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적응 중인 서울살이
서울에 와서 한 가지 놀랐던 것은 사람들이 자주 내가 화났다고 느낀다는 것이었다. 나는 즐겁고 좋아서 목소리가 커진 것뿐인데 사람들은 내가 화났다고 생각했다. 사투리 때문인가? 억양이 강해서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사실 지금까지 이런 경험을 해 본 적 없어서 나도 놀라고 상대도 놀랐던 경험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사투리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 볼 법도 한데 나는 워낙 성향이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라 나의 것을 바꾸기 싫어하는 그런 똥고집이 있었다. 사투리를 쓰는 내가 진짜 나라고 생각했다. 외부 환경 때문에 나의 고유한 것을 바꾸는 건 멋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10년간 서울에 살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보니 이젠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말했을 때 화가 났다고 느끼는지 알 것 같았다. 가끔 말을 하다가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알게 된다. ‘아, 지금 내가 화났다고 생각하겠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그럴 때면 먼저 말한다.
“저 화난 거 아니고 그냥 좋아서 목소리가 커진거예요!”
말투 때문에 조금 오해를 사기도 했고, 첫인상이 좋지 않을 때도 있어서 이쯤 되면 바꿀 만도 한데 아직도 그럴 생각이 없는 걸 보면 아마도 평생 못 바꿀 것 같긴 하다. 사실 내가 서울말을 쓰는 걸 친구들이나 동생이 들으면 높은 확률로 나를 죽이려 들지도 모르겠다.
은행 경비원 시절, 하루는 손님 중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던 분도 계셨다.
“왜 이렇게 불친절하세요??”
사람 면전에 그렇게 대 놓고 불친절하냐는 말을 들으니 순간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드리니 그분도 아차 싶으셨는지 괜찮다고 연신 말씀하셨다.
어투의 문제인가? 사실 부산에선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곳 서울은 정말이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처럼 느껴졌다.
은행 팀장님은 나에게 가끔 말씀하셨다.
“주임님, 조금만 예쁘게 말하면 어떨까? 아니면 조금 부드럽게 말해 볼래?”
예쁘게 말한다는 것은 뭘까? 나에겐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나름 친절하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니 참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이것의 정점은 아무래도 연애할 때가 피크를 찍는다. 서울에 와서 진짜 서울에서만 나고 자란 사람을 만났을 때는 예쁘게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말 깊이 고민해 본 적도 있었다. 내가 선택해서 쓰는 단어, 그리고 말의 운율, 데시벨 등등 단순히 ‘서울말’을 쓴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 번은 예전에 만났던 여자친구 옆에서 엄마와 통화하는데 통화를 끝내고 여자친구에게 호되게 혼이 났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어머니께 그렇게 무례하게 말할 수가 있냐고 말이다.
내가 엄마에게 무례했나...? 그래서 엄마에게 혹시 내가 한 말 때문에 기분 나쁘거나 했냐고 물으니 뭔 소릴 하냐면서 갑자기 왜 그러냐고 그러셨다. 사실 이 말투... 다 엄마한테 배운 건데 말이다. 사실은 나보다 엄마가 더 심한데도 말이다.
가끔은 사람들이 나에게 특정 단어나 문장을 사투리로 한 번 해 보라는 식으로 말할 때가 있다. 뭘 해 보라고 시키면 사실 그렇게 유쾌하진 않다.
처음엔 별생각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그런 말들이 불편할 때가 있었다. 친한 사이면 모를까.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그렇게 말하면 조금 무례하다는 생각도 했다. 예전에는 그런 말들을 그냥 웃고 넘기며 시키는 대로 했지만, 요즘은 해 보라고 말해도 그냥 능청스럽게 흘려 넘기고 만다.
사실 표준어가 왜 표준어일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보통 서울이 아니면 다 지방이라고 퉁 쳐버리는 것도 나는 조금 마음에 안 든다. 각 지역마다 명칭도 있고, 고유의 특성은 다 다른데 왜 지방으로 퉁 치는 거지? 서울이 수도라서? 중심이라서?
사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에는 서울보다 지방에 더 많은 사람이 산다. 그리고 표준어 쓰는 사람보다 방언을 쓰는 사람이 아마도 더 많을 것이다. 수는 더 많은데 왜 퉁 쳐버리는지 모르겠다. 뭐 그렇게 잘 났다고.
이러는 나도 가끔은 서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항상 '잠 온다'라고 말하던 내가 어느 순간은 '졸려'라고 말할 때면 흠칫하고 놀라기도 한다.
아주 가끔 동생이랑 통화할 때가 있는데 한 번씩 동생은 말한다. 할 거면 하나만 하라고, 서울말도 아니고 사투리도 아니고 애매하다고. 그래서 오? 내 서울말 좀 쓰는갑네? 카니깐. 그건 아닌데 겁나 섞여서 이상하단다. 그래서 나도 이제 점점 서울말 쓸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과 어, 그럼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이 함께 들었다.
아무래도 10년간 서울에서 지내다 보니 말은 사투리를 써도 듣는 귀는 서울화가 거의 다 된 것 같다. 듣는 말은 늘 부들부들한 말투들이라 가끔 명절에 부산을 내려가면 곳곳에서 톡톡 쏘는 듯이 들리는 사투리가 그렇게 이질적이고 또 반가울 수가 없다.
듣는 귀가 서울화가 됐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지난 추석에 엄마와 함께 마트에서 일할 때였다. 엄마는 파트타임으로 마트에서 떡을 파신다. 명절엔 바빠서 알바를 뽑는데 나보고 해 보지 않겠냐 해서 그냥 한다고 했다.
처음 하는 일이고, 몸 쓰는 일이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는데 명절이라 그런지 사람이 너무 많아 쉴 틈 없이 바쁘고 또 엄청 힘들었다. 특히 다리가 정말 아팠다. 그래도 엄마가 일하는 곳이니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꽤 열심히 했다.
마트 마감 전 떨이로 파는데 호객을 해야 했다. "떡 2팩에 만 원~~" 이렇게 외쳐야 하는데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난 그 말이 좀처럼 입에서 때 지지 않았다. 큰 소리로 해야 하는데 작게 하니 엄마가 뒤에서 "니 빨리 말 안 하고 뭐하노??!!!"라고 말했다.
순간, 아니 왜 말을 저런 식으로 하지? 좀 예쁘게 말하면 안 되나? 나 오늘 처음 하는 일이라고!! 나에게도 적응의 시간을 조금 달란 말이다!! 는 생각이 스쳤다.
일단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지만, 속에 꿍한 마음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싶었다. 와! 이런 부분이 서울 사람들이 나에게 느끼는 감정이구나! 싶었다. 완전 신기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일 끝나고 엄마에게 말하니 엄마는 대체 뭔 소리를 하냐며 웃어넘기셨고, 앞으론 말을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한 10년 사니깐 나도 이제 서울 사람이 다 된 건가?
서울에 있으면 그래서인지 나는 항상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다. 벌써 1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방인으로 사는 느낌이다. 언제쯤이면 난 이곳에 정을 붙일 수 있을까?
아마도 영원히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언제든 나는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모든 짐을 다 정리하고 불현듯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땅을 벗어나 누구도 없는 저 먼 곳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의 해방은 서울을 떠나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떠나는 중이다. 언젠가는 이곳도 그리운 곳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았던 경주와 브리즈번과 필라델피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난 이곳 서울을 어떻게 회상할까?
긴 시간만큼 많은 추억들이 담겨있기에 어떻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치열했고, 외로웠으며 고통스러웠지만 희열이 넘쳤고, 숨 가빴으며, 매 순간 긴장 상태였지만 그만큼 많은 행복과 기쁨이 순간순간 있었던 요동치고 흔들렸던 격동의 순간들이었다고 기억할 것 같다.
나는 과연 서울을 떠날 수 있을까?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