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1. 나이 든 한국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과 친숙하다. 어릴 적 '엘리제를 위하여'를 매일 혹은 매주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들은 추억이 있으니 어찌 친숙하지 않으랴. 새벽에 익숙한 피아노 소리가 골목을 훑으면 동네 사람들은 다들 손에 손에 쓰레기통들을 들고 나와 쓰레기 수거 트럭에 투하하곤 했다. 이제는 대형 아파트 단지에 쓰레기를 쌓아 두는 곳이 생기다 보니 쓰레기 차량도 더 이상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다.
2. 사람들이 은퇴자는 더 이상 생산자가 아니고 소비자라고 하는 말이 조금 신경에 거슬렸었다. 이건 꼭 내가 은퇴자라서 하는 얘긴 절대 아니며 은퇴자라 지칭되는 데에 자부심도 있다. 나이 든 걸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자부하며 심지어 흰머리 염색도 하지 않는다. 물론 이건 미용실에 일 년에 두 번 이상 가는 걸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근검절약 때문이지 게을러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그런데 은퇴한 노인들도 젊은이 못지않게 생산하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쓰레기다. 오늘날 쓰레기로 인해 생겨난 기업들, 일자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라. 온라인 쇼핑이 배달해 주는 포장 용기, 상자들, 넘쳐나는 청결하고 위생적인 일회용품 사용으로 노인들도 젊은이 못지않게 쓰레기 생산 대열에 참여, 공헌하고 있다.
3. 쓰레기는 때로는 인간과 동물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생존 투쟁을 발생시킨다. 쓰레기를 그대로 보존해서 처리장으로 보내야 하는 인간들과 인간 때문에 삶의 영역을 뺏긴 동물들 사이에서 매일 전쟁 같은 투쟁이 이뤄지고 있다. 쓰레기를 뒤져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칼로리라도 확보하려 하는 오소리, 너구리, 들쥐, 곰들이 밤마다 쓰레기통을 뒤집고 흩뿌려 놓기 때문에 퀘벡에 사는 언니는 쓰레기를 내놓는 날 아침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퀘벡 주 당국은 쓰레기통 잠금장치를 요청하는 시민에게만 설치해 주고 있다. 그걸 몰랐던 이민자인 우리 언니네 가족은 이십여 년을 쓰레기를 냉장고에 보관해 왔다.
우리 동네에서는 재활용 쓰레기통을 내놓는 날이면 쓰레기 수거 당국과 남의 쓰레기통을 뒤져 플라스틱 물병이나 캔 종류를 가져다 팔려는 사람들 사이에 누가 더 먼저 수거하나 쟁탈전이 벌어진다. 물론 이건 들키면 도둑질이 되므로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 한 밤중이거나 이른 새벽에 이루어진다.
4. 쓰레기는 사람들이 주거지를 선택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에 한 프로그램을 보았다. 젊은 남녀들에게 어떤 형태의 주거시설을 선호하는가 하는 질문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남 녀 사이에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여자들은 하나 같이 아파트를 남자들은 하나 같이 단독 주택을 선호했다. (그래서 결혼들을 안 하고 아기를 안 낳는 건가?) 여자들은 아파트 단지가 더 안전하다는 점과 쓰레기 분리수거 때문에 아파트를 선호했다. 한국에서 쓰레기 분리수거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이해할 만하다. 단독 주택이나 연립 주택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는 너무 복잡하고 힘들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는. 오죽하면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조건으로 방을 세 놓겠는가(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내가 두 번 본 드라마다. )
5. 미국에 살면서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쓰레기 처리가 쉽다는 것이었다. 단독 주택에 집집마다 세 개씩의 쓰레기통이 있다. 이 커다란 쓰레기 통들은 시 재산이다. 얼마 전에 시에서 모두 새것으로 교체까지 해 주었다. 일반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생물 쓰레기 통으로 나뉜다. 생물 쓰레기는 나의 번역인데 영어로는 organic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깎아낸 잔디와 낙엽, 가지치기를 한 식물들이 주로 들어가지만 음식물 쓰레기도 들어간다. 우리 동네에서는 매주 수요일 밤에 길 가에 내놓으면 목요일 새벽에 수거 차들이 와서 비워낸다. 물론 이건 공짜가 아니다. 두 달에 한 번씩 220달러를 내고 있다. 한국의 쓰레기 봉지 값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