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2일째 기록)
장난감이 없어도 신나게 놀았던 때가 있다.
그 중에 제일은 그림자놀이였다.
어두운 방에 스탠드만 켜놓고 손으로 나비를 만들어 날리는 놀이.
강아지를 만들어서 멍멍 소리를 내고 키득거리던 순간.
피터팬이 그림자를 잡으러 다니는 것처럼 내 그림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상상한 적도 있다.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의 재미와 밝을 때는 보지 못하는 그림자의 신비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졌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한숨과 함께 시선을 땅에 내리깔며 어둔 밤길을 걷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 일러지면서 가로등이 켜지는 시간도 앞당겨졌다.
주말 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가족의 놀이가 시작되었다.
가로등이 엄마와 아빠의 그림자를 만들면 봄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놀이.
아이는 그림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쁘게 찾는 놀이.
걷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길어지는 귀가시간이 오히려 행복했다.
봄과 놀았던 길은, 우리 부부의 출퇴근길이기도 했다.
정신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았던 길.
고된 업무 끝에 터덜터덜 걸었던 길.
아이와 함께 추억을 만드니 더는 힘든 길이 아니게 되었다.
아기인 봄이 학생이 된다면,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그림자를 만난다면,
지금의 즐거움을 기억해주길.
함께 즐거웠던 길에 아빠와 엄마가 함께 했음을 추억하길. 반갑게 손을 흔들고 인사하며.
+ 이 영상에 아내가 남긴 글 : 두 남자 덕분에 버티는 10월
+ 사실 내가 한 여자, 한 남자 덕분에 가까스로 버텼던 10월. 그리고, 11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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