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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경매

by 링고

1. 티파니 노틸러스


2021년 12월 12일 미국 뉴욕의 필립스에서 166개의 시계들에 대한 경매가 이루어졌다. 1744년에 설립된 소더비나 1766년에 설립된 크리스티 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필립스도 1796년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에서 창립된 경매회사이다. 소더비와 함께 현재는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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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경매의 하이라이트는 파텍 필립과 티파니의 더블 네임 시계인 '티파니 노틸러스'였다. 더블 네임이란 시계의 다이얼에 제조자와 판매자의 상표가 함께 표기된 시계를 의미한다. 스위스 제네바의 파텍 필립과 미국 뉴욕의 티파니가 170년간의 협력관계(1851-2021)를 기념하여 티파니를 상징하는 '1837 블루' 색의 다이얼을 가진 170개의 한정판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시계를 필립스에서 경매한 것이다. 파텍 필립은 183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창립된 시계회사이고, 티파니는 1837년 미국 뉴욕에서 창립된 주얼리 판매점이다.


1851년 파텍 필립의 창업자인 앙트완 노버트 드 파텍(1812-1877)은 스위스 제네바를 떠나 시계 판매를 늘리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이때 뉴욕 브로드웨이의 티파니를 방문하여 티파니의 창업자이자 동갑내기인 찰스 루이스 티파니(1812-1902)와 만났던 것이다. 이때 노버트 드 파텍이 찰스 루이스 티파니와 150개의 시계를 납품하기로 계약한 것이 파텍 필립과 티파니의 협력관계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작은 계약이 이후 파텍 필립이 세계 최고의 시계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어 1876년에 티파니는 파텍 필립의 미국 판매 대리점으로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런 인연으로 파텍 필립과 티파니의 더블 네임 시계들은 170년간 여러 번 출시되었다. 필립스에서의 경매 이후인 2022년에 티파니에 공급될 170주년 기념 시계도 그중 하나였던 것이다.


티파니 한정판을 발매하기로 한 파텍 필립의 현사장인 티에리 스턴은 2021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76년부터 생산해 온 노틸러스 모델 라인을 2022년부터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즉, 파텍 필립의 티파니 한정판은 파텍 필립 노틸러스의 마지막 제품이 되는 것이다. 파텍 필립의 제품들 중 베스트셀러인 이 모델을 중단시키겠다는 티레이 스턴의 결정에 대해서는 경쟁사인 '오데마 피게'의 메가셀러 '로열 오크'와 함께 다룰 '하이엔드 스포츠 시계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에서 쿼츠혁명시기에 등장하여 두 회사의 몰락을 막았던 시계들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170개 한정판이며 마지막 노틸러스 모델이라는 두 가지의 요인 때문인지 이날 제조번호 1번의 티파니 노틸러스를 경매하자 티파니의 공식 판매 가격인 52,000 달러(약 6,800 만원)의 120배에 해당하는 650만 달러(약 70억 원)에 경락이 이루어졌다. 그 후에 알려진 바로는 당일 650만 달러에 전화로 입찰한 사람과 2번째 고액의 입찰자가 경매 종료 후 구입의사를 철회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시계를 실제로 낙찰받은 사람은 자흐 루(Zach Lu, 노언택)이라는 대만의 젊은 영화배우였다. 그가 낙찰받은 금액은 620만 달러로 알려졌다. 30만 달러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2021년까지의 모든 시계 경매 기록에서 10번째로 높은 가격에 팔린 시계로 등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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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컴플리케이션 기능 없이 단순히 시간만 표시하는 엔트리 모델이 세운 기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한 기능을 가진 '심플 와치'로는 현재까지 가장 높은 경매 기록이다. 엔트리 모델이란 각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가장 저렴한 모델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시계 경매에서 상위 기록을 세운 시계들은 대부분 판매 가격도 고가인 컴플리케이션 시계들이다. 컴플리케이션(complication)이란 단순히 시간과 날자 정도를 보는 단순 기능을 넘어서는 크로노그래프, 퍼페츄얼 캘린더, 투루 비용, 리피터, 하늘과 우주의 변화를 보여주는 천문 기능 같은 추가의 기능들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차례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최종 낙찰자와 두 번째 고가의 입찰자가 구입의사를 철회한 것 때문에 이런저런 논란이 있었다. 경매 가격을 높이기 위해 티파니의 새로운 주인인 루이뷔통 그룹이 의도적으로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억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컴플리케이션 시계도 아니고 특별한 내력을 가진 시계도 아닌 이제 막 판매를 시작하는 신제품이 한정판이라는 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판매 가격의 10배도 아닌 100 배가 넘는 가격에 낙찰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진실이 무엇이든 시계 경매 역사에 오래도록 회자될 기록을 세운 덕분에 티파니 노틸러스는 2022년 내내 화제가 되었다.


티파니는 뉴욕 5번가의 본점 외에도 비버리힐스와 샌프란시스코에도 점포를 가지고 있다. 역사에 남을 낙찰가를 기록한 경매 소식과 169개의 제한된 물량 때문에 티파니에서 VIP 고객들에게 판매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진 후 배우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와 마크 월버그, 농구선수 르브론 제임스, 랩퍼인 제이-지 등이 티파니 노틸러스를 착용한 사진들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있다. 엄청난 화제를 일으킨 시계이다 보니 티파니 노틸러스를 구입한 사람들을 추적하는 사이트까지 생겨났다. 전문가들은 유명한 시계때문에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티파니 노틸러스를 구입한 후 이를 SNS에 올려 자랑하는 것에 대한 위험까지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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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 사진과 함께 등장하는 유명 인물들이 모두 티파니의 VIP 고객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이 경매는 티파니의 마케팅에 엄청난 도움이 된 셈이다. 티파니에서 선정할 169명의 VIP 고객들과 판매순서는 티파니 노틸러스를 통해 티파니에 명성을 가져다 줄 유명도의 순서로 선정한 것이 아닐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것들이 현대 시계 마케팅의 중요한 기법인 것이다. 2021년 티파니는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 그룹에 인수되었다. 세계 최대의 럭셔리 그룹인 LVMH는 프랑스 출신의 사업가이자 세계 최고의 부호인 베르나르 아르노가 주인인 회사이다. 그의 장남인 30대의 알레상드르 아르노가 리모와를 떠나 티파니의 부사장으로 티파니 노틸러스의 기획과 마케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2011년 불가리를 인수하여 성공시킨 경력이며 M&A로 성공해온 LVMH 그룹의 역사를 돌아볼 때 향후 티파니가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게 될 지를 보여주는 첫 장면이기도 하다.


티파니 노틸러스 경매로 파텍 필립의 베스트셀러 모델인 노틸러스의 인기도 함께 높아졌다. 생산이 중단될 예정이라 구입을 예약한 사람들만 구할 수 있는 시계가 된 것이다. 티파니 노틸러스의 인기는 파텍 필립의 정규 제품인 노틸러스의 재판매 가격은 물론 과거 모델인 빈티지 노틸러스의 가격도 급격히 상승시키고 있다.


그밖에 티파니 블루와 비슷한 다이얼 색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연녹색 다이얼을 가진 롤렉스의 오이스터 퍼페츄얼, 그랜드 세이코 등 티파니와 무관한 시계들도 다이얼 색상 때문에 티파니 롤렉스, 티파니 세이코 등의 별명이 생기며 판매량도 증가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향후 몇 년간 티파니 블루 색상이 시계 다이얼의 인기 색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계를 판매하는 다른 브랜드들의 입장에서도 별다른 마케팅도 필요 없는 티파니 다이얼의 인기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십 년 후 2020년대 초 티파니 노틸러스의 경매 기록이 가져온 티파니 다이얼 열풍이 시계 잡지의 매력적인 테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 티파니에서 파텍 필립을 구입한 부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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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네바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당시까지 최고의 경매 기록을 세운 시계는 2,400만 달러에 경매된 '그레이브스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라는 회중시계였다. 당시까지 역대 최고의 기록이었다. 2019년 파텍 필립이 자선경매를 위해 하나만(only watch) 만든 20가지의 컴플리케이션을 가진 양면 손목시계가 현재 역대 최고의 기록(3,100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2019년 이후 그레이브스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은 역대 2위의 경매기록으로 남아 있다.


patek1.jpg 파텍 필립의 2019년 Grandmaster Chime Ref. 6300A-010


그레이브스 주니어의 시계는 1999년 소더비에서 처음으로 경매되어 당시 역대 최고가인 1,100만 달러에 경매된 기록을 가진 시계였고, 현재의 기록은 그로부터 15년 후인 2014년에 2번째로 경매되며 세운 기록이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경매에 오른다면 2019년의 신기록을 경신할 수 있는 시계이기도 하다. 공산품으로 분류되는 시계들이 피카소나 앤디워홀의 예술작품 같은 대접을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1925년 티파니로부터 파텍 필립에게는 가장 영예로운 주문이 날아들게 된다. 미국의 은행가이자 철도 투자자인 헨리 그레이브스 주니어(1868-1952)는 아버지인 그레이브스 시니어로부터 은행을 물려받은 백만장자였다. 그레이브스 주니어는 1910년대부터 시계에 흥미를 느껴 가족들이 보석을 구입하기 위해 자주 들리던 뉴욕의 티파니에서 파텍 필립 시계를 구입하게 된다. 파텍 필립이 시계의 정확성을 겨루는 올림픽 경기나 다름없는 각종 천문대 경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이 그레이브스 주니어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그레이브스 주니어는 파텍 필립에 천문대 경연에서 우승한 무브먼트로 회중시계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파텍 필립에서 제조한 3개의 투루비용 회중시계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시계를 주문하면서 시계에 가문의 문장과 가훈을 조각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으며, '뉴욕의 헨리 그레이브스 주니어를 위해 제작되었음'같은 표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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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친구이자 자동차 재벌이며 그레이브스와 함께 파텍 필립의 애호가였던 제임스 워드 패커드(1863-1928)와 시계 컬렉션 경쟁이 불이 붙은 것이 1916년이었다고 한다. 패커드는 그 해에 파텍 필립으로부터 16가지의 컴플리케이션을 가진 회중시계를 받았고, 1927년에는 총기능은 10개에 불과하지만 케이스 백에 설치된 배면 다이얼에 천문 차트까지 가진(양면 다이얼 시계) 컴플리케이션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레이브스 주니어는 1925년에 티파니를 통해 파텍 필립에 패커드를 완전히 이길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가진 회중시계를 만들어줄 것을 주문하게 된다. 그래서 탄생한 시계가 바로 그의 이름이 붙은 '헨리 그레이브스의 컴플리케이션'이며, 경매기록을 2번이나 경신하게 된 바로 그 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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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받은 후 7년 만인 1932년에 완성되어 그레이브스 주니어에게 1933년 1월 19일에 전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5가지의 컴플리케이션을 가진 시계였다. 1989년 창립 150 주년을 기념하여 파텍에서 칼리버 89(총 33가지 기능)를 발매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컴플리케이션 회중시계였으며 그가 죽은 후 몇 번의 손바뀜을 거쳐 2014년 소더비 경매에서 2,400만 달러에 경매되어 시계 경매 기록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1922년부터 1951년까지 그레이브스 주니어가 파텍 필립에 직접 주문한 시계만 30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15개 정도가 알려져 있다. 그가 주문한 시계들이 당시 파텍 필립을 상징할만한 시계들이었으므로 그 대부분이 파텍 필립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크리스티나 소더비의 경매에 간혹 등장하는 그의 컬렉션에는 천문대 경연에서 우승한 무브먼트로 만든 크로노미터, 투루비용, 미니츠리피터 등 고가의 컴플리케이션 회중시계들이다. 그가 파텍 필립에 처음으로 주문한 손목시계가 1927년에 주문하여 1928년에 전달된 파텍 필립에서 처음으로 만든 미니츠 리피터 손목시계였다고 한다. 케이스 백에 그레이브스 집안의 문장과 가훈이 라틴어로 적혀 있는 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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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 1920년대 티파니를 통해 알게 된 사업가인 패커드와 그레이브스와의 인연을 포함하여 티파니는 파텍 필립을 미국 부호들에게 소개하여 이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시계 역사상 중요한 시계들을 개발하여 세계 최고의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19세기말 티파니는 파텍 필립이 위치한 제네바에 시계 공방까지 설립하여 티파니 브랜드로 자체 제작한 시계까지 판매할 정도로 시계와 인연이 깊은 노포이기도 하다. 시계와 큰 인연이 없던 불가리가 LVMH에 인수된 후 럭서리 시계에서도 매년 인상적인 시계를 발표하고 있다. 시계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 티파니가 향후 어떤 시계들을 발표하게 될 지 궁금해 지는 이유이다. LVMH의 티파니에서 발표한 첫 시계가 '티파니 노틸러스'였던 셈이다. 그 이상의 극적인 등장을 상상하긴 어려울 것이다.



3. 티파니와 폴 뉴먼 데이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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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와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시계가 '폴 뉴먼 데이토나'이다. 역대 시계 경매에서 상위 10개의 시계 중 단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파텍 필립에서 제조한 시계들이다. 그 단 하나의 예외가 역대 시계 경매 기록에서 현재까지 3위에 올라 있는 롤렉스의 수동 크로노그래프 시계로 자동차 경주대회인 '데이토나'를 시계 이름으로 사용한 시계이다.


이 시계는 2017년 10월 필립스의 경매에서 1,70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이 경매가 이루어지기 40년전인 1980년대 부터 '이그조틱 다이얼'을 시계 컬렉터들은 '폴 뉴먼 다이얼'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폴 뉴먼 다이얼의 데이토나는 롤렉스의 빈티지 중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빈티지 시계였다. 그래서 2017년 폴 뉴먼의 시계가 경매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이 시계가 엄청난 기록을 세우리라는 것을 컬렉터들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컴플리케이션중 대중적인 크로노그래프 기능만 가진 이 시계가 파텍 필립의 수 많은 컴플리케이션 손목시계들을 저만치 따돌리며 당시 손목시계 최고의 경매기록을 세우게 될 것까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크로노그래프란 티파니 노틸러스 같은 일반 시계의 기능에 초시계 기능을 조합한 가장 대중적인 컴플리케이션 시계이다. 시계 다이얼(문자판)에 섭 다이얼로 부르는 작은 다이얼들을 2개 혹은 3개 가지고 시계의 바늘을 조정하고 태엽을 감기 위한 크라운 외에 크로노그래프 버튼이라고 부르는 초시계를 스타트-스톱-리셋하기 위한 하나 혹은 두 개의 버튼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수동이란 시계의 크라운으로 태엽을 감아주어야 작동하는 시계를 말한다. 태엽을 감지 않아도 손목의 움직임으로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시계를 자동시계(Automatic)이라고 하는데, 롤렉스의 자동 크로노그래프는 1988년에 처음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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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뉴먼의 데이토나는 파텍 필립의 그레이브스 컴플리케이션처럼 주문 생산된 시계가 아니라 롤렉스의 정규 제품으로 판매된 시계이다. 폴 뉴먼의 데이토나는 1969년 폴 뉴먼의 부인이자 여배우인 조앤 우드워드가 티파니에서 구입하여 폴 뉴먼에게 선물한 것이다. 폴 뉴먼은 1969년에 개봉한 영화 '위닝(Winning)'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자동차 경주가 평생의 취미가 되었다. 1958년에 결혼하여 폴 뉴먼의 부인이었던 조앤 우드워드도 이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2002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폴 뉴먼은 자신이 자동차 레이스에 흥미를 느끼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모든 것에 서툴렀어요. 스키도 잘 못 타고. 테니스도 잘 못 치고, 축구도 형편없었지요. 내가 남들보다 잘할 수 있었던 건 자동차 레이스뿐이에요.'


1965년 폴 뉴먼(1925-2008)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여 피부이식까지 필요한 수술을 받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드광이었던 폴 뉴먼의 자동차 경주를 막을 수 없었던 조앤 우드워드는 뉴욕 5번가의 티파니에서 이 시계(롤렉스 Ref. 6239, 이그조틱 다이얼)를 구입하며 케이스 백에 'DRIVE CAREFULLY ME'라는 문구를 조각해 넣었다. '나를 위해서라도 조심해서 운전하세요'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1965년의 끔찍한 사고가 그때까지도 생생했을 조앤 우드워드로서는 위험한 레이스에서 남편을 지켜줄 부적이라도 하나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 후 폴 뉴먼은 20년 이상 참가한 자동차 레이스에서 큰 사고 없이 살다가 암으로 죽었으므로 조앤 우드워드의 부적은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데이토나 인터내셔널 스피드웨이는 1959년에 미국 플로리다에 세워진 자동차 경주장의 이름이며 '데이토나 500', '데이토나 24시간 레이스' 등이 열리고 있다. 롤렉스의 데이토나 디자인의 시계는 1963년에 처음 발매되었고, '데이토나'라는 이름은 1965년 시계 다이얼에 처음 사용되었다. 그리고 3년 후인 1968년 조안 우드워드가 폴 뉴먼에게 선물함으로써 롤렉스의 시계 중 가장 유명한 시계가 되었다. 폴 뉴먼은 자동차 레이스에 참가할 때마다 이 시계를 착용했고 기자들의 사진에 찍힌 폴 뉴먼과 함께 이 시계가 유명해졌던 것이다.


1972년 46살의 나이로 본격적인 카레이서로 활동하기 시작한 폴 뉴먼은 1995년 '데이토나 24시간 레이스'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 시계를 경매에 내놓은 사람도 폴 뉴먼의 장녀인 넬 뉴먼(Nell Newman)과 캠퍼스 커플이었다가 헤어진 제임스 콕스(James Cox)이다. 1984년에 폴 뉴먼이 이 시계를 딸의 남자 친구인 제임스 콕스에게 주었고, 제임스 콕스는 넬 뉴먼이 설립한 환경재단에 기부하기 위해 2017년 필립스를 통해 이 시계를 경매했던 것이다.


필립스의 경매 기록에는 이 시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다. 폴 뉴먼과 조앤 우드워드 부부의 첫 딸인 넬 뉴먼은 부모의 유명세가 부담스러웠던지 대학시절 '넬 포츠(Nell Potts)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1983년 가을학기 넬은 제임스 콕스라는 남학생과 사귀게 되었다. 넬은 폴 뉴먼이 사업으로 생긴 모든 이익은 자선단체인 'Newman's Own Foundation'기부하겠다며 1982년에 설립한 유기농 식품회사 'Newman's Own'에서 제조한 폴 뉴먼의 얼굴이 라벨로 사용된 샐러드 드레싱 병을 가지고 다녔다. 넬과 사귀고 있던 제임스는 폴 뉴먼의 얼굴을 가르키며 자신이 어린 시절 라임록의 오토스포츠 트랙에서 폴 뉴먼과 만나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고 자랑을 했다. 이를 기회로 넬은 제임스에게 자신이 폴 뉴먼의 딸이라는 것을 처음 밝혔다고 한다.


1984년 여름 폴 뉴먼과 조앤 우드워드 부부는 코네티컷의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웨스트포트에 있던 자택에 딸린 '아늑한 집(Nood House)'이라고 부르던 낡은 나무집을 개축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앤 우드워드가 집을 고를 때 그 집에 딸린 아늑한 작은 나무집이 그 집을 구입한 이유의 하나였다. 제임스는 그해 여름 폴 뉴먼의 집을 방문하여 나무집을 새로 짓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폴 뉴먼은 시간 나는 대로 나무집의 진척상황을 보러 왔다. 그날 아침 폴 뉴먼은 시계태엽을 감는 것을 잊어버린 탓에 데이토나가 멈추어 있었다. 그래서 제임스에게 몇 시냐고 물었다. 제임스는 손목을 보여주며 시계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폴 뉴먼은 자신이 차고 있던 데이토나를 벗어서 제임스에게 주며 '매일 태엽을 감는 것만 기억할 수 있다면 이 시계는 아주 정확하다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동 시계란 폴 뉴먼의 말처럼 매일 태엽을 감아주어야 작동하는 시계를 말한다. 제임스는 폴 뉴먼이 준 이 시계를 보물처럼 다루며 2014년 경매에 보낼 때까지 30년간이나 소중하게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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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조앤 우드워드는 폴 뉴먼에게 검은색 다이얼의 데이토나를 다시 선물하게 된다. 폴 뉴먼의 사진에서 검은색 다이얼의 데이토나가 발견되는 이유이다. 이 시계는 롤렉스 데이토나 6263이라는 모델로 1971년부터 1987년 사이에 제조된 시계이다. 데이토나 표기가 검정 다이얼에 붉은 글씨가 사용된 모델로 데이토나의 표식이 선명하다는 이유로 'Big Red'라는 별명을 가진 시계이다.


이 시계의 케이스 백에는 'Drive slowly Joanne'이라고 적혀 있다. 카레이서에게 천천히 운전하라는 걱정이 가득 담긴 문구였다. 이 시계는 2008년 9월 26일 폴 뉴먼이 암으로 죽기 전 막내 딸인 클레어 뉴먼(Clea Newman)에게 주었으며, 폴 뉴먼이 가장 오래 사용한 시계이기도 하다. 2017년 10월에 폴 뉴먼의 첫 번째 데이토나 경매가 있은 지 3년 후인 2020년 12월 12일 폴 뉴먼의 두 번째 데이토나도 필립스의 경매에 출품되어 약 550만 달러에 낙찰되어 현재 롤렉스 시계 중 3번째로 높은 경매 기록을 보유 중이다.


클레어는 이 시계를 경매에 출품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시계는 아빠의 계속된 레이스 열정에 대한 엄마의 참을성과 그 후 25년간 더 지속된 애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폴 뉴먼과 조안 우드워드는 둘 다 아카데미 주연상을 수상한 유명 배우 커플이었음에도 비버리 힐즈를 떠나 동부의 코넥티컷의 시골에 집을 마련하여 함께 3명의 딸을 키우며 이혼하지 않고 50년간이나 같이 산 화목한 부부의 표상으로 남아 있다. 1930년 생으로 올해 92세인 조앤 우드워드가 치매로 인하여 폴 뉴먼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해 지고 있다는 안스러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앤 우드워드는 티파니에서 다이얼 색깔만 다른 롤렉스의 수동 크로노그래프 시계 두 개를 15년 간격을 두고 구매했다. 그녀가 티파니의 도어를 2번 닫고 나오는 사이에 영화에나 등장할만한 시계사의 거대한 혁명이 요란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는 조앤 우드워드가 1969년 첫 번째 데이토나를 구입하고 나간 후 두 번째 시계를 사기 위해 티파니를 방문했던 1983년 사이에 티파니에서 있었던 특별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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