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합니다.
실수는 자주 일어난다. 우리가 예측 불허한 시간에 예측 불허한 모습으로. 간호사의 실수는 치명적일 수 있다. 나는 신을 믿진 않으나 사십 년 간호사 생활 중에 적어도 나의 실수로 환자가 사망한 경우는 없었음에 감사한다. 그래도 고백할 건 많다.
첫 번째 사건은 내가 병동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발생했다. 그러니 1983년도 봄의 일이다. 흉관을 가진 환자의 배액병이 가득 차 병을 바꾸어야 했다. 나는 흉관 배액병을 바꾸는 것에 대해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 순서가 정리되어 있었으므로 자신 있게 혼자 할 수 있다고 했고 내 자신감을 믿어준 선배 간호사는 바쁜 김에 감사하며 내게 맡겼나 보다. 일을 마치고 잠시 후 확인하러 갔던 선배는 나와서 황급히 의사를 콜 하고 엑스레이 오더를 냈다. 내가 배액병의 환자 쪽 연결을 석션 쪽 연결과 뒤바꾸어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최악의 상황은 환자가 숨을 들이쉴 때 공기가 폐로 들어가지 못하고 배액병 속의 공기가 환자의 흉곽 속으로 들어가 심하면 호흡곤란이 생길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그날 환자는 아무 일이 없었고 실수는 즉시 수정 했으며 아직 오리엔테이션 중인 신규 혼자 하도록 맡긴 선배의 책임도 있었는지라 경위서 한 장 쓰지 않고 넘어갔다. 황당한 건 도대체 왜 내가 그때 그걸 뒤바꿨는지 그때도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난 분명 제대로 알고 있었고 제대로 했는데... 신규병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아무리 잘 아는 것이라도 확인, 재확인해야 함을 배웠을지 모른다.
미국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을 때 가장 큰 두려움은 실수를 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의료소송이 한국보다 훨씬 빈번함을 익히 알고 있었고 여러 자잘한 실수들이 임상에서는 드물지 않게 발생함을 이미 경험해 온 터였다. 최악의 경우엔 해고를 당하고 소송도 당하고 간호사 면허도 취소될 수 있었다. 처음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 누군가 질문을 했다. Nurse Malpractice Insurance(간호사 위법 보험)를 사야 하나 라는 것이었는데 답변하신 분은 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 우리를 채용했으므로 대부분의 소송은 병원으로 들어오지 간호사 개인에게 들어오지 않으며 병원이 보험을 가지고 있으므로 여러분은 보호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난 그 말을 믿었다. 그 사건을 목격할 때 까진.
미국 병원에서 일하고 일 년쯤 지난 후의 일이다. 밤번으로 일하다 보면 간호사마다 일하는 방식이 다른 걸 느끼게 된다. 나처럼 여덟 시간 내내 뛰어다녀서 다른 간호사들로부터 무슨 일이냐고 질문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덟 시간 내내 졸다가 아침에 낮번 근무자가 오면 완벽하게 인계를 해 내어 그들의 뛰어난 역량이 부러울 따름인 간호사들도 있다. 아무튼 그 간호사는 언제나처럼 앉아서 졸고 있었고 환자들의 심전도를 원격으로 실시간 관찰하던 심장 모니터 기술자가 환자 심전도가 사라졌다고, 환자 좀 체크해 보라고 몇 번이나 말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내 모니터 기술자는 책임간호사에게 환자를 체크하라고 요청했고 책임 간호사는 이미 환자의 심장이 멎은 지 한참 된 걸 발견했던 것이다. 이 일로 그 간호사는 즉시 해고되었고 나중에 법원에서 간호사 면허도 박탈된 것으로 알고 있다. 환자 쪽에서 간호사에게 소송을 했는지,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런 명백한 잘못은 병원에서 해고부터 하기 때문에 병원의 보험이 간호사를 보호해 줄 턱이 없다. 아무튼 이 일을 본 후 나는 간호사 보험을 사기 시작했다. 일 년에 한 번 100달러를 내면 100만 달러까지 배상액이 커버되고 변호사의 조력도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어떤 간호사는 '보험을 사면 오히려 해롭다, 내가 보험이 있다는 걸 알면 오히려 지불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소송을 더 걸어올 수 있다'라고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임상을 떠날 때까지 매년 보험을 갱신했다.
그런데 정말로 법원 문턱까지 갔던 일이 있었다. 환자는 연세가 많은 여자분으로 다음날 너싱홈으로 퇴원예정이라는 인계를 받았다. 입원 병명은 만성심부전이었다. 처음 환자를 봤을 때 환자는 의자에 앉아 저녁식사를 마친 후였고 나는 거의 손대지 않은 상을 치우며 환자가 변비라는 걸 알았다. 나는 의사 오더에 있는 변비약을 투약하려 했으나 환자가 거절했다. 지금 약 먹고 밤새 화장실 들락거리고 싶지 않다며 진통제를 먹고 편히 자길 원했다. 나는 진통제는 변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고 잠시 복도 산책을 할 것을 권했으나 환자는 피곤하다며 거절했다. 결국 변비 약은 다음날 새벽에 투약했다. 다음날 다시 출근했을 때 환자는 아직 퇴원하지 못하고 있었다. 낮동안 다시 한번 변비약을 투약했으나 여전히 변을 보지 못했고 복통이 심해졌다. 나는 당직 의사를 콜 하고 오더대로 관장까지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관장 약은 넣은 즉시 도로 쏟아져 나왔다. 결국 그날 밤 CT촬영까지 하고 횡행 대장에 커다란 똥뭉텅이가 있는 걸 발견했다. 밤새 환자의 구토와 반복된 관장과 컨트롤되지 않는 통증 사이에서 환자와 함께 끔찍한 밤을 보냈다. 다음날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겼고 며칠 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달 후 그 가족은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했고 그 환자를 간호했던 모든 간호사는 가족이 의뢰한 변호사의 사무실에 가서 소위 Deposition(법적 증언)이란 걸 해야 했다. 나의 증언 전날에 만난, 병원에서 고용한 변호사는 내게 우리 집에 전공서적이 뭐가 있는지 물었고 없애라는 충고를 했다. 내가 가진 책이 너무 많고 나중에 법원에 가면 내 책들이 증거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의아했지만 그의 말에 따랐다. 한국에서부터 가져왔던 몇십 년 묵은 전공책들을 다 버렸다. 사실 지금은 들춰보지도 않는 책들이고 이미 대부분 정보로서의 가치가 없어진, 그저 그 시절에 대한 향수로 갖고 있는 책들이어서 버린다고 아쉬울 것도 없었다. 나의 여덟 시간에 걸친 증언동안 병원 측 변호사가 나에게 한 말은 딱 한 번밖에 없었다.
" 너무 걱정하지 말고 빨리빨리 대답하세요. 당신은 변비간호계획을 수립한 사람이라 크게 책임질 일은 없을 겁니다."
그는 내가 환자 가족측 변호사가 내게 한 모든 질문을 되물으며 내가 질문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내 답변을 정리하고 대답하는 것이 못마땅했고 다음 간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나는 그 변호사는 병원의 이익을 보호하는 변호사이지 나를 보호해 주는 건 안중에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 증언하러 가야 했던 많은 간호사들이 해고되거나, 병원으로부터 구상권 청구를 당하는 걸 걱정했다. 나는 당시 엄청 스트레스를 받긴 했으나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 게 없었으므로.
결국 병원은 환자 가족들과 합의했는데 간호사나 의사에게 책임을 묻지도, 구상권을 쓰지도 않았다. 이 일 이후로 병원은 변비 케어 규칙을 만들었다. 이틀간 환자가 변을 보지 못하면 무조건, 금식 중이어도 변비약을 투여해야 했다. 효과가 있을 때까지 더 센 약을 투여하고 삼일이 지나면 관장을 해야했다. 이 오더는 모든 입원 환자 오더에 자동으로 편입되었다.
미국 병원에서 내가 명백한 실수를 했던 건 당뇨가 없는 환자에게 인슐린을 투약했던 일이었다. 내가 인슐린 주사라고 설명한 후 주사했는데, 약을 주고 난 후에야 환자가 자신이 왜 인슐린을 맞아야 하는지 물었던 것이다. 의사에게 보고하고 두시간마다 혈당 체크하고 환자에게 수없이 사과하고 간식도 풍성히 제공하였고 다행히 환자는 저혈당 증세없이 하루를 잘 지냈다. 소송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후 몇 달 동안 혹시 소송이 들어올까 마음 조렸었다. 요즘엔 투약 시마다 환자의 이름표와 약물을 스캔하므로 엉뚱한 환자에게 투약하는 사고는 아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실수가 없을 수 없다.
실수를 깨달았을 때 최선의 방법은 즉시 고백하는 거다. 되돌릴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숨길수록 문제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