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끼
믿거나 말거나 내게는 신기(神氣)가 있다..
나의 신기를 맨 처음 알아챈 건 내 여동생이었다. 그 애는 나를 '돈암동 족집게'라 불렀다. 그 당시 우린 돈암동에 살고 있었다. 같이 버스를 탔는데 빈 좌석이 하나도 없을 때 무심코 가서 서면, 꼭 내 앞에 앉아 있던 승객이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기 때문에 붙여 준 별명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부평에 갈 일이 있어 1호선 지하철을 탔는데 빈 좌석이 하나도 없었다. 붐비는 시간도 아니어서 우린 다음 칸, 다음 칸 기차를 옮겨 가며 빈자리를 찾다가 지쳐 내가 말했다.
"그만 걷고 싶다. 그냥 서 있자. "
그 순간 내 앞에 앉아 있던 승객이 일어섰던 것이다. 이런 행운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행동했을 때에만 일어난다. 일부러 승객들을 째려보며 '이 사람이 곧 내릴까? 아니면 저 사람?' 했을 땐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꿈을 자주 꾸진 않는다. 그러나 드물게 꿈을 꾸면 이건 예지몽이야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의 두 아이들뿐 아니라 조카의 태몽까지 꿨다. 그때는 우리가 미국에 온 다음이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해서 잡담을 하다가 내가 말했다.
"엄마, 내가 태몽을 꿨는데, 복권이라도 살까? 꿈에 커다란 물고기를 잡아서 품에 안았거든."
"아이고야, 너 귀신이다. 방금 정미가 병원 갔다 오면서 임신했다고 알려왔는데"
정미는 엄마의 맏며느리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내 집' 마련을 한 다음, 나는 집을 사는 게 너무나 쉽다고 느꼈다. 게다가 지은이의 고등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미국의 학자금 융자와 장학금 등등에 관한 얘기를 듣고 나는 '가진 게 많으면 전혀 도움을 못 받는데, 가진 게 없으면 이런저런 방법으로 도움을 받는다고? 그럼 가진 걸 다 써버리든지 없애야겠네' 하는 착각을 했던 것이다. 나는 남아 있는 약간의 돈을 두 번째 집을 사는데 다운페이로 넣으면 내 통장의 잔액은 없어지고, 두 번째 집으로 재산 증식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집 값은 꼭대기를 매일 갈아 치웠고, 경제계의 저명한 사람들은 몇 년째 집값 버블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모든 경고를 무시하고 세를 받을 수 있는 아파트를 구매했다.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집을 사는 건 재산을 불리는 유일하고 안전한 방법이었다. 그 아파트를 가계약하기 전날 밤, 나는 온 천지가 하얀 눈으로 덮였다가 모두 녹는 꿈을 꿨다. 그다음 아파트의 최종 계약을 마무리하는 날에도 완전히 똑같은 꿈을 꿨다. 너무 이상해서 인터넷에 꿈해몽을 검색해 보니 눈이 녹는 꿈은 재물을 잃어버리는 흉몽이라고 나왔다. 잠시 이 계약을 깨야 하나 하고 고민하다가 그냥 계약 절차를 마쳤다. 에이, 꿈은 그저 꿈이야 하며. 그 후 미국의 리먼 부라더스 파산인지 뭔지 하는 게 터지면서 새크라멘토의 집값은 완전히 반토막으로 떨어졌고, 아파트는 약 삼분의 일까지 떨어졌다. 결국 몇 년 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게 되자 은행에 차압시킬 수밖에 없었다. 내 꿈이 기막히게 결과를 맞추었던 사례다. 그럼 나의 또 다른 목적, 대학 당국에 나의 경제상태를 빈 하게 보이기 위해 집을 산 건 잘한 일이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두 번째 집의 은행 대출 현황, 세금 보고 등이 모두 대학 당국에 들어가므로 단순히 통장에 돈이 적다고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척할 수는 없다는 걸 나는 몰랐던 것이다. 아무튼 나의 비양심적인(?) 의도로 해 본 부동산 투자는 이렇게 처절하게 실패했다.
또 한 번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꿈은 내 딸 지은이와 관련이 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애를 꿈에서 본 적이 30여 년 가까이 한 번도 없었다. 그날, 그 꿈을 꾸었을 때 까진. 내 꿈속에선 항상 둘째 아이만 나왔다. 그런데 그날은 꿈속에 그 애가 어마어마한 크기의 가슴을 가진 글래머가 되어 롱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던 것이었다. 그날 오후에 지은이가 전화를 했을 때, 나는 먼저 내 꿈 얘기를 했다. 한 번도 꿈에 나온 적이 없는 애를 꿈에서 그런 모습으로 봤으니 내겐 얘깃거리였던 거다. 내 꿈 얘기를 들은 지은이는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윽고 웃음을 멈춘 지은이가 말했다.
"저 오늘 샌프란시스코 법원에서 여자로 인정받았어요."
오, 마이, 갓.......
내 꿈은 어떻게 이걸 먼저 알았을까......
지은이는 남자로 태어났다. 나도 그 애가 여자인 걸 스물여섯 아니면 스물일곱 무렵 , 자기는 트랜스젠더 여성이라고 할 때 까진 몰랐다. 어쩌면 내 무의식은 그 애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여자인걸 알고 있어서 그 애를 남자아이로 꿈속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건 아닐까.
이번 크리스마스에 왔던 아이들이 각자 제 집으로 돌아간 후 집 청소를 하다가 거실 탁자 위에 있던 아이들 사진이 엎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우리가 새크라멘토에 왔던 첫 해에 고무 튜브로 만든 뒷마당 임시 수영장에서 지아와 지은이가 수영복 차림으로 물장구를 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너무 큰 상처를 받아야 했던 아이들이라, 우리가 미국에 온 초기 사진들은 아이들 표정이 어두웠다. 이 사진에서만큼은 두 아이가 아무 그늘 없이 밝게 웃고 있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처음엔 그게 지은이가 일부러 한 건지 몰랐다. 지은이의 고등학교 졸업 때 찍은 양복 입은 사진도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지은이에게 이 사진이 없어졌다고 했더니 한동안 웃다가 한 말이다.
"버리진 않았어요, 잘 찾아보세요.".
지은이가 다녀간 후 또다시 엎어진 사진을 발견했을 땐 , 지은이가 이 사진을 일부러 엎었구나 하고 치울까 하다가 이건 내 집이고 내 추억이고 나에게 아들이 있었던 내 기억이야 하는 생각과, 어차피 이 집에 지은이가 남자였던 걸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 뭐 어때하는 마음으로 그 사진을 다시 세워 놓았었다. 이젠 이 사진들은 모두 상자에 넣어야겠다. 지은이만 있는 사진은 아니니 버릴 순 없어하고 변명하며. 사진 속의 아들이나 내 기억 속의 아들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내 딸이 몇 배나 더 소중하니까.
간밤에 꾼 꿈 덕택에 오늘은 행복하다. 박보검 씨와 데이트하는 꿈을 꾸었다. 하하. 죄송함다, 박보검 씨.
P.S. 삽화를 위해 이 글을 지아에게 보냈더니, 지아가 사진 액자를 엎은 건 자기였다고, 실수였다고, 바로 세우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한다. 처음엔 '아, 글을 새로 써야겠네' 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지은이가 엎은 게 아니라면 그 애가 자기 자신에게 좀 더 편안해졌다는 뜻이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내 마음 또한 진실이다.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사진을 치우는 건 잘 한 결정인 것 같다. 사진들을 치우다가 양복 입은 고교 졸업사진을 다른 사진 뒤에서 발견했다. 비치되어 있던 모든 사진을 상자에 담았다. 근데 상자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아직 정하질 못했다. 나는 정리에 잼병이고, 버리는 건 더 잼병이고, 언제 다시 그 상자를 열 날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식탁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