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죽음
사십여 년을 병원에서 일한 간호사이다 보니 보통사람으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많은 걸 경험했지만 오늘은 왠지 죽음의 경험을 얘기해 보고 싶다. (13번째 이야기라서?)
내가 기억하는 환자의 죽음의 첫 번째 이야기는 내가 아마 1년쯤 된 신규 간호사였을 때 일이다. 그날 밤 내 환자 중 두 명이 죽었다. 첫 번 환자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심장 환자가 아니었나 싶다. 입원하자마자 갑자기 아무런 외상없이 심장마비가 왔고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의사는 사망선고를 했다. 그 환자를 영안실로 실어 보내자마자 새로운 환자가 응급실에서 올라왔고, 위암 환자였는데 출혈이 있었다. 의사는 그전에 수술하려고 배를 열었다가 그냥 닫은 말기 암이어서 방법이 없다고 했다. 환자의 혈압이 계속 떨어졌고 양팔에 혈관주사를 꽂고 몇 시간 동안 총 17병의 생리식염수와 혈액을 쏟아부었지만 환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피를 위아래로 계속 쏟아냈다. 그 환자는 마지막까지 의식이 있었고, 그분의 가족들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수액과 피를 쏟아붓는 그 밤을 옆에서 지켜봤다. 환자의 마지막 심전도가 멎었을 때 간호사는 심폐소생술을 해야 했다. 환자도, 가족도, 의사도, 신규인 나도 알고 있었다. 그 심폐소생술은 아무런 의미 없는 행위라는 것을. 그래도 그때는 30분 심폐소생술을 해야 사망선언을 할 수 있었다. 시신을 영안실로 보낸 후 비닐 침대 위엔 피가 가득 고여있었다.
아침이 되어 인계를 하는데 후두경 한 개가 분실되었다. 나는 사망한 환자와 함께 영안실에 갔을 거라 짐작되어 영안실에 전화했더니 영안실 직원이 직접 와서 찾으라고 했다. 나는 7시 인계 후 아침 아홉 시까지 의무기록을 정리하고 환자 사망 시 써야 하는 각종 서류들을 썼다. 영안실에 가서 냉장고에 안치된 첫 번 시신을 꺼내 다 펼치고 위쪽엔 없는 후두경을 찾아 시신의 등 밑에 손을 넣어 훑었다. 차갑고 무겁고 미끄러웠다. 시신은 몇 시간 전까지 내가 알았던 사람과는 아무 상관없는 낯선 물체 같았다. 찾아낸 후두경을 병실에 돌려놓고 집으로 가면서 나는 서럽고 비참하고 화가 났다. 두 번째 환자의 그 모든 수액과 혈액은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는데 정말 왜 그렇게 해야 했을까. 게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 다 내보내고 심폐소생술까지.... 후두경은 또 왜 내가 책임져야 하는지....
미국에서 경험한 죽음들은 훨씬 평화로웠다.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환자는 재빨리 중환자실로 보내 중환자실에서 살든 죽든 했고 일반 병실에서 죽은 대부분의 환자들은 소위 안락치료(Comfort Care) 중 사망했다. 안락 치료는 적극적으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와는 다른 개념이다. 더 이상의 적극적인 치료가 의미 없다고 판단될 때 의사와 환자, 가족들이 동의하면 안락치료를 시작하고 이때부터 환자는 수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중단하고 고통 없이 자연사하도록 돕는 것이다. 수액주사는 끊고 모르핀이나 더 센 진통제, 수면제를 계속 혈관으로 주입하고, 산소공급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두 분의 환자가 안락치료 오더가 있었지만 어찌할 수 없는 상태로 고통 속에 죽는 걸 지켜봐야 했다.
첫 번 환자는 젊은 남자로 체격도 다부지고 건장하고 죽음과는 거리가 아주 멀어 보였다. 맨 처음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매우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상냥했다. 마지막 기관지 내시경을 하고 의사는 그의 죽음이 임박함을 알렸다. 그의 폐는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서 산소와 이산화탄소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였고 그는 그의 당면한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고, 때가 오면 심폐소생술도 하지 않고 죽게 되길 원했다. 그는 너싱홈으로 퇴원했다. 오래지 않아 두 번째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막 응급실에서 병실로 온 상태였는데, 의사는 안락치료 오더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편하게 할 아무런 약물 오더 없이 입원시켰다. 지금도 그 의사가 원망스럽다. 환자는 이미 뇌로 가는 산소가 없어 섬망상태로 말이 통하지 않았고 혈관주사도 뽑고, 침대에서 뛰어내리려 난동을 부렸다. 급히 당직의사를 전화해 약물주사를 오더 받으려 했으나, 이미 산소 부족 상태의 환자에게 호흡을 저하시키는 약물을 주고 싶지 않았는지 약물에 인색했다. 너무 소량의 근육주사는 건장한 체격의 환자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여러 사람이 붙잡고 새로 혈관주사루트를 확보하려다가 나는 환자에게 얼굴을 얻어맞기도 했다. 혈관 주사를 잡지 못해 몇 번의 근육주사 밖에 줄 수 없었고 그런 상태의 환자는 혈액 순환이라는 게 애당초 되지 않으므로 무슨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몇 시간의 사투 끝에 환자가 기력이 다할 때까지 간호사도 옆에서 힘든 싸움을 했다. 내가 그 환자가 의식이 있었을 때를 알지 못했다면 그가 얼마나 상냥한 사람인지 알지 못했더라면 덜 힘들었을 것 같다. 그는 사망을 알릴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환자에게 맞은 탓에 다음 날 직원건강부서(Employee Health)의 간호사와 면담을 했다. 그 간호사는 얘기를 마치며 내가 아주 슬퍼 보인다며 정신과 의사를 보겠냐고 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슬펐지만 그건 나 때문은 아니었다.
두 번째 환자는 할머니였다. 인계받는데 환자 병실에 안락치료 담당간호사가 있었다. 이제 막 환자와 가족들과 안락치료에 대한 얘기를 마친 참이었고 아직 환자는 의식도 또렷했지만 이미 말단 청색증이 온 상태여서 환자는 아주 힘들게 헉헉거리며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2리터로 들어가던 산소를 4리터로 올렸다. 안락치료 간호사가 야멸차게 산소를 제거했다.
"그건 환자를 돕는 게 아니라 고통을 연장시킬 뿐이에요."
나는 속으로 그 인정머리 없는 간호사를 욕하며 환자의 산소 결핍증을 완화시킬 모르핀을 주사했다. '앗, 이거 어떡하지?' 혈관주사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가족들도 눈치챘다. 안락 치료 환자에겐 모든 새로운 주사 행위는 금지한다. 어차피 혈관들도 다 숨어버려 이 상태에서 말단에 새 혈관주사루트를 잡는 건 불가능했다. 혈관주사로 나와 있는 약물 오더를 먹는 약으로 바꿔야 했다.
담당 의사를 호출해 놓고, 나는 다른 환자를 보러 가야 했다. 나에게는 3 명의 다른 환자가 있었고 그중 한 명은 치매 환자인데 방광이 터질 듯한 상태인 걸 발견했고 나는 요로관을 삽입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비뇨기과 의사가 와서 병실에서 방광경 처치를 하겠다고 나에게 보조를 요구했고, 나는 장비를 준비해 놓고 의사가 원하는 순간에 환자에게 프로포폴을 주고 밀접하게 관찰해야 했다.
그동안 청색증이 더 심해진 할머니는 더 헉헉거리고 있었고 가족들은 내게 왜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지 않느냐고 원망했다. 나 대신 먹는 약 오더를 받은 책임간호사는 먹는 모르핀과 안정제를 물약(Elixa) 형태로 오더해야 하는데 알약으로 오더 해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간신히 물약을 손에 넣었을 때 나는 그 헉헉대는 할머니 혀 밑에 약을 짜넣기를 2시간마다 반복했고, 역시 혈액 순환이 안 되는 상태에서는 물약도 근육주사처럼 전혀 흡수가 안되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할머니가 헉헉대던 숨을 멈추었다고 가족들이 나와서 알렸다. 그들은 환자만 병실에 남겨두고 즉시 떠났다. 나는 마지막까지 환자가 고통 속에 있게 한 책임이 내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족들에게도 너무 미안해서 잠시라도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으나 치매 할아버지를 지키느라 그쪽 병실엔 가보지도 못했다.
간호사인 게 비참했던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