지 못했고, 공인 중개사 면허를 딴다 하더라도 유지하기 위해선 매년 수백 달러의 회비를 납부해야 해서 '뭐 굳이' 하는 마음이 작동했던 것 같다. 더욱이 나는 집을 팔고 살 계획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한 학기 수업은 매우 가치 있는 경험으로 내가 몰랐던 많은 법적 용어와 법률 지식을 배웠다. 당시 수업은 야간에 실시되었는데 대학 강의실 대신 근처의 고등학교 교실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Community college는 아직 자신이 무엇을 전공할지 확신이 없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지은이의 고교 친구 중 한 아이는 community college를 다닌 후 버클리대학의 물리학과에 편입한 경우였는데 이렇게 하면 2년 동안 학비와 숙식비까지 크게 절약할 수 있다. Community college의 학비는 다른 4년제 대학들과 비교하여 매우 저렴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학생은 고교 졸업 시까지 전혀 미술 공부를 하지 않다가 community college에서 1년간 미술을 공부한 후 다음 해 유명 미술대학에 입학하기도 하였다. 그 학생에 따르면 미술대학은 편입이 거의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한 학기에 몇 학점을 이수하느냐는 본인의 선택이고 선택한 과목 수에 따라 등록금이 달라진다. 일하면서 대학을 다니는 많은 학생들은 한 학기에 듣는 학점 수를 줄여 한 학기에 내야 하는 학비를 줄이면서 대학을 4년이 아니라 5년 6년 다니는 경우도 있다. Community college에서 수업 등록은 위에서 말한 데로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정규 대학에 편입하기 위한 학점들을 모두 따서 2년 후 편입하고 2년 후 졸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많은 경우 2-3년을 Community college에서 공부한 후 4년제 대학에서 졸업하기까지 5-6년 이상 걸린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새크라멘토에는 community college 가 세 개 캠퍼스로 나누어져 있으나 시스템은 하나의 대학처럼 운영된다. 자신의 집과의 거리나 수강하고자 하는 과목의 수업 시간표에 따라 여러 캠퍼스 중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