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또는 짐 12

재산세

by 새 날

주택세금고지서가 날아왔다.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내가 정말 이걸 감당하면서 이 집에 계속 살아야 하나를 심각하게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집값의 1%를 기본으로 하고 소방세, 공원 개선세, 지역대학지원세, 초중고 교육세들이 붙어서 약 xxx 달러를 내란다. 작년보다 400달러가 올랐다. 지난번 투표 때 이런 세금을 내는 데에 yes로 투표한 게 후회막심이다. 너그러운 정부는 두 번에 나눠서 내도 된다고 반씩 적힌 고지서 두 개가 붙어 있다. 세금을 적게 내려면 집값이 많이 떨어지길 바라야 하고, 집값이 오르면 올라서 좋다고 하며 감당하기엔 수입이 한정된 연금 생활자로서 인플레이션의 효과를 절절이 느낀다.

일 년에 한 번씩 내는 화재 보험료도 많이 올라 올해 거의 2천 달러를 냈다. 이건 아주 기본 보험으로 지진이나 홍수로 인한 피해는 보상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집 모기지를 빌릴 수 없어 꼭 가입해야 한다.

주거비를 줄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집값이 싼 동남아시아로 이사 가면 이런 부담을 줄이고 살 수 있다. 절충해서 한국의 중소도시도 고려해 볼 수는 있다. 지은이는 공항 가까운 곳으로 한정하란다. 미국 내에서 지금 사는 곳보다 훨씬 싼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어차피 비슷할 거다. 비록 우리 집이 비싼 캘리포니아에 있다 하더라도 50년이나 묵은 낡은 집이어서 아마 집값이 싼 미시시피나 아이다호의 새집과 비교하면 별 차이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미국에 2003년에 와서 집을 산건 2004년 11월이었다. 당시 나는 아이들의 통학을 해 줄 운전자를 구할 수가 없어 무조건 초, 중, 고교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집을 원한다고 부동산 중개인에게 말했다. 부동산 중개인이 나를 데리고 몇 군데 집을 거쳐 이 집을 보여 주었을 때 나는 한눈에 반했다. 동네 어귀부터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평화로웠고, 집 앞뒤 예쁜 꽃밭과 때맞춰 잘 익은 황금색 단감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침실 세 개에 단층집인 것도 좋았다. 일층과 이층으로 나누어진 집은 일층 거주자와 2층 거주자 사이에 벽을 만드는 것 같았다. 여름엔 사막인 새크라멘토에서 밤이 되면 이층은 더운 공기가 모여 잠들 수 없는 밤들이 될 것 같았다. 일층 복도에 붙박이 장이 있는 것도 좋았다. 이거면 따로 가구를 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비록 지금은 내가 쓰는 두 칸 이외에는 아이들이 버리고 간 헌 옷들이 가득 쌓여있지만 말이다.

미국에서 집을 사는 건 의외로 너무 쉬웠다. 집값의 20%만 현금을 내면 나머지는 은행에서 대출을 해 주었다. 비록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퇴직금으로 집값의 20% 뿐 아니라 30%도 낼 수 있었지만 부동산 중개인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게 더 좋다고 하였고 나도 언제 직장에서 해고되더라도 다시 직장을 구할 때까지 버틸 자금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20%만 다운페이를 했다. 당시에 30년 고정이자로 대출하면 6.5%의 이자를 내야 했다. 내가 이자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물었더니 4.5%로 5년간 고정이자로 원금은 내지 않고 이자만 내는 방법으로 대출을 받게 해 주었다. 5년 후에는 이자도 올라가고 원금도 내야 하지만 그전에 집을 팔던지 아니면 재융자를 해야 했다. 2004년에 집값은 매일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었고 뉴스에서는 미연방총재를 비롯하여 경제전문가들이 부동산 거품경기를 경고하던 시절이었지만 미국의 집값의 변화나 경제에 대해 전혀 아는 바도 없었고 아이들의 통학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난생처음 내 집에서 살게 된다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긴 어려웠다.

당시에 한국에서 왔던 간호사들 중에는 다운페이할 돈도 없으면서 침실 다섯 개의 3000스퀘어핏트(약 80-90평)가 넘는 집을 2차 대출까지 받아 사는 사람도 있었다. 몇 달 사이에 몇만 불씩 뛰는 집값을 보며 집을 사지 않고 기다리기는 쉽지 않았다. 3-4년 후 서브프라임 모기지회사들이 파산하고 미국의 대형 금융회사들이 무너질 때 새크라멘토의 집값도 무너졌다. 다행히 나는 집값이 아직 무너지기 전에 30년 고정이자, 4.75%로 모기지를 바꾸어서 별 문제는 없었다. 2차 대출을 받았던 간호사는 계속 2차 대출을 갚으라는 추심에 시달리며 갚지 못하고 버티고 있었는데 그 후 어찌 되었는지는 모른다.

나와 함께 근무하던 간호사 중 한 분은 필리핀에서 온 남자 간호사였는데, 그는 이때 높은 값으로 샀던 집의 모기지를 내지 않고 버티며 근무를 일주일에 2일만 하는 걸로 수입도 줄여서 은행에는 대출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버텨 은행으로 하여금 집을 차압하게 만들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럴 경우 대출을 못 갚은 사람에게 은행은 더 요구할 수 없고 손실로 처리한다. 그러나 다음 해 세금 정산 시 차감된 빚은 나의 수입이 되어 세금을 내야 한다. 즉 50만 불짜리 집을 20% 다운페이하면 10만 불을 내고 40만 불을 융자를 얻는다. 몇 년 후 이 집이 은행에 차압되었을 때 남은 빚이 35만 불이고, 은행은 이 집을 25만 불에 팔았다 하자. 나는 10만불의 빚을 탕감받는 대신 다음 해에 10만 불을 벌은 셈이 되어 30%의 세금을 낸다면 3만 불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그 간호사는 집값이 최저로 떨어졌을 때 다시 집을 샀다. 이 때는 집 값이 반값이 되어 전에 50만 불 했던 집을 25만 불에 살 수 있었으므로 7만불의 이득을 본 것이었다.

나의 모기지 중개인은 대출 이자가 현저히 낮아지면 내게 전화해서 재융자를 권유하곤 했다. 마지막에 재융자를 받았을 땐 2.25%의 이자로 15년 상환으로 재융자를 받아 낡은 집의 화장실과 부엌을 수리했다. 지금은 이자율이 다시 높아졌고 나도 은퇴했으므로 이 집을 팔고 다른 집을 산다면 3,4배의 이자를 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높은 이자라도 아예 빌려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이자율은 각자의 재정 상황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의 자본주의 원칙대로 정해진다. 은행은 돈을 빌리려는 사람의 재정 상태와 신뢰도, 고정 수입 수준 등을 평가하여 상환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은 낮은 이자로, 위험이 높은 사람은 높은 이자로 빌려 준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한국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기존 집을 살 때 그 대출을 그대로 이어받아 갚아나가곤 했다. 미국에서는 집을 팔 때 대출은 다 갚아야 하고, 집을 사는 사람은 전 주인의 대출에 관계없이 자신의 이름으로, 새로운 조건의 대출을 받는다.


쌓여 있는 물건들을 돌아보면 정리하고 이사를 한다는 게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이걸 어떻게 하고 이사를 하나. 이사는 몸만 나가는 일이 아니다. 내가 살아오며 모아 놓은 잡동사니들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쉽지 않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2년마다 도시를 옮겨 가며 사는 부부의 얘기를 듣고 그들의 용기에 감탄했다. 최소한으로 줄이며 살지 않은 한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막연히 나의 남은 수명이 10년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에는 생존하고 있다 해도 적극적으로 내가 만드는 인생이 아닐 것이므로 계산에 넣지 않는다. 주택세금고지서를 보며 나는 집을 팔고 1년마다 세상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옮겨 가며 살아 보는 건 어떨지 상상해 본다. 10년이면 열 곳에서 살아볼 수 있다. 어디가 좋을까? 북유럽 중 한 곳, 호주에서 한번, 중국과 일본에서 한 곳씩,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중 한 곳, 그리스, 칠레의 끝단, 포르투갈과 몽고. 케냐........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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