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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Oct 22. 2022

론진의 전성시절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경제공황의 전 단계라는 인플레를 경험하는 중이다. 전 세계적인 경제난은 19세기 말 이후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이다. 그중 20세기에 알려진 것이 1873년에 시작되어 20년간 진행된 장기불황, 1929년~1933년의 대공황, 1970년대의 오일쇼크 같은 시기이다. 그 사이에 정치적인 격변과 2번의 세계대전도 있었다. 1914~1918년의 1차 세계대전,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촉발된 공산혁명의 확산, 1939~1945년의 2차 세계 대전이다.


20세기 스위스 시계 산업에서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도 1920년대와 1970년대이다.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고, 대공황이 진행되던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는 스위스에서는 중소 브랜드들이 경제 불황에 따라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고가의 시계 판매는 더 어려워진다. 1930년대까지 고급시계란 회중시계의 크로노미터를 의미했다. 당시 손목시계는 회중시계만큼 정확하지 않았다. 손목시계가 회중시계를 밀어내고 보편적인 시계로 등장한 것도 손목시계들이 회중시계 정도로 정확해진 1940년대였다. 미국에서는 1960년까지 레일로드 크로노미터는 회중시계에만 허용되었다. 1961년의 어큐트론과 1969년의 쿼츠 손목시계의 등장은 고급 시계의 기준선이었던 크로노미터를 의미 없는 역사적 유물로 만든 사건이었다. 어큐트론과 쿼츠는 검증할 필요도 없이 모두 압도적인 크로노미터였기 때문이다.


철도가 보급되면서 철도 승무원, 기술자들이 사용할 레일로드 크로노미터가 등장한 것이 1850년대부터 이며 이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등장한 것이 1880년대이다. 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반인들에게도 시계가 필요해진 시기도 이 무렵이다. 레일로드 크로노미터의 조건이 일주일 오차 30초였으므로 하루 오차 4-5초 정도였다. 쿼츠 시대 이전에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시계는 고급 시계, 이 조건에 못 미치는 시계는 케이스의 재질에 따라 럭셔리(금은보석) 시계와 보통 시계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오메가는 1890년 크로노미터 회중시계로 명성을 얻어 1902년에야 정확한 시계의 마지막이라는 의미의 'Omega'(알파와 오메가)라는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사용했다.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그렇지만 창업연도인 1848년은 오메가의 실질적인 역사에서 큰 의미는 없는 연도이다.



오메가 보다 먼저 크로노미터 제조 업체로 명성을 얻은 브랜드가 론진이다. 론진은 오메가보다 빠른 1832년에 창업했으며 프란실론(Francillon)이 사업을 이어받은 1867년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덕분에 오메가는 물론 스위스에서 고급 시계를 생산하는 브랜드 중 가장 먼저 스위스제 고급 시계의 명성을 얻게 된다. 제니스는 오메가 보다 늦은 1865년에 창업했고 크로노미터 제조업체로 이름을 얻은 것도 1900년 파리박람회에서 수상을 하면서이다. 그 결과 1930년대까지 론진이 오메가를 앞서갔지만, 1930년대 이후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제니스는 1950년대까지는 론진이나 오메가의 직접적인 경쟁상대는 아니었으나 브랜드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천문대 경연에서는 1950년대부터 론진과 오메가를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19세기 중엽에 시작된 각종 박람회는 새로 등장한 브랜드들이 자신들의 시계를 홍보하고 경쟁업체들의 발전 상황을 지켜보는 중요한 기회였다. 론진의 회중시계 케이스 백에 표기된 그랑프리 마크들은 당시 론진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들이다. 1913년 미국 뉴욕 타임즈에서 뉴욕 시민들에게 꼭 가지고 싶은 시계 브랜드를 질문했을 때 92%가 론진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확성은 기본이고 대륙을 오가는 비행에 특화된 시계가 필요했던 린드버그와 미국 공군에서 1920년대에 자기 나라의 크로노미터 제조 업체인 월쌈과 해밀턴을 제쳐두고 론진에게 비행사용 시계 개발을 의뢰한다. 이 당시 론진이 개발한 린드버그와 윔스 시계는 당시 론진이 가지고 있던 기술력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군용 시계로 유명한 오메가, IWC, 야거 르쿨트르, 제니스를 포함하여 군용 시계를 만들어온 브랜드들은 모두 세계 2차 대전이 시작된 1939년 이후 비행사용 시계를 공급했다. 론진은 이들을 10년 이상 앞서 가고 있었던 것이다.



1983년 스와치 그룹에 통합되고 오메가의 하위 브랜드로 설정됨으로써 론진의 이런 역사는 빈티지 컬렉터들 외에는 관심이 없는 역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경쟁자를 찾을 수 없는 린드버그 시계와 수많은 미투 시계를 만든 윔즈(Weems), 유일하게 인하우스 무브먼트(13.33Z, 13ZN, 13CH)를 사용한 손목시계 크로노그래프에서 그 시절 론진의 탁월함을 확인할 수 있다. 손목시계 시대의 유일한 인하스(in-house: 브랜드 자체 제작)무브먼트였다. 1950년대 이전의 론진 무브먼트는 파텍 필립이나 바쉐론 콘스탄틴과 비교하면 조금 밀리지만 오메가, 제니스 등 동급 브랜드들과는 다른 피니싱(부품의 모서리들을 제거하는 마무리 작업)을 보여준다.


파텍 필립이 에보슈로 구입하여 자체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수정한 밸쥬 13-300과 레마니아 2310만이 비교될 수 있는 품질의 크로노그래프인 것이다. 론진에서 생산하고 자체 브랜드로만 발매한 시계이므로 생산 수량도 적어서 빈티지 시장에서 론진이 유일하게 제대접을 받는 시계이며 그 시절 론진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시계이다. 크로노그래프 전문 기업인 레마니아를 통합한 오메가와 1950년대까지 스위스 최고의 시계 경쟁을 할 수 있었던 론진의 당시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계이다. 크로노그래프 외에도 1960년대까지의 무브먼트들을 비교해 보면 론진보다 우수한 무브먼트는 파텍 필립과 르 쿨트르(바쉐론 콘스탄틴과 오데마 피게의 무브먼트)에서나 발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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