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적응 중인 서울살이
오랜만에 신촌을 왔다.
이곳은 여전히 젊고 활기차며 아직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거리의 상점들 그리고 사람들까지.
하늘 위 구름도 날아드는 새들도 여전했다.
되도록 과거는 과거에 묻어 두고 싶었다.
하지만 지나간 자리엔 여전히 그때의 내가 존재했다.
꽤 오랫동안 신촌은 나의 보금자리였다.
서울에 올라온 이후로 나의 삶은 이곳에서 많은 서사들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우연히 왔던 낯선 신촌이 어느새 편안한 집이 되었다.
지금은 신촌을 떠나 다른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지내는 중이다. 이곳을 떠나온 지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지만 마치 먼 과거였던 것처럼 기억이 아득하다.
신촌에 오면 꼭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독수리 다방이다.
연세대 정문 앞 8층 빌딩 꼭대기에 있는 이곳은 나에게 꽤 특별하다.
저는 은행경비원입니다의 8할은 이곳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이곳을 처음 왔던 건 사실 잘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이곳에서 써내려 갔던 무수히 많은 글은 나의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모든 게 불안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나는 이곳에서만큼은 불안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
원하는 글을 마음껏 써낼 수 있었고, 읽고 싶은 책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던 나만의 작은 아지트였기 때문이다.
이곳은 학생들로 가득하다. 아마도 연세대 학생들이겠지. 그들은 이곳에서 각자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과제를 한다. 그들 틈에 섞인 이방인인 나는, 나의 삶을 녹여내기 바빴다.
학생들의 공부방이라 그런지 마감시간은 밤 11시였다.
그래서 퇴근 후 글쓰기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분위기 또한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집중도 잘 됐던 것 같다. 글 쓰다가 막히거나 답답하면 야외로 나가 바람도 쐴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난 8층이라는 높은 곳까지 기어이 올라가곤 했다.
이곳에서 난 자주 행복했다. 그리고 꽤 자유로웠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맴도는 것들을 흰 종이 위에 하나씩 옮겨 두면 그것들이 마치 거울 같아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작은 글자들 속에 퍽 힘들었지만, 그만큼 행복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브런치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려 했을 때 2번인가? 지원을 했었고, 그때마다 불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3번째 도전을 할 때 은행 경비원 글을 올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2번이나 떨어졌지만 나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왜냐면 다음번엔 합격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3번째 지원을 할 때도 난 독수리 다방에 있었다.
그곳에서 당시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꿈을 나눴던 웹툰을 그리던 동생과 함께했다.
우리 둘은 서로의 작품을 보고 평가해 주면서 독자로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의 웹툰을 보고 솔직한 평가를 내려주었고, 개인적인 생각도 전해줬다.
그 또한 나의 글을 읽어 보고 어떤 점이 좋았는지 솔직히 이야기해 주었다.
서로의 피드백 후 나는 3번째 브런치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흐른 후 그날도 똑같이 글쓰기 위해 독수리 다방을 들렀다.
주중에 은행이 너무 바빠서 브런치 작가 지원한 것도 잊고 있었다.
그런데 독수리 다방을 왔을 때 문득 브런치 작가 지원을 했던 게 기억나 확인해 보았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합격을 보는 순간 속으로 소릴 질렀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와 살짝 민망했었다. 그렇게 브런치에 처음으로 글 쓰게 되었고, 나의 글은 점차 쌓이고 사람들에게 닿아 결국엔 한 권의
책으로까지 만들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신촌 독수리 다방은 어쩌면 작가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시간이 꽤 흐른 후 웹툰을 그렸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거의 2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우리는 그 사이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우린 다시 신촌에서 만나 국밥을 먹었고, 다시 독수리 다방을 찾게 되었다.
처음 그에게 연락 왔을 땐 그저 오랜만에 만나서 밥이나 먹자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카페에 도착하고 난 후 그가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처음으로 연재했던 작품을 곧 마무리 지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가 원하던 플랫폼에서 연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멀리서나마 응원을 했던 터라 마무리 짓는다는 소식에 그간 정말 열심히 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 에필로그에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넣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는 2년 전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 나의 이야기가 작품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해주었다.
2년 만에 다시 보자고 했던 이유도 고마움을 전하려고 보자고 했던 것이었다.
사실 그의 작품명을 정하게 만들어 준 게 바로 나였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그저 웃겨서 재미있다고 말 한마디 해줬을 뿐인데 그는 거기서 용기와 아이디어를 얻어 작품을 아예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만들었고, 그게 잘 먹혔다고 말했다.
난 솔직히 몰랐다.
그런 말을 해 주었던 그가 참 고마웠고, 나 또한 그의 정성 어린 피드백 덕분에 브런치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책까지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린 독수리 다방에서 과거에 힘들었지만 꿈이 있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앞으로도 서로 멀리서나마 응원하기로 했다.
나에게 신촌은 참, 애틋한 곳이다.
나의 서울 생활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곳이었고,
너무 힘들었고, 고통스러웠으며 불행했던 곳이었지만
그만큼 꿈이 가득했고, 희망을 품을 수 있었으며 성장할 수 있었던 곳이라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미련 없이 이젠 떠나보내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신촌을 다시 온다고 해도 그렇게 괴롭거나 힘들지 않을 것 같다.
과거의 나는 여기 이곳에 묻어 두기로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