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도 8 학군은 있다?
2003년 가을, 아이들이 처음으로 미국 학교의 문을 열었을 때부터 나는 자주 학교를 찾았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미국 학교에서,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환경에서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을 도우려면 아이들이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하는지 알아야 했다. 학부모 참관 수업이며 PTA(Parent Teacher Association) 모임은 몇 년동안 내 스케줄에 최우선 순위에 있었다. 학기 초에는 ‘Back to School Night’ 행사가 열렸다. 부모들이 저녁 시간에 초대되어 아이들의 교실을 아이들의 시간표대로 순회하며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수업 계획과 평가 기준을 듣는 시간이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이면, 한 학기 동안의 결실을 자랑하는 작품 전시와 작은 학예회가 열리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이 겪는 모든 변화에 함께하고자 이런 행사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처음 작은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담임선생님은 학부모들이 일상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을 권장했다. 초등학교 1학년 20여 명의 학생들에게는 담임선생님과 보조교사가 항상 있었고 그 반 학부모 대표인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 갈 때마다 항상 교실에 있었다. 그 어머니는 주로 선생님이 필요로 하는 수업 물품들을 준비하고 만들며 돕고 있었다. 그분은 나와 우리 아이를 자기 집에 초대하여 사적인 얘기를 할 기회도 주었다. 그분도 간호사였는데 보험 심사 업무를 하고 있고 집에서 원하는 시간에 일하고 보수도 좋다며 나에게도 그 일을 해 보라고 권하기도 하셨다. 내가 새크라멘토로 이사간다고 작별인사를 했을 때는 "가지마세요, 거긴 너무 더워요" 하며 서운해 하셨다.
새크라멘토의 초등학교에는 학년이 달라서 인지 모르나 보조교사도 없었고 그렇게 열심히 교사를 돕는 학부모도 없었다. 대신 근처의 고등학교에서 봉사활동으로 온 고등학생이 가끔 와서 시험지를 채점해 주는 정도의 도움을 주었다. PTA에서 경험한 것도 아주 달랐다. 버클리의 PTA는 학부모 중심으로 여러 사람이 여러 제안을 하고 많은 토론이 뒤따랐던 반면 새크라멘토에서 했던 PTA에서는 선생님이나 PTA 회장이 주도하여 말하고 한두 명의 질문을 제외하면 토론은 거의 없이 듣기만 하는 식이었다. 버클리의 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모이는 potluck 파티를 한 적도 있어 적극적으로 학부모들끼리의 친교를 도모하였으나 새크라멘토에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10년 넘은 기간 동안에는 그런 행사를 한 적은 없었다. 소수의 학부모들이 PTA 자금 모금을 위해 빙고 행사를 하거나 'Back to School Night' 때 음식을 팔기도 하지만 그건 친교 목적이 아닌 기금 모금 행사였다. 버클리의 학교에서는 아마도 모든 부모들이 PTA 회비를 자발적으로 내고 있어 따로 기금 모금 사업은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이건 내 짐작이므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한 번은 4학년 선생님이 도시 주변에 위치한 농장을 현장학습할 계획을 세웠다. 그 농장은 미국 개척시대의 시설과 장비들, 주택과 창고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 아이들이 그곳에 가면 소나 말도 보고 농장 시설도 견학하고 그 시절의 방법으로 우유 짜기, 식사 준비하기, 빨래하기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역사적 견학이었다. 선생님은 학습견학계획을 쓴 공지를 학부모들에게 보내고 차 편을 제공할 수 있는 학부모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참여하는 부모들이 적어 무산되었다. 그날 나도 일을 해야 해서 도울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고 이렇게 계획이 무산될 수밖에 없다니 정말 안타까웠다.
작은 아이는 6학년 때 집에서는 좀 멀지만 우리 교육청에서 가장 우수한 아이들만 진학할 수 있는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이 학교에는 성적이 좋을 뿐 아니라 학부모가 자녀 교육에 열성인 아이들이 모이는 학교였다. 중학생이 되면 부모가 동반하지 않고 혼자서도 등하교할 수 있는데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를 포기하고 먼 곳의 학교를 선택한다는 건 3년 동안의 등하교 운전이 필요하므로 부모의 입장에서는 큰 희생과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초등학교를 사립학교에서 다니다가 중학교만 시험을 쳐서 이 학교에 오고 고등학교는 다시 대학입시를 잘 지원해 주는 사립학교로 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무튼 7학년 때 학교에서 차량지원을 원한다는 편지가 왔다. 아이들이 두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바닷가에 가서 2박 3일을 지내고 오는 계획이었다. 이때는 나도 지원해서 도왔는데 7인승 차로 지원하는 부모들이 충분해서 5인승 일반 승용차로 지원하는 나 같은 부모는 몇 안되었다. 아이 교육에 열성인 부모들이 모여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그렇지 못한 학교의 학생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아는 간호사 중에는 간호사 채용 중개 회사에서 보내주는 병원의 지역이 싫어 중개회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알아보고 샌프란시스코 근처에서 취업한 용감한 간호사들도 있었다. 그때 그분들의 이유는 대부분 자녀교육이었다. 캘리포니아 내에서도 대도시 주변, 부유한 지역의 학교일 수록 고등학생들의 SAT 점수가 높다는 보고서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의 학교 분위기는 주에 따라, 도시에 따라 다르고 그 도시의 경제적 문화적 영향이 학교 안에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전체를 하나의 사회처럼 생각하거나 미국의 교육은 어떻다고 단정하는 것은 큰 오해를 초래한다. 물론 내가 경험한 건 캘리포니아 내의 두 도시, 버클리에서 열 달, 새크라멘토에서 십여 년이니 한 사람의 경험을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은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직장에서 만난 간호사들 중에는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부모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이 내게 말한,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이유는 다양했다. 한 사람은 그 학교에서 방과 후 교육을 받을 수 있어 근무 후 자녀를 데리고 귀가할 수 있어 선택했다고 했다. 여기서 방과 후 교육은 대부분 스포츠 활동이다. 또 다른 간호사는 자녀가 네 명이나 되었는데 그 아이들 중 두 명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나이였다. 그 사람은 자녀 학비만큼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또 한 사람은 자기 동네의 공립학교는 질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워싱턴의 정치인들 대부분이 자기 자녀는 사립학교에 보내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육 예산은 삭감한다고 하는 웃지 못할 얘기도 있다. 내가 미국 이민을 계획했을 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동부로 가라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들었다. 동부쪽이 전통있는 좋은 학교들이 더 많다는 권고였다. 최근에는 트럼프대통령이 연방 교육부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고 예산도 대폭 삭감하고 있으니 그 결과가 학교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