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호이어의 증언 1
잭 호이어는 쿼츠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LCD 스톱워치와 크로노그래프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를 넘기지 못하고 도산하고 말았다. Heuer는 중동의 TAG(Techniques d'Avant Garde)에게 인수되어 TAG Heuer가 된다.
쿼츠 혁명기에 물려받았던 회사를 남의 손에 넘겨야 했던 잭 호이어의 회상을 따라가 보자.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기계식 크로노그래프의 미래는 점점 희미해졌다. 매년 제품의 판매가 하락했다. 1979년에만 판매가 35%나 감소했다. 극동에서 만들어진 전자 LCD 크로노그래프가 시장을 장악해 버렸다. 대부분의 시장에서 디지털 스톱워치가 기계식 스톱워치를 대체하고 있었다. 비용절감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1979년 말까지 175명 중 50명을 추가로 정리해야 했다.
직원을 해고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해고하는 직원들 한 명, 한 명을 개인적으로 만나 사정을 설명하며 눈을 떼지 않은 채 악수를 하고는 그들을 내보냈다. 사정이 나아지길 기다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도리어 너무 늦게 나가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책임감을 느꼈다. 그 후 비즈니스 컨설턴트를 하게 되면서 회사의 생존이 불분명하다면 차라리 일찍 해고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가족 회사가 나쁜 점은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기 때문에 직원들을 해고하는 데 너무 망설인다는 점이다.
1980년 스위스 시계의 수출이 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겨우 9% 증가했을 뿐이지만.... 그러나 문제는 에보슈 SA가 전체 생산량의 66% 정도를 샤블론(미조립 상태의 시계)의 형태로 극동지역에 수출하여 조립한다는 점이었다. 에보슈 SA의 고객이자 최종 시계 제조업체들은 직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 기계식 스톱워치의 대미 수출은 미국 내에서 제조되는 전자 스톱워치와의 경쟁에서 밀려 계속해서 급격히 줄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1980년 초 밸쥬를 소유하고 있던 에보슈 SA는 기계식 스톱워치의 무브먼트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밸쥬 7700 스톱워치 에보슈는 호이어를 위해 개발된 것이고 우리가 만드는 대부분의 베이스 무브먼트였다.
별수 없이 다른 회사를 찾아보아야 했다. 칼리버를 바꾼다는 것은 스톱워치 케이스와 다이얼은 물론 카탈로그며 선전물까지도 교체해야 하는 일이었다.
1979년에 대규모의 적자를 낸 이후 은행은 나에게 지분을 넘길 것을 요구했다. 전문가를 지정하여 회사를 분석하고 우리 회사가 살아날 가능성에 대해 판단했다. 은행의 결정을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점점 더 악화된다. 몇 년 동안 프랑스의 공급자였던 회사가 제품 대금을 입금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비용만이라도 회복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더구나 파리에서 운영하던 회사를 남부 아비뇽으로 옮겨버렸다. 1981년 나는 자동차를 몰아 남부 프랑스까지 찾아갔다. 일부라도 변상받으려고 했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