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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Oct 22. 2022

에드먼드 캡트

스위스 하이엔드 부활에 숨겨져 있던 인물

에드먼드 캡트(1946- )는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크로노그래프인 밸쥬 7750의 설계자이자, 20년 이상 블랑팡과 브레게의 무브먼트 개발을 총지휘한 인물이다. 또한 무브먼트 설계에 컴퓨터를 도입한 첫 기술자였다. 캡트 이후 파텍 필립을 비롯하여 무브먼트 설계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이루어지게 되며 이를 시작으로 스위스 무브먼트 설계자들의 세대교체도 이루어지게 된다.


에드먼드 캡트

발레 드 쥬의 르 브라서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파리의 디자인스쿨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화가가 되는 꿈을 포기하고 1962년에 르 센티에르의 시계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재학 중 탁월한 실력으로 선생님들을 사로잡아 졸업반에는 무브먼트 설계를 전공한다. 20살에 시계학교를 졸업하고는 제네바에 있는 공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쿼츠 혁명이 일어나던 1969년에 졸업과 동시에 비엔의 롤렉스에 취업하게 된다. 그러나 1년 후인 1970년 그는 고향인 발레 드 쥬의 크로노그래프 전문 회사인 밸쥬로 옮긴다.


이때부터 평생에 걸쳐 무브먼트를 설계하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공과대학에서 설계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을 배웠던 것이 이후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가 맡은 첫 번째 설계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밸쥬 7750이다. 당시 밸쥬는 오랜 기간 수동 크로노그래프만 만들어온 회사였다. 1969년 제니스의 엘프리메로, 호이어의 칼리버 11이 개발되어 자동 크로노그래프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크로노그래프 전문 회사인 밸쥬는 쿼츠 시계를 앞두고 제조비용이 저렴한 캠 형식의 수동 크로노그래프 밸쥬 7730을 바탕으로 자동 무브먼트를 만드는 과제를 24살의 캡트에게 주었다.


밸쥬 7730과 7750


첫해에 캡트는 혼자서 이 일을 담당하고 있었고, 여가시간에 자신이 졸업한 르 센티에르의 시계학교에서 무브먼트 설계를 강의했다. 그 과정에서 친하게 된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던 제랄드 간데르(Gerald Gander)를 설득하여 영입하고 도면사와 시계 조립 기술자를 영입하여 5명의 팀을 만들게 된다. 이 5명은 모두 20대여서 친구처럼 지내며 일을 했다고 한다. 


캡트는 짧은 시간에 임무를 완성하려면 기존의 도면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곤란하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당시는 소형 컴퓨터가 개발되기 전이라 컴퓨터를 이용하려면 뇌샤텔에 있는 헤드오피스까지 가야 했다. 장거리를 오가며 캡트는 컴퓨터를 통해 설계하고 시뮬레이션을 하는 방식으로 설계를 완료하여 업무를 3년 만인 1973년 밸쥬 7750이 판매에 들어가게 된다.


발매 첫해부터 성공을 거두어 밸쥬 7750은 연 10만 개를 생산할 정도였다. 그러나 2년 후 수요가 점점 사라져 경영진은 이제 더 이상 기계식 크로노그래프의 시대는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생산을 중단하고 관련 자료와 생산설비를 폐기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당시 밸쥬의 기술자들은 경영진의 결정을 거부하고 필요한 공구 및 설비를 잘 포장하여 보관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제니스의 엘프리메로의 재생산에도 등장하게 된다.


캡트는 1972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쿼츠 혁명을 지켜보며 밸쥬에서 8년을 보내게 된다. 이 시기의 에드먼트 캡트에 대한 이야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 후 캡트의 행적을 보면 1975년 밸쥬 7750의 생산이 중단된 후 밸쥬가 소속된 에보슈 S.A.(ETA)에서 쿼츠 무브먼트를 개발하는 일에 종사한 것으로 보인다. 쿼츠 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초 모든 기계식 스톱워치나 크로노그래프를 판매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여 생산이 중단되었고 스위스에서도 쿼츠 무브먼트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캡트는 에보슈 S.A.에서 쿼츠 무브먼트의 개발에 참여하면서 쿼츠 무브먼트의 핵심적인 구성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 발레 드 쥬의 프레드릭 피게로 옮겨 쿼츠 무브먼트 개발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1978년 캡트는 ETA에 통합되지 않고 7001 등 스위스의 에보슈 중 가장 슬림한 무브먼트를 제조하며 버티던 에보슈 전문 업체 푸조(Peseux)로부터 쿼츠 무브먼트 설계의 책임자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오랜 역사를 가진 프레드릭 피게의 사장이자 쿼츠 무브먼트 개발이 필요했던 프레드릭 피게의 사장인 자크 피게도 기술 책임자 자리를 제안하게 된다. 고향인 발레 드 쥬에서 일을 해도 된다는 피게의 제안이 캡트에게는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에보슈 S.A. 소속의 밸쥬에서의 8년간의 경험이 캡트로 하여금 대기업의 조직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갖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발레 드 쥬 출신들은 큰 조직에 묶여 사는 도시의 생활보다는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한다. 캡트가 대기업인 롤렉스와 밸쥬를 떠나 프레드릭 피게로 옮기게 된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프레드릭 피게는 이 무렵 르 쿨트르(Le Coultre)와 함께 고급시계 브랜드들이 선호하는 슬림한 무브먼트를 만드는 대표적인 고급 무브먼트 전문 업체였다. 작은 공방에서 출발하여 슬림 무브먼트 전문 기업으로 성장한 프레드릭 피게는 같은 지역의 르 쿨트르에 비하면 중소기업이었다. 하지만 파텍 필립에 컴플리케이션을 납품할 정도로 발레 드 쥬 지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회사였다. 1859년 이 회사를 창업한 인물이 컴플리케이션 전문가 루이 엘리제 피게였고, 이를 이어받은 사람이 슬림 무브먼트 제조 전문가 프레드릭 피게이고 자크 피게는 이를 물려받은 3대째의 사장이었다.


FP 21과 71


당시 프레드릭 피게의 주요 생산품은 슬림한 무브먼트로 1925년에 개발한 수동 무브먼트 FP 21(두께 1.75 밀리)와 1970년에 개발한 자동 무브먼트 FP 71(두께 2.4 밀리)였다. 수동과 자동에서 슬림 무브먼트의 기준이 되는 두께가 바로 프레드릭 피게 무브먼트의 두께이다. 수동 2 밀리, 자동 2.5 밀리는 프레드릭 피게의 무브먼트를 구입할 것이냐 자체 개발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었다. 적어도 수동 무브먼트에 관한 한 파택 필립과 롤렉스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전자를 선택했다.


자크 피게는 1925년 이후 수십 년 동안 독보 적었던 얇은 수동 무브먼트를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피아제, 까르티에, 롤렉스, 에벨 등 스위스 대부분의 하이엔드 브랜드들에 납품하고 있었다. 그런데 1970년대 초까지 연 15,000개나 팔리던 무브먼트가 1978년에는 연 5,000개로 줄어들어 경영이 어려운 상태였다. 당시 프레드릭 피게에 근무했던 직원이 200 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같은 지역의 시계 브랜드이자 피게 무브먼트를 사용하던 에벨의 3대째 사장이었던 피에르 블럼과 협의한 끝에 자크 피게는 쿼츠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작고 슬림한 쿼츠 무브먼트를 개발하려고 결정한 상태였다. 이 프로젝트는 카르티에와 수십만 개의 쿼츠 무브먼트 공급 계약을 맺은 에벨이 시작했지만 오데마 피게도 투자를 하게 된다. 피게가 주문받은 것은 피게의 명성에 걸맞은 두께 2 밀리 수준의 슬림한 쿼츠 무브먼트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에드먼트 캡트는 1979년부터 에벨, 카르티에, 오데마 피게 등이 사용한 두께 2.1 밀리의 슬림한 쿼츠 무브먼트들을 설계했다.  그 후 1985년에는 트윈 모터를 사용하며 쿼츠와 기계식을 혼용하여 1/0초까지 측정 가능한 최초의 메카쿼츠(하이브리드)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FP 1270(두께 4.75밀리)를 설계하게 된다. 피게의 주문에 따라 캡트는 무브먼트의 성능을 높이는 대신 슬림한 무브먼트 설계에 집중하게 된다. 캡트가 밸쥬에서 설계한 밸쥬 7750의 두께는 7.9 밀리였다. 캡트는 이런 과정을 거쳐 기계식 무브먼트와 쿼츠 무브먼트를 모두 설계할 능력을 갖춘 당시로서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 된다.


무브먼트 개발에서 중요시되는 2가지가 정확성과 크기인데, 크기 중 직경보다 중요한 것이 두께이다. 쿼츠 혁명기 동안 기계식 무브먼트가 쿼츠 기술에게 밀리게 되었던 것은 정확성(오차)과 함께 얇은 무브먼트를 만드는 기술이었다. 쿼츠 혁명의 절정기에 얇은 시계 전쟁이 일어난 이유이다. 여기에 기계식 무브먼트의 조립과 조정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숙련된 기술자를 필요로 하지만 쿼츠는 공장에서 자동 조립이 가능하다는 것이 쿼츠의 엄청난 장점이었다. 이런 조건들을 모두 감안하면 기계식 시계가 쿼츠 시계들과 정확성과 두께는 물론 제조 원가에서 애초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당시 대부분의 시계 관련 종사자들이 인정한 것도 납득이 가는 일이다.



프레드릭 피게에서 캡트가 최초로 개발한 쿼츠 크로노그래프는 오메가, 카르티에, 브라이틀링 등 수많은 브랜드들이 사용할 정도로 프레드릭 피게의 주요 수입원이 된다. 쿼츠 무브먼트와 기계식 무브먼트 양쪽 기술에 능했던 캡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블랑팡의 이야기에서 등장하겠지만 블랑팡은 쿼츠 무브먼트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프레드릭 피게는 쿼츠 혁명기와 그 이후에도 이때 캡트와 함께 개발한 쿼츠 무브먼트들이 주요 수입원이었다.



파텍 필립, 오데마 피게, 롤렉스 등도 쿼츠 시대의 절정기였던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자동 무브먼트 대신 쿼츠를 사용하거나 쿼츠에 특화된 얇은 귀금속 모델들을 개발하여 쿼츠 혁명기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기계식 시계 제조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기계식 시계가 부활한 후 기계식 무브먼트 생산을 완전히 중단하고 쿼츠 무브먼트 개발에 집중한 브랜드와 쿼츠를 외주로 생산하면서도 기계식 무브먼트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온 브랜드로 갈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선택이 1990년대 이후 컬렉터들의 놀이터였던 타임존 등 인터넷 사이트들에서 벌어진 인하우스 무브먼트 논쟁에 따라 2000년대 이후 브랜드의 프레스티지가 결정되었던 것이다. 이 점이 쿼츠 혁명 이전에 롤렉스와 대등하거나 앞서갔던 오메가가 롤렉스에 밀리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된 이유이다.


한편 1973년에 첫 발매되었다가 2년 만에 생산을 중단했던 밸쥬 7750은 캡트가 밸쥬를 떠난 지 5년 후인 1983년 기계식 시계에 대한 수요가 되살아나면서 재생산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생산되고 있다. 그리고 수동과 자동 무브먼트를 포함하여 모든 크로노그래프 중 가장 많이 팔린 기록을 세우게 된다. 기계식 시계의 부활은 자동 크로노그래프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그 당시 스위스를 포함하여 유럽 브랜드들이 사용할 수 있는 크로노그래프 중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는 무브먼트가 캡트가 설계했던 밸쥬 7750이었다.

프레드릭 피게 칼리버 1185 자동 크로노그래프


밸쥬 7750을 사용하지 않았던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1990년대 이후 자동 크로노그래프로 사용했던 고급 크로노그래프의 대명사 프레드릭 피게 1185 패밀리도 1988년 에드먼드 캡트가 블랑팡을 위해 설계하게 된다. 



블랑팡에서 개발하게 되는 최소형 미니츠리피터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까지 에드먼드 캡트는 이전에는 무브먼트 하나 개발하는 데도 몇 년씩 걸리던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를 매년 한, 두 가지 이상을 설계하게 된다. 제니스에서 엘프리메로 자동 크로노그래프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데 4년이 걸렸었다. 이 차이는 오로지 컴퓨터 덕분이었다. 시계에서 쿼츠 혁명을 의미하는 IC(집적회로)는 컴퓨터를 통해 기계식 무브먼트 개발을 엄청나게 단축시킨 공로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계와 전자는 서로 경쟁하고 배척하는 기술로 보이지만 실은 서로 도우며 살아왔던 것이다.



컴퓨터를 통한 설계와 시뮬레이션이 없었다면 스와치에서 2010년 ETA 무브먼트 공급을 중단 계획을 발표한 이후 스와치 그룹을 제외한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다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이 발전한 컴퓨터를 이용하는 설계와 제조 시스템을 통해 ETA를 대체할 무브먼트들이 2010년 이후 다양하게 등장하여 하이에크(1928-2010)의 마지막 도박도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스와치 그룹에서 1983년 스위스 시계 업계를 살린 인물로 추앙되는 하이에크는 항상 결정적인 시기마다 중요한 판단에서 실수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의 실수를 만회한 것은 언제든 에드먼트 캡트같은 숨어 있는 인물들이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기계식 시계는 설 자리가 없다며 제조설비를 모두 파기해 버린 몇 년 후 느닷없이 기계식 시계가 고급 제품으로 재등장하던 시절 IWC, 오메가, 태그 호이어, 브라이틀링 등 스위스 크로노그래프 브랜드들이 즉시 크로노그래프는 물론 이에 기반한 컴플리케이션 시계들을 제조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던 무브먼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먼트 캡트가 쿼츠 무브먼트를 설계해야 했던  밸쥬 7750이 중단된 시기인 1975년에서 1982년까지의 기간이 쿼츠 혁명 시기 중 기계식 시계에게는 가장 어두운 시기였던 것이다. 쿼츠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캡트의 인생유전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쿼츠 무브먼트 설계를 마무리한 에드먼트 캡트에게 향후 블랑팡에서 사용할 작고 슬림한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 설계를 요구하게 되고 이에 따라 캡트는 이후 블랑팡이 발매하게 되는 자동 크로노그래프 FP 1185, 수동투루비용인 FP 23, 소형 리피터 FP 33과 크로노그래프와 투루비용 기능을 갖춘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인 FP 2383 등을 차례로 설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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