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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혹은 짐 3

낡은 집 혹은 너무 넓은 집

by 새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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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를 읽다가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50 년 된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언제 집이 무너져 죽게 될지 몰라 매일 저녁 목욕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잔다는 것이다. 거기엔 구멍 뚫린 천정의 사진도 있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도 50 년이 넘었는데..... 낡은 집이라 잊을만하면 여기저기서 손 봐달라 삐걱거리긴 하지만 아직 무너질 걱정을 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집은 1972년에 지어진 목재 단층집이다. 내가 이 집을 샀던 2004년에 나는 아이들의 등하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 중 고등학교에 둘러싸여 있는 위치라는 거 하나만 보고 이 집을 샀다. 침실 세 개, 화장실이 두 개 반이다. 화장실이 두 개 반이란 말은 하나는 샤워 없이 변기만 있단 뜻이다. 세 명의 가족에게 세 개의 침실이 딸린 집은 넉넉했다. 내가 공인중개사에게 제시했던 집의 조건은 두 가지였다. 위치가 학교 근처여서 아이들이 도보로 다닐만할 것과 단층집. 이층 집이면 아이들은 위층의 자기 방에 있고 아침마다 나는 위를 향해 "늦었어, 빨리 내려와"를 외치고 있을 게 뻔했다. 또 다른 이유는 날씨 때문이다. 새크라멘토의 여름은 덥다. 사막성 기후라 밤이 되면 시원해지긴 하지만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찬 공기는 밑으로 내려오는 지라 이층 집은 위아래 온도 차이가 현저해서 침실들이 모여 있는 위층은 밤이 되면 더 에어컨을 세게 가동해야 할 것이었다. 여긴 겨울에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거의 없어 난방은 문제 되지 않는다.

지인들이 가끔 집을 방문하면 혼자 살기엔 너무 크다고 작은 집으로 이사하라고 권한다. 아이들이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방학엔 집에 왔으니 방 세 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젠 둘 다 독립해서 자기 집들을 꾸리고 살고 있으니 일 년에 한두 번 다 같이 모이는 크리스마스 연말 연초가 아니면 방 세 개는 필요 없었다. 몇 년 전엔 이사 갈 궁리를 하며 새로 짓는 집들을 찾아보았다. 이사를 가려면 은퇴하기 전에 해야 모기지를 좋은 조건에 받을 수 있다는 충고도 있었다. 이십 년 가까이 낡은 집에 살아 보니 이젠 낡은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웬만한 건 다 자기 손으로 수리하는 미국인들과 달리 늘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나는 적지 않은 돈이 들었고 귀찮고 힘든 일이기도 했다. 이젠 학교와의 거리 따윈 걱정할 필요 없으니 도시 외곽에 새로 지은 작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었다. 문제는 지금 사는 집보다 크기가 작은 새 집은 찾을 수가 없었던 거다. 이 동네에선 30평 이하의 단독주택은 지어진지 8-90년은 넘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새크라멘토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동북쪽으로 두 시간 정도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되는 거리에 있다. 캘리포니아의 수도라 공무원이 많고 베이지역에 살던 부자들이 은퇴하여 오기 때문에 도시는 계속 확장하고 있다. 이곳의 집 값은 베이지역의 반 밖에 안되지만, 문제는 새로 짓는 집들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집들은 지어진 시기마다 유행과 특색이 있어 이십 년 넘게 살다 보니 이젠 언제 지어진 집인지 눈대중으로 대강 알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집 높이이다. 이 동네에서 1960년대 이전의 집들은 집이 낮고 창문도 더 적고 이층 집이 별로 없다. 반면 2000년 대 이후에 지어진 집들은 단층집이 별로 없고 단층이라 하더라도 천정의 높이가 아주 높고 창문의 크기도 그만큼 커진다. 2000년대 이후의 집들도 최근으로 올 수록 건물만 크고 대지가 적어서 집과 집 사이가 좁아진다. 이층 집들이 붙어 있으니 아래층 거실 안이 옆집 위층에서 환히 내려다 보이기도 하고 창문을 닫아도 옆집 소음이 뚫고 들어오기 일쑤다. 몇 년 전에 지어진 집들은 그래도 뒷마당이 조금은 있었는데 최근에 지어진 집들은 그나마도 거의 없다. 미국에서 앞마당은 대부분 울타리도 없고 이웃들과 공유하는 공간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공유는 시각적 공유 만을 뜻한다. 정당한 이유 없이 남의 집 앞마당을 들어가면 그것도 침입이라 간주된다. 나의 둘째가 초등학교 시절,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아직 3년이 채 안된 무렵에 친구와 앞집 잔디밭에 앉아 있다가 쫓겨나 화를 내며 집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어쨌든 뒷마당은 완전히 사적 공간이다. 특히 집집마다 울타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에선 그렇다. 그런데 요즘 지어지는 집들을 보니 건물과 울타리 사이가 2미터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집을 지어 파는 건축업자들은 집이 커야 이익이 많이 남는다고 한다. 집 가격은 건축면적이 좌우하지 대지 면적은 별로 계산하지 않는 반면 가구당 대지를 줄여야 대지 개발 비용을 줄여 이익이 많이 남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새로 짓는 집들 중엔 한국인에게 익숙한 평수로 계산해서 50평 미만의 집은 찾아볼 수가 없는 반면 대지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의 4분의 1 정도이다. 이곳은 아직도 빈 땅이 넉넉하여 대도시처럼 고층 아파트를 세우는 경우는 거의 없고 있다 해도 임대용의 아파트가 대부분일 것이며 시끄럽고 주차하기 어려운 도심지엔 살고 싶지 않아 도심지 쪽은 찾아보지도 않았다. 시니어타운에 가면 약간 작은 사이즈가 있을지도 모르나 나는 아직은 시니어타운에 가서 수시로 이웃 중 누군가가 사망했다는 얘길 듣거나 날마다 앰뷸런스 소음을 가까이 들으며 살고 싶지도 않다. 결국 나는 인터넷으로 주변 도시들의 집들을 몇 달간 둘러보다가 포기하고 이 집에서 계속 살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나 혼자 살기엔 너무 큰 낡은 집, 올라가기만 하는 세금과 화재보험료, 기타 유지비를 감당하고 집을 돌볼 수 있을 때까진 이 짐을 모시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다음엔? 노인들을 위한 역모기지를 하거나 팔고 조그만 시니어아파트로 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운이 아주 좋다면 너무 늦기 전에 이 집에서 죽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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