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또는 짐 11

안전한 집????

by 새 날
밥할아버지

엄마가 어젯밤에 물으셨다.

“ 네가 이렇게 한 달씩 집을 비워도 집은 괜찮냐?”

“ 네, 아직은 괜찮아요. ”

올해 열 달 중 넉 달을 집을 비운 참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누군가 한 명은 꼭 집에 있어야 해서 ‘집을 본다 혹은 집을 지킨다 ‘라는 말이 있었다. 그때는 조부모님과 삼촌, 고모들이 한 집에 모여 살았으니 가능했던 언어였다. 집 대문을 잠금장치로 내부에서 잠글 수는 있었으나 가족 누구도 열쇠를 가지고 다니진 않았다. 집 보던 사람이 안에서 열어 주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담만 넘으면 집의 모든 것이 개방되는 구조여서 더 그랬을 것이다. 그 시절, 산골마을, 장계에 있던 나의 외갓집엔 잠금장치 같은 것도 없었다. 누구나 들어오고 나갈 수 있었다. 그러니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동네 사람들이 서로 다 알고 지냈을 법하다. 그러나 대가족은 핵가족으로, 이젠 일인 가구로 바뀌어 가고, 아파트가 주류인 집 형태는 집을 지킬 필요를 제거했다. 열쇠만 내주머니에 있으면 안전하게 변화하였고 이제는 열쇠도 필요 없이 내 지문만으로 문을 여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지은 지 오십 년도 넘은 미국의 내 낡은 집은 아직 그런 첨단 기술의 혜택을 보진 못하고 있다.

언젠가 한국에서 와서 잠시 우리 집에 머물던 친구는 내가 일하러 간 낮동안 집 밖을 산책할 때마다 문을 잠그고 여는 걸 몇 번씩 물었다. 나는 평소에 낮에 집을 비우며 뒷문으로 나갈 땐 거의 잠그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잠그지 말고 그냥 다니라'라고 말해도 '잠그지 않고 나갔다 왔을 때 누가 안에 있으면 어떡하냐'라고 불안해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십 년 넘게 이 집에 살면서 한 번도 그런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 사람들은 주로 현관문으로 찾아오므로 현관문만 잠근다.

우리 집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네 개나 있다. 물론 창문은 제외하고 말이다. 앞쪽 현관문, 주차장 자동문, 밖에서 뒷마당으로 들어가는 쪽문은 아예 잠금장치가 없고 바람에 열리지 말라고 걸어놓는 걸쇠가 있다. 쪽문으로 들어가면 주차장에서 뒷마당으로 열리는 뒷문이 있고 이 문이 주로 내가 산책 갈 때 이용하는 문이고 안으로 들어갈 때만 잠그고 나올 땐 잠그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집 안에서 뒷마당으로 가게 되어있는 유리문이 있다. 이 문은 안에서 잠그면 밖에서는 열 방법이 없는 미닫이 문이다.


처음 이 집을 샀던 2004년엔 야간근무를 하면서 아이들만 남아있는 시간을 염려하여 먼저 주인이 설치해 놓은 보안시스템을 계속 이용할까를 고려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안 번호를 먼저 누르고 문이나 창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그냥 열면 알람이 울리고 보안경찰들이 밤에 아이들만 집에 있는 걸 알게 될까 두려워 보안시스템을 취소했다. 동네 주민들에게도 내 사정을 알리지 않기 위해 친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래도 몇 달 지난 후엔 온 동네 사람들이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가족이 어떻게 되는지 다 알고 있었다. 한집 건너 살던 밥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자기 집 현관 앞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개 산책을 하는 주민 모두와 장시간 잡담을 하곤 했고 나 역시 오며 가며 그와의 대화를 피할 길은 없었다. 내가 길에 나서지 않으면 그는 일부러 찾아와 소식을 전해주곤 했다. 예를 들면 앞집에서 대형 레저버스를 길에 한 달째 주차하고 있을 때는 앞집 주인에게 '차를 공유지인 도로 말고 그의 소유지 내에 주차해라'라고 요구하고 나에게 찾아와 자기가 한 일을 얘기해 주었다. 앞집에 사는 내게 방해가 된다는 것이 그의 이유였다. 한국의 도로 주차에 익숙한 나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지만 밥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공유지인 도로에 방문객의 단시간 주차가 아닌 거주자의 대형 버스 장기 주차는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교외 주거지역이라 그런지 아무튼 우리 집이 나의 허술한 보안감각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아무 일 없는 건 그저 운이 좋은 건지 모른다.

한 번은 지아가 어제 있었던 일이라고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얘기한 일이 있었다. 한 사오 년 전이었던 것 같다. 밤 10시 무렵 그 애는 누군가 우리 집 현관의 번호키를 계속 누르며 열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아는 큰 소리로 “ 아빠, 현관에 누가 있어요.” 하고 소리쳐 마치 집에 누군가 성인 남자가 있는 척했지만 침입 시도는 계속되었다. 지아는 현관문 안쪽에서 서서 911에 전화하고 큰소리로 신고하며 침입자가 도망가게 하려 했으나 누군지 모르는 침입자는 문을 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머리 위에 헬리콥터가 뜨고 곧 경찰 사이렌이 들리기 시작하자 침입자는 사라졌다. 이 난리 중에 나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고 지아는 나를 깨우지도 않고 이 모든 일을 감당했다. 왜 나를 깨우지 않았냐고 묻자 세상 쿨한 대답을 했다.

"엄마를 깨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어릴 때부터 지아가 용감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일은 경찰들이 문 앞에 와서 신고자가 안전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종료되었다. 한국에서라면 신고자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로 오라 했을 것이나 미국에서는 그냥 문 앞에서 몇 마디 물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미국 경찰은 총과 행동은 빠르고 서류 작성 업무는 적은 듯하다.

그때가 아마도 우리 집에 침입 시도가 있던 유일한 때이다.

내가 이제는 혼자 살고 있다는 걸 염려한 친구가 물었다.

“그럼 넌 집에 총이라도 있어?”

“아니, 총은 나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위험에 빠뜨려.”

총이 집에 있고 잘 다룰 수 있다면 침입자가 있었을 때 문을 열고 총을 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침입자도 총을 가지고 있고 더 빠르다면 나는 총을 쏘기도 전에 죽을 가능성이 더 많다. 총을 가지고 있지만 쏠 용기가 없어 머뭇거리거나 단번에 맞추지 못한다면 총을 빼앗길 가능성도 있다. 미국 뉴스에서 끊이지 않는 총기에 의한 무작위 대중을 향한 폭력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미국에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특히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경찰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것이다. 어느 날 저녁 갑자기 한 무리의 경찰들이 우리 집 문을 쾅쾅 두들기며 문 열라고 소리쳤다. 나는 문을 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잘못 왔다고 이 집이 아니라고 소리쳤다. 아무도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돌아서서 옆집으로 몰려갔다. 이때가 아마도 내가 가장 큰 두려움을 느꼈던 순간일 것이다.

나 말고 누군가 한 명 더 있으면 더 안전할까?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있었을 때가 지금보다 안전했을까? 예쁜 아이들이 있던 때가 늙은 여자 혼자 있는 때보다 더 위험한 때가 아니었을까? 혼자 낯 선 곳을 여행할 때는 약간 불안을 느끼지만 오랫동안 혼자 집에 있어 온 나는 집에 혼자 있는 것에 불안하거나 아이들이 있다고 더 안전하게 느끼진 않을 것 같다.

미국은 민간인들이 영국 군인들에 맞서서 독립을 쟁취하고 원주민들과의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대해 온 나라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제헌헌법 2조다. 총기 소유의 권리. 많은 사람들이 광활한 땅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경찰을 부르면 한 시간은 걸려야 도착하는 곳에 사는 주민들도 많은 상황인지라 그들이 총기 소유의 자유를 포기하는 일은 가까운 시일 내에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이들은 CC TV가 사방에 걸려 있는 서울의 원룸 아파트에서 불안하여 남자 신발을 현관에 두고 살고 어떤 이는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미국에서 맘 편히 살기도 한다. 세상 일이란 다 제 맘 속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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