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적응 중인 서울살이
서울에서 10년간 방황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또 나란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탐구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고, 지금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이 과연 정말 나에게 정답인지는 잘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쓰는 행위와 읽는 행위는 나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 되었다. 몰입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고, 태어나서 뭔가를 잘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직업으로써 두 가지의 쓰는 일을 하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월급을 받는 쪽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글 쓰고 나면 사실 더는 쓰고 싶지 않게 된다.
입사하고 초반에는 적응하느라 그런 것이라 여겨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업무는 내 안에 쓰고자 하는 욕구를 잃게 만들었다.
덕업일치라고 취미가 직업이 되면 그것만큼 행복한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면 얼마나 기쁘게 일할 수 있을까 상상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행복하거나 기쁘진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일로 인정받는 것 그리고 스스로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일보단 조금 더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21년 1월에 책을 낸 후로 회사에서 쓰는 글 이외에 나를 위한 글은 전혀 쓰지 못했다. 사실 사원일 때는 퇴근 후 조금은 쓸 수 있었겠지만, 게으른 것도 있었고 한 동안은 조금 쉬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또한 아직 책 낸 지 얼마 되지 않았기도 하여 조금 나태했던 것도 맞다.
아마도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난 후로 안정된 삶에 심취했던 것도 있었다. 말고도 사실 딱히 쓸만한 거리가 없었던 것도 맞는 말이었다. 에세이란 본디 삶에서 우러러 나오는 것들인데 반복적인 일상과 뻔한 일들 속에서 글감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러한 핑계로 계속 글쓰기를 미뤄왔던 것이다.
그렇게 23년도가 되고, 똑같은 1년을 보낸 후 24년도부터는 진급하여 회사 일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더 시간이 없어져 책도 글도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간간이 독립출판 행사를 나가면 다른 작가들의 신작을 보곤 자극받을 때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때뿐이었다. 또 일상을 살다 보면 자연스레 잊어먹게 됐다.
24년도 12월, 글쓰기에 심한 회의와 지난 책에 대한 후회로 가득했을 땐 아예 책 만들기와 글쓰기를 포기할까 생각도 했다. 내가 든 펜 끝이 너무 날카로워 그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걸 그땐 미처 몰랐었다.
단 한 번도 책을 낸 걸 후회한 적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잠깐 후회했다. 이렇게 되니 더는 뭔가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25년 한 해는 아무런 행사도 나가지 않고 서점에 비치해 뒀던 책들도 모두 회수하여 더 이상 작가로 활동하지 않게 됐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지만 사실상 기약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형 동생들과 오랜만에 가진 술자리에서 친한 동생이 나에게 말했다.
“형은 히읗을 잃어버렸어.”
“뭐야 이 오글 거리는 말은…”
그 녀석은 술 마시는 내내 글 쓰지 않는 나를 부추겼고, 책망했고, 타일렀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그냥 알겠다고 앞으로 쓰겠다고 했는데 2년 전에도 그렇게 말해 놓고 지금까지 안 쓰고 있다며, 계속 나를 몰아붙였다.
슬슬 짜증이 날 것 같아 그만하라고 했지만 취했는지 녀석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녀석을 데리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보다 내 글을 많이 좋아했던 것이다. 솔직히 난 몰랐다.
아무래도 취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전날 일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여 아침에 일어난 후 어제 일을 동생에게 물었다. 그런데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 모든 말이 전부 진심이라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누군가 내 글을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그냥 쓰고 싶을 때 쓰는 오직 나 만을 위한 글을 써 왔는데 사실상 책을 낸 후로부터는 내 글은 이제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음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예전에 유튜브 촬영을 위해 만난 분이 있었다. 아마도 대학생 여자분이었는데 그분께서 나에게 해 주신 말이 떠올랐다. ‘저는 은행경비원입니다'를 읽으며 지하철에서 눈물이 났다는 말을 해 주셨다. 우리 엄마 정도는 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모르는 누군가의 눈에 눈물이 날 정도로 내 글이 공감되고 감동될 줄은 정말이지 상상치 못했다.
친한 동생을 만났던 날 이후로 나는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다. 아마도 난 이 말을 기다려왔던 것 같다. 다시 글 써 달라고, 다시 써도 괜찮다고 충분하다고, 그 말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고맙고 감사했다.
다시 글 쓰려고 하니 뭘 써야 할지 몰라 잠시 방황하다가 우연히 ‘서울’이라는 키워드가 내 마음에 들어오게 됐다.
26년도가 되면 서울에 올라온 지 딱 10년이 된다는 말을 친구에게 하면서, 10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서울이 낯설고 적응이 안 된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뱉고 난 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10년이란 시간은 꽤 긴 시간이다.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이곳이 낯설고 적응하지 못했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게 됐고, 서울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느꼈다.
좋아하는 가수가 있는데 그분의 새 앨범의 주제가 ‘서울’이라는 것을 듣고 나도 주제를 서울로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고 나니 몇 년 동안 쓰지 않던 글쓰기가 정말이지 봇물 터지듯 술술 쏟아져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몰입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재미있게 쓰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여러 동료 작가님들의 책 속에는 다들 자신만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멈춰 있는 나를 바라보며 조금씩 꿈틀거렸던 마음들이 이제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계속 이러한 과정들을 반복하게 될 테니 조금은 유연하게 그리고 여유롭게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