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보수 교육
간호사들은 육체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지식 노동자이다. 세상에는 늘 새로운 연구들이 발표되고 신약들이 나오고 새로운 치료법들이 발표된다. 심지어 가장 단순한 기본 심폐소생술조차 새로운 연구에 따라 그 방법이 1-2년마다 바뀐다. 그러니 계속 배우고 공부하지 않으면 제대로 간호사 업무를 할 수가 없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간호사들은 면허시험을 통과한 후에도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일정한 시간의 보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캘리포니아 간호사 면허는 2년에 한 번씩 갱신하는데 그 기간 동안 48 시간의 보수교육을 받아야 한다. 한국 간호사 면허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수 교육 시간은 일 년에 8 시간이다. 나는 20여 년을 한국에서 일한 후 미국에서도 20여 년 일했다. 내가 경험한 미국의 간호사 보수 교육과 한국의 간호사 보수 교육의 가장 큰 차이는 누구의 비용으로 교육을 받느냐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모든 보수 교육을 자신의 쉬는 날에 가서 받아야 했고 교육을 받은 것에 대해 고용한 병원은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다. 미국의 병원들은 이 시간을 근무로 인정해 주고 근무한 것과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지불했다. 교육비 역시 미국 병원들이 부담해 준다.
내가 일했던 병원 조직은 새크라멘토 지역에 250-350 병상 규모의 병원을 5 개 운영하고 있다. 나는 그중 2개 병원에서 일했다. 외래 시설로 취급되는 외래 수술실도 몇 군데에 있고 외래 진료 시설도 4-5 군데에 있다. 방사선과에 속하는 시설도 여러 곳에 나누어져 있다. 따라서 근무하는 직원의 수도 많을 것인데 어느 정도인지 나로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맨 처음 일했던 병원의 직원만 약 3천 명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지역 내의 전 직원의 수는 최소한, 만 오천 내지 이만 명은 되지 않을까 한다. 이 많은 직원들을 교육하기 위해 교육만 전담하는 직원들과 강의실이 있는 교육 시설이 따로 있었다.
처음 일을 시작하는 직원들은 모두 첫 출근을 그 교육 빌딩으로 가서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요즘엔 모두 전자 의무기록을 사용하므로 수일간에 걸쳐 의무기록시스템을 배우고 익힌다. 교육 빌딩에서는 캘리포니아의 의료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갱신해야 하는 각종 자격증을 갱신하는 교육도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기본 심폐소생술이라든가 ACLS(Advanced Cardiac Life Support), PALS(Pediatric Advanced Life Support) 등등 여러 프로그램이 있고 이러한 교육들은 교육 간호사들이 교육의 틀을 짜고 외부 강사가 필요할 시 섭외하고, 캘리포니아주 간호협회로부터 보수교육으로 승인을 받는다.
교육 빌딩에서 일하는 간호사들 외에 교육 담당 간호사가 각 병원마다 한 명씩 배치되어 있어 진료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다른 팀들과 협조하며 질관리(Quality Control)에 참여한다. 가끔 병원 조직은 상부로부터 하나의 캠페인 같은 걸 하기도 하는데 이런 캠페인이 있을 때에는 각 병원 단위로 전 직원이 돌아가며 그 교육에 참가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서 운영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낮동안에는 매 한 시간마다, 밤동안에는 매 두 시간마다 병실 라운딩하기 같은 캠페인이다. 병원에 속해 있는 교육 담당 간호사는 각 병원 단위로 운영되는 이러한 교육을 총괄한다. 우리 병원에서 일반 간호사들에게 각 간호영역에서의 전문간호사 자격을 따도록 격려한 일이 있었는데 이 때도 교육 담당 간호사가 교육을 담당했다. 나 역시 교육 담당 간호사가 하는 PCCN(Progressive Care Certified Nurse) 교육을 받고 PCCN을 땄던 일이 있다. 병원은 시험 비용을 지불해 주었고 자격을 딴 후 그 분야에서 일하면 시간당 $1를 임금에 더해 준다. 신경전문간호사, 암환자 전문간호사, 중환자실 간호사, 외상 전문간호사 등등 여러 영역이 있다.
나는 1983년에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여 일반병동에서 일하다가 2년 후 중환자실로 옮겼다. 중환자 간호관리교육은 당시 3개월 과정이었고 주 48시간 일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고 스케줄을 바꿔 가며 교육에 참석해야 했다. 내가 교육과정에 등록하러 갔을 때 교육비를 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강사들에게 지불할 강사료를 교육생으로부터 받아 충당하고 있었다. 나는 항의했다.
"병원에서 필요한 직원을 양성하는데 근무를 빼주는 것도 아니고 일 다 하면서 쉬는 시간을 희생하며 교육받으러 온 사람에게 돈까지 내라는 건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당시 간호부 내 교육 담당 간호사는 평간호사급으로 한 명이 있었을 뿐, 이 문제는 간호 행정과장과 얘기해야 했다.
"돈 내고 교육받기 싫으면 교육을 안 받으면 될 것 아니니?"
"중환자 간호관리교육을 안 받아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나요?"
"그건 아니지. 중환자실에서 일하려면 교육을 받아야지."
"그러니까 병원에서 필요해서 교육을 하는 건데 내 시간 희생해서 교육받는데 돈까지 내라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학교 선생님들은 방학 때 교육받으면 교육비를 내기는커녕 교육 수당도 받고, 호봉도 올라가는데, 우린 3개월씩이나 모든 걸 희생하고 일 다 해가며 교육을 받는데 돈까지 내라는 건 너무 부당합니다."
"그럼 선생님 하지 왜 간호사 하고 있니"
그 말은 하면 안 될 말이었다. 나는 행정과장님의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 아니, 뭐라고요? 그럼 선생님을 하지 왜 간호사를 하냐고요? 그런 말을 입에 담고도 당신이 간호계의 지도자라 할 수 있습니까? 후배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이제 간호부 사무실 전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아니, 우리도 돈 안 받고 하고 싶지, 근데 예산은 없고 교육은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잖니."
"그걸 왜 내가 알아야 해요, 예산을 내가 확보해야 합니까? 그건 과장님이 했어야죠. "
이미 38년 전의 일이다. 그다음 해부터 중환자실 교육은 무료로 실시되었고 나는 교육비를 내고 중환자 간호관리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가 되었다.
내가 일 했던 미국 병원에서는 full time 간호사에게 일 년에 40 시간의 교육 수당, CET (Continuous Education Time)이 책정되었다. 내가 part time 간호사로 주당 32시간 일했을 때에는 CET 역시 32 시간이었다. 내가 교육을 받으면 교육 수료 후 받는 이수증 혹은 수료증(Certification)을 내고 교육 시간만큼 수당을 받는다. 내가 교육을 받지 않으면 사라지는 예산이다. 교육수당은 나의 시간당 임금과 동일하게 지급되었다. 의무교육 (BLS 나 ACLS 등)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근무로 처리된다. 내가 관심이 있어 선택하여 받는 교육이 있을 경우 이 교육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받은 교육들은 간호사 면허를 갱신할 때 이수해야 하는 보수 교육 시간을 채우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주로 각종 학회에 참가하는데 이 교육 시간을 사용하였는데, 많은 간호사들이 요즘엔 온라인 교육으로 교육시간을 손쉽게 채우곤 한다. 12월이 되면 수당을 신청할 수 있는 마지막 날짜가 통보되고 간호사들은 수당을 놓치지 않으려고 막판 벼락치기 온라인 수강들을 하곤 한다. 온라인 교육은 대부분 새로 배운다기보다는 시간 채우기 느낌이 있어 나는 좋아하진 않았다. 여러 학회에서 흥미진진한 새로운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는데, 다만 이 학회들은 참가비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참가비의 몇 배나 되는 교육 수당을 받을 수 있으므로 나는 가능한 한 학회참석에 교육 시간을 사용했다. 이 교육 시간만큼 근무를 덜 하려면 미리 신청해서 스케줄을 받으면 되고 만약 근무를 다 하면 교육 수당은 여분의 수입이 되었다.
자세한 규정은 모르나 요즘엔 한국의 병원들도 교육비를 지급한다고 하니 늦었지만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