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버스? 빛 좋은 개살구
톰 행크스가 포레스트 검프에서 시골집 앞에서 딸을 배웅하고 맞이하는 그 가슴 따뜻한 장면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나는 미국스쿨버스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가 등하교를 도울 수 없거나 걸어갈 수 없는 아이들은 모두 스쿨버스를 타고 등하교하는 줄 알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새크라멘토에서는 깨몽이라고나 할까. 스쿨버스는커녕 일반 대중교통도 빈약하기 짝이 없어 이용률이 낮고, 있는 노선도 단축되기만 하지 지난 20년 동안 늘어나는 걸 보지 못했다. 며칠 전에도 전철 운행을 감소시킨다는 뉴스가 있었다. 인구가 줄은 것 같진 않다. 도로 위의 차량은 계속 늘어나니까. 여긴 집집마다 성인의 수만큼의 자동차를 가지고 산다. 나의 오른쪽 집은 코로나 기간에 두 부부와 그들의 아들과 딸의 커플 등 여섯 명의 성인이 거주했는데 그 집 앞에는 여섯 대의 자동차가 주차해 있었다.
나는 두 아이가 스스로 운전할 수 있을 때까지 아이들을 내 차로 등하교시키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참고로 여기서는 만 15.5세가 되면 필기시험을 볼 수 있고 통과하면 운전연습자격증을 받아 보호자를 옆자리에 앉히고 운전 연습을 할 수 있다. 만 16세가 되면 내 차를 가지고 가 운전 시험을 본다. 내가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땄을 때는 면허시험장에 있는 스틱 차로 시험을 봤는데 미국에서는 스틱이건 오토건 관계없이 자기가 차를 가지고 가서 시험을 보는 건 또 다른 문화적 충격이었다. 한국에서는 면허를 딴 후 시내연수를 하지만, 미국에서는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연수를 받을 수 있고 세 번의 연수 후 받는 연수 증명서가 있어야 미성년자는 운전 실기 시험을 볼 수 있다. 큰 아이가 운전면허를 땄을 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행여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아이들이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었다. 아이들 통학 때문에 곤란을 겪던 나는 그때 바로 차를 한대 더 샀다. 처음엔 한국에서 듣던 대로 고등학생 초보운전자들이 산다는 값싼 중고차를 사려고 했는데 아이가 말했다. "초보운전자는 운전이 미숙하니 사고 날 가능성이 많고 그러니 더욱 안전한 차를 타야 해요". 이 말은 내게 충격에 가까운 깨달음을 주었다. 아, 그래, 내게 가장 소중한 아이를 안전이 걱정되는 차에 타라 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가. 나는 1년 된 중고차를 사서 내가 타고 그때까지 내가 타던 3년 된 차를 아이에게 주었다. 둘째 아이가 운전면허를 땄을 때는 다시 내 차를 아이에게 주고 나는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Lyft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제 곧 아이가 대학으로 가면 차만 덜렁 남을 것이어서 차를 또 사는 건 낭비였다.
스쿨버스가 없는 건 아니다. 있긴 있다. 그런데 너무 적다. 돌아야 되는 면적은 넓고 노선은 몇 개 안 된다. 초등학교는 스쿨버스가 있지만 학생 수가 적다. 한 학년에 세 반, 23명씩 세 반이니 5 학년까지 해도 스쿨버스를 타는 아이가 몇 명 안 되고 한 학교에 한 대쯤 있는 것 같다. 중학교는 학생 수가 더 많고 고등학교는 학생 수가 더 많은데 버스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돌아야 하는 면적도 넓어진다. 몇 개의 초등학교 스쿨 존을 묶어 한 개의 중학교 스쿨 존이 되고 다시 몇 개의 중학교 스쿨 존이 모여 하나의 고등학교 스쿨 존이 된다. 큰 아이가 가야 했던 중학교는 집에서 차로 가면 10분 미만에 갈 수 있었지만 스쿨버스를 타려면 학교 시작 한 시간도 더 전에 정해진 스쿨버스 승하차 지점까지 15분은 걸어가서 다시 한 시간은 차를 타고 온 시내를 골목골목 돌아야 했다. English learner라 스쿨 존 밖에 있는 학교를 가야 해서 일단은 이쪽 존에 있는 학교까지 간 다음 스쿨버스를 갈아타고 최종 목적지인 학교까지 가야 했다. 첫날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녀온 아이는 울먹울먹 했다. 하교 길에 스쿨버스가 집 앞 골목을 지나갈 때 내려달라고 했는데 안 내려주고 정해진 승하차 지점까지 가서야 내려주었단다. 새크라멘토의 8월 중순은 아이들이 하교하는 오후 4시 무렵 가장 덥다. 구름 한 점 없는 쨍한 하늘아래 고층 건물이래야 2층짜리 주택이 전부인지라 50도는 우습게 넘는 달걀프라이도 할 수 있는 아스팔트를 15분은 걸어왔어야 했다. 작은 아이는 더 학교가 멀었고 가능한 스쿨버스도 없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나는 근처의 한국인 교회를 갔다. 거기서 만난 분의 도움으로 몇 달 아이들의 등하교 길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당시는 내가 오리엔테이션 중이라 낮 근무를 하고 있어 딴 방법이 없었다. 아이들은 가기 싫어했지만 도움을 받던 몇 달 동안은 주말마다 교회를 갔다. 그분이 더 도와줄 수 없다 했을 때는 같은 골목에서 베이비 시터를 한다고 하는 백인여자 집에 찾아가 아이들의 등교를 맡겼다. 이 때는 내가 야간근무를 하던 때였는데 -미국 간호사는 교대근무를 하지 않고 야간 근무자는 늘 야간 근무만 한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가 자주 있었다. 그 여자는 수시로 연락도 없이 안 오고 내가 전화하면 아파서 못 온다고 하기 일쑤였다. 몇 번 그런 일을 당한 후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모두 5분 이내에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집을 샀다. 어떤 이들은 100 집도 더 보고 집을 산다고 하는데 나는 집을 보러 나간 첫날 서너 번째 본 집을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이때가 2004년 10월 말이다. 그래서 등하교 라이딩이 끝났냐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아이들은 다음 학교에 진학할 때 멀리 있는 학교를 가길 원했고 나는 다시 2005년 가을학기부터 둘째 아이가 16세가 되어 면허를 딸 때까지 라이딩을 했다.
아이들이 다녔던 고등학교는 IB ( International Bachelors) program을 운영했고 그게 우리를 유혹했다. 물론 선생님들의 강력한 권유도 있었다. 아이들이 다녔던 미라로마 고등학교는 우리 집에서 아침 등교 시간에 25분 이상 걸렸다. 내가 일하던 병원에서 밤근무를 마치고 최대한 빨리 돌아와도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가면 매일 지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래도 시내버스가 우리 집 근처를 지나가는 노선이 하나 있어 큰 애는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내린다. 여기서 걸어가면 5분 지각이 불가피했다. 학교는 내 직장과 집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나는 버스 하차 지점에 먼저 가서 기다려 아이가 오면 학교로 날랐다. 이 무렵 둘째는 집 근처 5분 미만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나는 하교 시에만 가서 데려오고 등교 시에는 혼자 가게 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학교 가는 길 쪽에 두 번째 집에 살던 노부부는 나에게 자기들이 늘 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신 지 오래고 두 분의 딸 가족이 그 집에 살고 있다. 집에 가서 아침 먹고 씻고 침대로 가면 오전 9시, 다시 오후 2시가 되면 일어나 아이들 학교에 가서 집으로 데려오는 생활을 8년 넘게 반복했다. 둘째가 고등학교에 갔을 때는 그나마 그 버스 노선이 없어졌다. 다행히 카풀할 학생을 구해서 그쪽 아빠가 등교를, 내가 하교를 담당하기를 9-10 학년 동안 했을 때가 가장 편안했다. 그 사이 잠깐씩 등하교를 위해 아이들은 자전거도 이용해 보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이용한 적도 있었다. 큰 애가 운전을 할 수 있었던 12 학년 때는 큰 애가 작은 애를 아침에 중학교에 데려갔다. 아침에 화장실 들어가면 족히 한 시간은 나오지 않는 사춘기 첫째 때문에 둘째는 아침마다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늦었어'를 외치며 발을 동동거리기 일쑤였다.
둘째가 운전면허를 딴 후 비로소 나는 9년 간의 밤근무를 접고 낮근무로 옮길 수 있었다. 힘들었지만 아이들은 늘 올 A 학생이었다. 반면에 난 정말 대단하면서도 어리석었던 엄마다. 왜 나는 그렇게 힘든 길을 택했을까? 왜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었을까? 나의 한국적 일등주의가 우리 모두를 불필요한 고생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닐까? 5분 거리에 있는 중 고등학교를 놔두고 굳이 그 멀리 있는 학교들을 다니느라 고생했는지. 지금 내가 다시 선택한다면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 건 아이들이 원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선택의 책임은 보호자인 나에게 있다. 등하교는 나만 고생시킨 게 아니라 아이들도 고생시켰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IB program 이 그런 고생을 감수할 값어치가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IB program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