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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Oct 22. 2022

벤츄라와 어큐트론


1952년 전기시계 개발을 발표했던 해밀턴은 1957년 첫 번째 무브먼트인 해밀턴 500에 대한 수리 매뉴얼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호텔에 기자들을 모아 세계 최초의 전기 시계의 판매를 발표하게 된다. 수백 명의 기자들이 이에 대한 기사를 썼고, 벤츄라로 대표되는 해밀턴의 전기시계가 등장하게 되었다.



2차 대전 직후인 1946년 미국의 해밀턴과 엘진, 프랑스의 LIP와 독일의 융한스에서 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기존의 기계식 무브먼트의 구성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태엽 대신에 수은전지를 사용하여 밸런스에 전기적인 자극을 가하여 밸런스를 진동시키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기계식 시계(2~5 헤르츠)와 비슷한 2.5 헤르츠로 진동했다. 즉, 배터리를 사용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계식 시계보다 아무런 장점도 없었다.


엘진과 LIP에서도 1952년 전기시계의 개발을 발표했으면서도 이런저런 문제로 공식 출시는 지연되고 있었다. 그러나 경쟁자들을 의식한 해밀턴에서 1957년 서둘러 발표한 것이었다. 이 시계들은 발표되자마자 대부분 고장이 나서 판매점과 서비스센터로 되돌아왔으나 수리 매뉴얼조차 없던 탓에 수리조차 불가능했다.



당시 미국 최고의 가수였던 엘비스가 영화에 출연하며 이 시계를 사용했고, 공연 중에서 이 독특하게 생긴 시계를 착용하면서 현재까지도 '엘비스의 시계'로 유명한 것이 벤츄라와 후속 모델인 페이서(Pacer)이다. 제너럴 모터스의 자동차들을 디자인한 리처드 하비브의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엘비스가 사용하면서 유명해져 출시 당시에는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나 품질문제로 팔리지 않자 해밀턴은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일본 리코(Ricoh)의 상표를 통해 일본에 판매하려다 실패하게 된다.


해밀턴에서 잦은 고장을 해결하기 위해 1961년에 개발한 것이 해밀턴 505 무브먼트이다. 그리고 이 무렵에는 수리 매뉴얼도 만들어졌고 고장도 적었지만 출시 후 몇 개월도 못되어 고장 난 다는 악명이 자자했던 해밀턴의 전기 시계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 1963년까지 총 11,000개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해밀턴의 악명으로 인해 해밀턴과 비슷한 시기에 전기시계를 개발했으나 발표가 뒤졌던 미국의 엘진과 프랑스의 LIP에 의해 발표된 전기시계들도 큰 인기를 끌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된다.


완벽한 준비를 거쳐 1960년에 발표된 블로바의 어큐트론은 해밀턴의 실패 뒤에 등장하여 전기시계보다 더 정확하고 고장도 없다는 이유로 10년 이상 최고급 시계의 대명사로 블로바를 지탱해주는 최고의 상품이 된다.



어큐트론은 전기 시계가 발표된 지 3년 후 1969년의 쿼츠 시계에 9년 앞서 등장한 전자시계이다. 해밀턴처럼 배터리를 사용하지만 튜닝 포크를 진동시키기 위해 처음으로 트랜지스터가 사용되었으므로 전기시계가 아닌 전자시계였다. 배터리로 밸런스를 진동시키는 전기시계의 진동수에 비해 트랜지스터로 음차를 진동시켜 2.5 헤르츠의 진동수를 가져 전기시계보다 정확한 하루 오차 2초 이내로 기계식이나 전기식 시계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정확성을 가진 시계였다.



이 시계는 스위스 바젤 출신의 막스 헷젤(1921-2004)에 의해 탄생하게 된다. 1921년 바젤에서 태어난 헷젤은 어려서부터 자전거 라이트, 발전기는 물론 라디오와 전화기는 물론 렌즈를 갈아 망원경까지 만들 정도로 손재주 뛰어난 소년이었다. 취리히의 기술대학을 졸업하고 1950년에 전기 엔지니어로 비엔에 있던 블로바에 취업하게 된다.


블로바는 1919년에 스위스의 비엔에 공장을 설립하여 무브먼트를 제조하고 있었다. 블로바는 공장 설립 이후 미국의 최신 기계들을 도입하여 부품들의 호환성을 높이고,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자동화를 연구했다. 막스 헷젤은 블로바의 생산시설 자동화를 위해 영입한 전기기술자였다. 그러나 1952년 해밀턴에서 전기시계 개발에 대한 발표가 있자, 블로바 비엔 공장에서는 전기기술자인 막스 헷젤에게 전기시계를 개발할 것을 주문하게 된다.


그러나 해밀턴, 엘진과 LIP에서 개발하는 전기시계가 기계식 시계의 밸런스를 그대로 사용하는 구조이므로 기계식 시계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막스 헷젤은 자신이 대학 졸업 후 연구했던 튜닝 포크(Tunning Fork : 메트로늄처럼 일정한 진동을 전기적으로 발생시키는 장치)를 사용한단 다면 기계식 시계와 전기시계보다 훨씬 정확한 시계를 제조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당시 블로바의 사장이었던 아르데 블로바는 당시 미국에서 개발된 새로운 트랜지스터들을 보내주며 헷젤이 제안한 튜닝 포크 시계를 개발할 것을 지시하게 된다. 새로 개발된 트랜지스터와 소형 튜닝 포크를 결합하여 튜닝 포크 방식의 무브먼트를 개발한 막스 헷젤은 시계의 기본 구조에 대해 1953년 6월에 특허출원을 하게 된다. 그리고 튜닝 포크 시계의 프로토 타입을 개발한 것이 1954년 11월이었다.



1954년 비엔의 공장을 방문했던 부사장 헨쉘은 막스 헷젤의 손목에서 성능을 확인 중이었던 프로토 타입을 받아 뉴욕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사이 막스 헷젤은 7개의 프로토 타입을 추가로 만들어 테스트 중이었으나 회사의 정책이 변경되어 튜닝 포크 손목시계 개발은 전기 시계 제조에 익숙했던 미국의 연구소로 이전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59년까지 미국의 전기 기술팀에서 100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문제점을 점검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의 개발팀에서 만든 프로토 타입은 막스 헷젤이 만든 프로토 타입에 비해 성능이 형편없었다.


자신이 개발한 아이디어의 제품화에서 소외되어 좌절감을 느끼던 막스 헷젤은 1959년 3월에 미국의 본사로 초빙되었으나 미국에서 개발한 프로토 타입들을 수리하고 진단하는 작은 일만 맡게 된다. 결국 막스 헷젤에 의해 무브먼트에 사용된 오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문제를 해결하고 양산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첫 번째 어큐트론 무브먼트인 블로바 214가 완성된 것이다.



한편 1958년 아르데 블로바가 죽자 조카인 해리 헨쉘(1919-2007)이 사장이 되면서, 자신이 모시던 미국 합참의장 출신의 오마르 브래들리(1893-1981)를 이사회 회장으로 영입하게 된다. 오마르 브래들리를 통해 미국 정부와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 블로바는 양산 준비가 마무리된 어큐트론의 트로토타입들을 NASA에 제공하여 당시 진행 중이던 인공위성과 우주개발에 제공하게 된다.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7


1959년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VI와 VII에 장착되어 지구 괘도를 도는 등 어큐트론은 시장에 공개되기도 전부터 NASA에서 사용되었다. 이후에도 어큐트론은 미국 우주개발계획인 익스플로러, 머큐리, 제미니, 아제나와 아폴로 계획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게 된다.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가 아폴로에 사용되어 달에 처음 착륙한 '문와치'라면 어큐트론은 프로토 타입이던 시절부터 미국의 모든 우주계획에 참여해 온 '스페이스 와치'인 것이다.


1960년 10월 25일 블로바의 신임 회장이자 은퇴한 합창의장인 오마르 브래들리가 공식적으로 어큐트론의 발매를 발표하게 된다. 미완성인 상태에서 출시되었던 전기시계와 달리 1961년부터 판매를 시작한 어큐트론은 완성도가 높아 출시되자마자 미국 시장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어큐트론(Accutron)은 블로바에서 선전용으로 만든 문구인 'Accuracy through Electronics'에서 정확성의 Accu와 전자의 Tron을 합성하여 만든 이름이었다.



튜닝 포크의 초당 360 헤르츠의 진동수가 가청 주파수여서 귀에 대고 들으면 이 시계에서 '붕'하는 미세한 소리가 났으므로 기계식 무브먼트나 전기 시계와는 다른 개성을 가진 그야말로 신비로운 시계였다. 더구나 기계식 무브먼트나 전기식 무브먼트와 달리 밸런스휠을 사용하지 않는 구조였으므로 충격에 강했고 기계식 시계의 2-5 헤르츠, 전기식 시계의 2.5 헤르츠 보다 훨씬 빠른 360 헤르츠로 진동하는 구조였으므로 기계식 시계나 전기식 시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정확성을 유지했던 것이다.


어큐트론 모델 중 가장 유명한 모델이 '스페이스 뷰'(Space View)라는 모델이다. 이 모델이 공식적으로 출시되게 된 에피소드가 매우 흥미롭다. 튜닝포크를 사용하는 전자식 시계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판매점의 쇼윈도에 진열할 목적으로 다이얼 대신에 유리에 어큐트론의 이름과 시간과 분을 표시하는 마크를 표기한 진열품을 만들어 진열했다.


그러나 처음 보는 독특한 무브먼트가 유리를 통해 보이는 진열제품을 구입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로 인해 판매 제품보다는 진열제품이 판매되는 기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그 결과, 진열제품과 같은 유리를 사용하고 정상적인 다이얼과 투명 유리를 부속품으로 제공하는 '스페이스 뷰'라는 이름을 가진 모델이 출시 직후 발매되게 되었던 것이다.



1961년에 바젤 페어에 전시되고 미국에서 시판된 어큐트론은 블로바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1963년까지 10만 개가 판매되고, 1965년에는 35만 개가 판매되었으며, 1977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총 550만 개나 판매되었다.


어큐트론의 발매를 시작한  1961년에서 1970년대 초까지 블로바는 어큐트론으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에 스위스와 일본에서 어큐트론의 정확성과 안정성을 뛰어넘을 쿼츠 기술이 개발되고 있었으나 성공에 도취한 신임 사장 헨쉘은 삼촌인 아르데와 같은 사업 감각도 사업적 열정도 없었다. 어큐트론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어 쿼츠 개발에 투자할 여유 자금을 가진 스위스와 일본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서 있었지만 새로운 기술개발에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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