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링고 Oct 22. 2022

진 라슬과 가장 얇은 시계

이제 그린버그가 스위스와 일본 메이커들 간에 전쟁을 붙인 이야기로 들어갈 때이다. 그린버그의 첫 번째 성공 스토리도 이 전쟁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1969년 크리스마스 일본에서 세이코가 아스트론이라는 100개 한정판의 쿼츠 시계를 판매하면서 시계사의 연표에는 1969년 12월 25일이 쿼츠 혁명이 시작된 날로 기록되어 있다. 1970년 4월 바젤 페어에서는 스위스의 첫 손목시계용 쿼츠 무브먼트인 '베타 21'을 사용한 손목시계들이 파텍 필립, 롤렉스, 오메가 등 16개 브랜드에서 동시에 발표되었다. 1962년부터 스위스 시계 산업계의 25개 회사가 참여하여 공동으로 개발하느라 세이코보다 발표가 늦어졌던 것이다.


세이코 아스트론과 스위스 베타 21


1970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쿼츠 손목시계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세이코의 100개 한정판과 스위스의 베타 21 시계가 6,000개로 제한하여 제조된 것처럼 초창기의 쿼츠 시계는 기계식 시계보다 두껍고 제조도 어려웠다. 세이코의 아스트론은 당시 도요타의 자동차 한 대 가격이었다. 그 결과 1970년대 초까지 쿼츠 손목시계가 기계식 손목시계를 대체하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이런 이유로 스위스에서 쿼츠 무브먼트 개발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에서는 세이코에 이어 시티즌도 쿼츠 시계 개발에 집중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경쟁적으로 고가인 쿼츠 시계에 대한 실용화가 진행되어 스위스는 쿼츠 무브먼트 개발에서는 일본에 완전히 밀려버리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일본은 쿼츠 시계의 제조 단가를 줄이고 정확성을 향상시키는 연구에 매진했다.


한편, 쿼츠 무브먼트를 실용화하는 데 필수적인 IC칩이 미국에서 개발되었기 때문에 2차 대전 이후 시계 제조의 불모지나 다음 없던 미국에서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이 아닌 디지털 방식의 시계 제조가 시작된다. LED와 LCD 시계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페어차일드' 등 전자회사를 중심으로 출시되어 쿼츠 시계의 새로운 강자로 재등장하게 된다. 


1970년대 중반은 쿼츠 시계가 기계식 시계를 완전히 밀어내고 주력 상품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전력 소모가 많아 시간을 볼 때마다 버튼을 눌러야 했던 LED 대신에 낮시간에 가독성은 떨어지지만 배터리 소모가 적은 LCD에 집중하여 시계를 개발해 나갔다. LCD 시계의 등장은 일본에서 탁상용 전자계산기로 성공한 카시오가 1974년 LCD 시계를 발표하며 시계 생산에 뛰어들어 일본 내 쿼츠 시계는 3파전으로 진행되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은 점차 더 빨리 지게 되었다.



1976년 시티즌은 쿼츠 배터리의 문제를 영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시계 다이얼에 집광판을 설치하여 태양전지를 사용하는 '에코 드라이브(Eco-Drive) 시계까지 개발했다. 기계식 시계에서는 스위스에 한참 뒤져있던 일본이 쿼츠 무브먼트가 개발된 후 10년도 안 되는 단기간에 가장 앞서가는 나라가 되었다. 그 결과 1971년 미국시장의 40%를 차지하던 스위스 시계는 세이코 등 일본 시계들의 진출과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자 1976년에는 20%로 반토막이 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쿼츠 시대에 기계식 시계가 살아남는 방법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1976년 스위스의 진 라슬(Jean Lassale)이라는 상표로 피아제의 얇은 시계 기록을 경신하는 시계가 등장하게 된다. 진 라슬은 1976년에 설립되어 그해 4월의 바젤 페어에서 이 시계와 함께 처음 등장한 브랜드였다.


이 시계에 사용된 무브먼트는 1970년 피에르 마티스라는 라쇼드퐁의 시계기술자가 발명한 무브먼트였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무브먼트를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볼베어링을 이용하며 하나의 플레이트에 부품들을 직접 조립하는 방식으로 수동 무브먼트인 칼리버 1200은 두께 1.2 밀리에 불과했고, 같이 개발된 자동 무브먼트인 칼리버 2000은 2.08 밀리에 불과했다. 덕분에 완성품 시계의 두께가 5밀리도 안 되는 얇은 시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진 라슬이 개발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수동과 자동 시계는 1976년 바젤 페어를 시작으로 제네바 살롱의 그랑프리와 금메달을 수상하는 등 선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77년에는 뉴욕의 엑스포 77에 출품되어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시계 하나로 막 창업한 소규모 공방 수준의 회사이다 보니 이 무브먼트를 대량으로 제조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1978년에는 당시 오메가와 티솟 등이 소속된 스위스에서 가장 큰 회사인 SSIH와 접촉하게 된다. 그 결과 SIHH의 무브먼트 전문 제조 기업인 레마니아에서 이를 제조하고, 오메가에서 이 무브먼트를 다른 브랜드에도 판매하도록 하는 계약을 맺게 된다. 하지만 이 계약을 체결함과 거의 동시에 진 라슬이 파산하게 된다.



그 결과 이 무브먼트의 설계와 특허는 레마니아로 넘어가고, 진 라슬의 브랜드는 일본의 세이코가 구입하게 되어진 라슬은 등장 후 3년 만에 공중분해된다. 얇은 시계를 만드는 것이 회사의 존립기반이었던 피아제는 그 후 레마니아와 계약을 맺어 이 무브먼트의 독점적인 사용권을 획득하게 된다. 피아제 칼리버 20P이다. 이후 피아제가 리치몬트에 인수될 때까지 독점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피아제의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의 명성은 기계식 시계에서는 그대로 유지된다.


작가의 이전글 콩코드와 게달리오 그린버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