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적응 중인 서울살이
나에게 있어서 책과 글쓰기는 외롭고 힘든 서울살이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친구이자 동료였다. 이 마저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서울살이에 지쳐 쓰러져 다시 부산으로 돌아갔을 것 같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책 읽기 위해 도서관을 드나들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읽고 싶은 책만큼은 마음껏 사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도서관이 워낙 멀기도 했고, 기한 내에 빌리고 제출하는 과정이 당시 나에겐 여간 귀찮고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한 권씩 사 모은 책이 방 안에 가득한데 요즘은 이사 갈 때마다 너무 힘들어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사실 고민이긴 하다. 전자책을 읽으면 되지만 그러지 않는 것도 약간 고집스럽긴 하지만 종이 책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느낌이 좋고, 종이 냄새가 좋다. 그래서 여전히 제 돈 주고 책을 사 읽는 걸 보면 아마도 평생 이러지 않을까 싶다.
은행경비원을 하던 시절, 정말 많은 책을 읽었다. 못해도 수백 권은 되지 않을까?. 내 방 안에 있는 책만 해도 족히 200~300권은 되니 말이다.
당연히 읽는 게 좋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나는 그 정도를 넘어 약간 집착하다시피 읽어댔다. 뭐,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내 기준에서는 엄청 많은 양이었다. 많이 읽으면 한 달에 6~7권은 읽었으니 일주일에 1~2권은 꼭 읽은 샘이었다.
은행에 손님이 없으면 딴짓 안 하고 앉아 책 읽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점장님께서 허락하여 읽었던 것이라 매번 지점장님이 바뀔 때마다 눈치를 보면서까지 그랬던 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책이라도 잃지 않으면 나라는 사람이 너무 볼품없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불안하고 힘들 때면 늘 나는 책 속으로 도망치곤 했다. 그곳에는 내가 진짜 나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완전하고 불안했던 나를 책이라는 성벽으로 꽁꽁 둘러싸서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게 그렇게 철저하게 막았던 것 같다.
나의 시간이 최저 시급으로 퉁 쳐 버리기 너무 아까웠다. 젊은 날에 나의 시간이 그저 최저라는 게 억울하고 안타까워 그 시간을 그저 최저로만 채우고 싶지 않아 그렇게 책을 붙잡았던 것 같다. 나의 시간에 값을 사회적 기준에 맞춰 매겨지는 것 자체가 당시엔 억울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악착같이 읽어댔다.
지하철 출퇴근 길 낙성대입구역에서 마포역까지, 신촌역에서 성수역까지 3~4년 내내 읽은 책들은 사실 나를 살렸던 길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했으면 어땠냐고 말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을 것이다. 은행경비원 카페에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자주 올라왔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잠깐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것을 할 거였다면 서울에 올라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취업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나를 알고 찾고 싶었다.
정해진 것도 없고 무엇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왠지 이것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저는 은행경비원입니다.’에서도 썼듯이 영화 소공녀에서 주인공 미소가 집은 잃어도 절대 잃을 수 없었던 것인 ‘담배’ ‘위스키’ ‘남자친구’를 지켰던 것처럼 나에게도 무엇보다 내어 줄 수 없었던 게 바로 ‘책’과 ‘글쓰기’이지 않았을까?
아마도 모두의 가슴속엔 그런 잃지 않아야 하는 무언가 있을 것이다. 만약 지금 없다고 느낀다면 지금부터라도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뭐든 쉽게 실증내고 포기했던 내가 유일하게 놓지 않았던 것을 찾은 만큼 누구든 어떻게든 찾으려 한다면 반드시 기어코 찾아질 것이라 믿는다.
나는 이것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자 길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세요!
나는 그저 원하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방향을 따라 묵묵히 왔을 뿐이다. 사회가 정의 내린 방법과 과정과 법칙을 따르지 않고 기어코 여기까지 끌고 왔다. 무겁고 무서워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을 때 내가 찾은 나의 무기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비단 직업이란 테두리를 넘어서 온전히 나를 나로서 만들어 주기에 나에겐 창과 방패인 것이다. 그랬기에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롭지만 춥고 차갑지만 서울이란 땅에 살 수 있었던 이유였다. 지금 당장 직장을 잃는다 해도 나는 이제 두렵지 않다. 나에겐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오히려 그러길 바라는 지도 모르겠다. 더 자유로이 나의 것을 펼칠 수 있는 순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