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시간
나는 한국에서 20년, 미국에서 20년을 간호사로 일했다. 한국에서도 근로기준법에 휴게시간이 명시되어 있지만 우리 간호사들은 일이 바쁘면, 다른 말로 위중한 환자가 있으면 15분 휴게시간은커녕 식사를 거르는 걸 당연히 여기며 일했고, 위중한 환자가 없는 날은 하늘의 별을 따는 날이었다. 직업 정신이 투철한 간호사들은 휴게 시간이나 식사 시간을 가질 때는 돌아올 때까지 담당 환자들이 아무 일 없을 거라 확신해야만 갔다. 내가 점심을 먹는 동안 다른 간호사가 내 환자까지 두 배나 되는 환자들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책임을 질 수 있는 슈퍼맨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실은 환자들은 그동안 그냥 방치되는 거였다. 수간호사님도 있고 책임간호사도 있는 낮번 근무 중에는 식당에 가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지만 초 번이나 밤 번 근무 때는 간호사실 뒤의 투약실에서 급히 밥을 먹다가 환자가 부르면 뛰어나가야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내가 신규로 취업했던 1983년, 6개월 만에 체중이 6Kg 줄었었다. 일이 느리고 서툰 신규는 감히 밥 먹으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밤 번 근무를 하고 아침에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자고 있으면 가족들은 웬 잠을 낮에 이리 많이 자냐며 밥 먹으라고 깨우기 일쑤였다. 힘든 잠을 간신히 자고 있는데 깨우면 다시 잠들기는 어려웠다. 가족들에게 '절대 절대 깨우지 말라'라고 설득하기까지에는 여러 번의 다툼이 필요했다. 10시간 내내 뛰어다니는 간호사의 야간근무를, 편안히 잠든 환자들 보초서는 걸로 오해하였고 10시간 중 최소한 한두 시간은 자면서 일하는 걸로 착각하고들 있었다.
내가 채용되었던 2004년 미국의 우리 병동에는 Resource nurse가 있었다. Resource nurse는 담당 환자를 맡지 않고 중환자를 맡고 있는 간호사를 도와주거나 새로 입원 혹은 퇴원하는 환자를 맡아 업무를 덜어주는 한편, 간호사들이 휴게시간이나 점심시간을 가질 동안 그 간호사의 환자를 맡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2,3년 후 병원의 리더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력을 최소화하도록 매니저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인력을 느슨하게 관리한 매니저들을 해고하였다. 내가 일하던 병동의 착하고 친절했던 매니저는 연구부서로 이동하였고 새로 온 매니저는 무자비한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근무 조당 두 명씩 일하던 간호조무사를 초번, 밤번은 한 명으로 줄였고 Resource nurse를 없애고 charge 간호사가 간호사들의 휴게시간과 식사시간을 커버하도록 했다. 그것도 모자라 간호사실에서 전화응대하는 사무요원도 없애 책임간호사와 모니터 담당 직원이 대신하도록 했다. 그 결과 병동은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고 아무도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도 없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물론 간호사들은 제대로 휴게시간을 갖는 게 불가능했다. 법적으로 간호사들은 8시간 근무 시 30분의 점심시간은 근무 외 시간으로, 두 번의 15분 휴게시간은 근무시간으로 인정하며 주어져야 했다. 12 시간 근무 시에는 15분 휴게 시간은 세 번 주어져야 한다. 8 시간 일하는 한 병동에 8명의 간호사가 일할 경우, 8명 x (30분+15분+15분)= 8 시간이 된다. 휴게시간을 커버하지 않아도 바쁜 Charge 간호사 혼자서 휴게시간을 모두 커버하라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것이었고, 결국 간호사들은 아무도 휴게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그냥 타임카드만 점심시간 out-in을 찍고 일해야 했다. 인력을 줄인 대신 오버타임을 하지 말라는 압력이 동시에 주어졌고 매니저와의 면담으로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간호사들은 퇴근 찍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기록들을 정리했다. 결국 경력이 많아 어디나 갈 수 있었던 간호사들은 하나둘씩 그 병동을 떠났고 그 자리는 경험이 전혀 없는 신규 간호사들로 채워졌으며 나도 더 늦기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겼다. 새 매니저가 온 1년 후 그 병동은 6개월 밖에 안된 간호사가 charge간호사로 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환자나 간호에 대해서는 1도 관심 없이 비용 감축만 챙기던 매니저는 가장 많이 간호 인력을 잃은 데에 책임을 물으며 해고되었다. 몇 년 후에 간호사 노동조합은 매니저들의 압력에 의해 간호사들이 연장근무를 하면서도 타임카드만 먼저 퇴근 찍고 일한 걸 배상하라고 소송하였고 환자의 전자 의무기록에 간호사가 기록한 시간과 타임카드에 퇴근으로 찍힌 시간을 비교하여 퇴근 시간 후 실제로 일한 시간을 초과 근무로 배상받았다. 나는 소송에 참여하진 않았다. 나는 연장근무를 해야 할 경우에는 일이 다 끝난 다음에만 타임카드를 찍었었기 때문이다.
간호사 노동조합은 간호사 대 환자의 비율은 휴게시간에도 지켜져야 한다는 법을 내세워 병원으로 하여금 resourse nurse를 없앤다면 휴게시간 전담 간호사(break relief nurse)를 채용하도록 요구했다. 결국 법 시행 후 10여 년이 지나서야 병원은 근무 조당 한 명의 휴게시간 전담 간호사를 채용했다. 휴게시간 전담 간호사는 대체로 정규 근무자보다 2-3시간 늦게 출근하여 간호사들의 15 분 휴게시간을 주고 다음엔 30분 식사시간을 커버해 주었다. 처음엔 8시간 근무 병동은 6시간 근무자 1명, 12 시간 근무병동은 8 시간 근무자 1명을 휴게전담간호사로 주고 나머지는 charge간호사가 채우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방법은 간호사들의 식사 시간이 너무 빠르거나 늦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여기서 charge 간호사는 실은 일반 간호사가 아니고 관리자에 해당하는 Supervisor들이었다.
노동조합은 다시 휴게 담당 간호사를 늘리도록 투쟁하였고, 이때는 비조합원이 조합원의 일을 할 수 없다는 단체협약 조항을 내세워 supervisor들은 간호사의 휴게시간을 커버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참고로 우리 병원은 유니언 샵이 협약에 있어 모든 간호사는 채용과 함께 간호사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된다. 지금은 30 병상이 있고 12 시간 맞교대인 병동의 경우, 휴게 담당 간호사는 근무조별로 2명씩 6시간 동안 일하며 간호사들이 휴게시간을 가질 동안 그들의 환자를 돌본다.
미국의 모든 병원이 이런 조건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개별 병원별로 어떻게 휴게시간을 운영하느냐 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모든 간호사들이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지도 않다. 아무런 통계도 조사해보진 않았으나 간호사들의 휴게시간을 어떻게 커버하는지는 그 병원 간호사 노동조합의 활약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일했던 병원에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관리자들을 상대로 실제로 쉴 수 있는 휴게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수년간 해온 걸 돌이켜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