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슈퍼에서? 약 보험은?
내가 미국에서 처음 약처방전을 받았을 때는 2004년, 미국에서 처음 취업하여 보험카드를 받아 들고 안과 의사를 찾아갔을 때였다. 운전하고 다니며 교통표지판들을 멀리서 읽을 수 없어 곤란을 겪고 있었던 나는 새 안경을 맞추면 나아질까 싶었다. 참고로 미국엔 안과보험과 치과보험은 일반적인 의료보험과 분리되어 있다. 좋은 직장에서는 의료보험 외에 안과보험과 치과보험뿐 아니라 애완동물을 위한 단체보험도 저렴한 가격에 가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미국의 안경점들은 대부분 안과의사가 운영한다. 물론 대학병원에 소속된 안과의사들은 따로 안경점을 운영하지 않고 수술 중심의 진료를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안경점들은 안과의사들이 진료를 한 후 처방하여 안경을 맞춘다. 내가 처음 찾아가 안경처방을 해주셨던 김 선생님은 그 후 오랫동안 우리 가족의 안과 선생님이었는데 이젠 은퇴하셔서 그분 아들이 같은 곳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내가 지난 이십 년간 가입했던 안과 보험 회사는 그들이 운영하는 공장이 있었다. 안경점에서 안경테를 선택하면 그 안경테와 의사의 처방, 안경사가 측정한 눈거리 등을 기록하고 내가 선택한 안경 옵션-압축 렌즈, transition 등등을 기록하여 보험회사가 운영하는 공장으로 보낸다. 2주일 후, 안경이 완성되면 집으로 보내주거나 찾아가라는 연락이 온다. 안경점에서 바로 만들어 주는 경우는 의사가 응급이라고 요청하여 보험회사가 승인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김 선생님은 내게 안경처방뿐 아니라 안약 처방도 해 주었다. 내 눈이 알레르기 증상을 심하게 보이고 있다고 했다. 새크라멘토는 나무도 풀도 많고 분지로 형성된 지형 때문에 이곳에 새로 온 사람들은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무튼 나는 약처방을 들고 집 근처 약국에 갔다. 새크라멘토엔 한국처럼 약사가 운영하는 소규모 약국은 없다. 이곳의 약국은 코스트코나 월마트 같은 대형 매장 안에 작은 부스를 가지고 운영하고 약사들도 그 매장에 고용된 직원이다.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세이브마트라고 하는 식료품매장이 있었고 그곳에 약국이 있어 나는 처방전을 그리로 가지고 갔다. 세이브마트에는 한동안 한국인 약사가 한 분 있었는데 그분은 그곳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입원한 환자들의 약을 담당하는 약사로 취업하길 원했는데 그 소원을 이루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2년 후에는 더 이상 그분은 볼 수 없었다.
접수를 받는 직원이 처방전을 보고 물었다.
"여기 처음 오셨나요? 약 보험이 있으신가요?"
"잘 모르겠는데요."
"보험이 없으시면 100달러씩 두 개의 안약이 200달러입니다."
나는 사실 내가 약보험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처음에 취업했을 때 직원혜택 선택이라는 두꺼운 서류를 받아 들고 뭐가 뭔지 읽고 또 읽어도 여러 보험 중에 무얼 선택해야 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대충 이것저것 표시해서 냈을 뿐 나는 내가 선택한 것이 무언지, 닥쳐보기 전엔 몰랐다. 다행히 내 의료보험은 약을 포함했고 본인부담액이 10달러였다. 본인 부담액은 약마다 따로 계산한다. 따라서 두 개의 안약은 이십 달러였다. 만약 여러 개의 약을 복용한다면 그 개수만큼 본인부담액은 늘어난다.
또 보험의 종류에 따라 이 보험은 특정약을 보험에서 인정하는데 저 보험은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내가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져 Nasonax라고 하는 약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내가 B의료보험을 가지고 있을 때는 10달러씩만 내면 되었으나 내가 C 보험으로 바꿨을 때는 Nasonax를 보험에서 인정하지 않아 35달러를 주고 사야 했다. 보험회사는 대부분 오리지널 약이 비싸기 때문에 복제약이 있다면 복제약-이것은 generic이라 부른다-만 보험에 포함하고 오리지널 약은 보험지급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후 나는 Nasonax를 포기하고 유사약인 Flonase를 사용하고 있는데 Flonase는 처방 없이 슈퍼에서 그냥 살 수 있는 약으로 분류되어 있어 보험은 커버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약보험은 의사가 처방해야 살 수 있는 약에 한정된다. 슈퍼에 진열되어 있는 감기약, 제산제, 비마약성 소염진통제 등등은 의사 처방도 필요 없고 보험도 커버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10년 이상 일해서 세금을 내고 65세가 되면 메디케어라고 하는 보험에 들게 되는데 이때 약보험을 따로 가입하지 않아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 임의로 약을 중단하는 저소득층이 많다. 또 약보험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신약의 경우에는 보험이 커버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보험이 커버하지 않는 비싼 약을 캐나다의 온라인 약국에서 반 값에 산다고 하는 환자도 있었다. 이게 합법적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요즈음에는 의사들이 처방전을 전자화하고 있어 내가 가는 약국이 어딘지 의사 사무실에서 확인한 후 의사가 약오더를 내면 내가 지정한 약국에서 약이 준비되면 연락해 준다. 전자시스템을 이용한 처방전 전달은 온라인을 이용하는 약국을 발달시켰다. 보험회사들은 자체적으로 온라인 약국을 운영하고 동네 슈퍼마켓 약국보다 본인부담액을 할인해 준다. 예를 들면 10달러인 본인부담액이 온라인약국을 이용하면 7달러로 감소한다. 만약 10개의 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온라인 약국을 이용하면 한 달에 30달러를 절약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약국을 이용한다. 그 결과 소매 약국들은 문을 닫고 있다. 온라인약국의 문제는 약을 받기까지 일주일이상 걸린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쪽에서는 보냈다 하고 나는 받지 못한 채 열흘이상 갈 수도 있다. 장기간 계속 상용하는 약은 온라인약국을 이용하면 비용 절약에 더해 편리하기까지 하지만 새로운 약을 처방받았다면 동네약국에서 당일 사야 한다. 우리 동네에는 24시간 운영하는 약국이 딱 한 곳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이 월그린약국이 이제 문을 닫는다고 하는 뉴스를 보았다. 이렇게 늦게까지 하는 약국은 내가 늦은 시간에 응급실이나 urgent care center에서 처방을 받고 귀가할 때 꼭 필요한 곳이다.
내가 은퇴 후 가입한 K보험은 자체 약국이 있어 무조건 K약국으로 처방이 가게 되어 있다. 내가 복용하는 한 가지 약은 지난 15년간 무료였으나 메디케어 K보험으로 바꾼 후 처음엔 약국에서 바로 구매하면서 석 달 치에 11달러를 냈다. 두 번째 석 달 치는 온라인 약국에서 무료였다.
메디케어 약값은 청구서를 받을 때까진 아무도 모르게 계산 방법이 복잡하다. 1월에는 10달러였던 약이 10월이 되면 200달러가 될 수도 있다. 보험에서 커버하는 총비용의 상한선이 있기 때문이다. 약에 따라 본인부담액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어 처방받고 두세 달은 전액 본인 부담하다가 그 한도에 다다르면 그 후에는 보험에서 커버하는 경우도 있다. 약마다 등급을 정해 놓고 1 등급의 약들은 무료에 가깝고 4 등급의 약들은 보험에서 매우 적게 커버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당뇨약의 경우 나온 지 오래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경구용 약은 싼 반면 신약인 GLP1그룹의 약들은 보험에서 커버한다 하더라도 비싸다.
미국에서 의료보험에 가입할 때에는 만약 장기간 상용하는 약이 있다면 그 보험이 본인이 필요한 약을 커버하는지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