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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Oct 22. 2022

독일의 VDO

VDO의 자동차 계기판용 측정장치


VDO(Vereinigte DEUTA - OTA)는 자동차용 태코미터, 스피도미터 등의 측정장치를 제조하는 독일 회사였다. 비행기에서 출발하여 자동차 계기판을 생산하던 야거(Jaeger)와 비슷한 회사이다.


알베르 켁(Albert Keck, 1928-2018)은 서독의 시계 중심지인 블랙 포리스트 지역에서 태어나 16살에 징병되어 2차 대전에 참전한 후 종전 후 시계 기술을 배우게 된다. 이어 서독 지역 최대의 시계 회사였던 융한스에 근무하면서 푸르트방겐의 국립 시계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1950년 그의 졸업작품은 그가 다닌 학교의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탁상용 클럭의 무브먼트를 만든 것이었다. 성적이 우수했던 알베르 켁은 교수의 추천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VDO에 입사하게 된다.


알베르 켁(1928-2018)


VDO는 태코미터, 스피도미터 등 자동차 계기판에 필요한 장치들을 만드는 회사였다. 알베르 켁은 1956년 디자인팀의 수석 엔지니어가 되고 1966년에는 총책임자로 승진하게 된다. 1950년대에 자동차 계기판에는 자동차의 배터리를 이용하는 전기 클럭이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VDO는 쉬벤닝겐 지역의 클럭 제조회사들로부터 전기 클럭을 납품받아 사용했다. 독일의 쉬벤닝겐은 '블랙 포리스트(Black Forest)' 지역으로 서독의 오랜 역사를 가진 시계 제조 중심지로 키엔즐, 카이저 등 전기 클럭을 만드는 회사들이 많이 있다.


1960년대에 라디오가 보편화되면서 계기판의 부정확한 시계가 문제가 되었다. 높은 온도와 자동차의 진동이 문제가 되었다. 하루 오차 1분 이상이어서 라디오 시보와 항상 틀린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좀 더 정확한 시계가 필요했는 데, 클럭 회사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시계학교를 졸업했던 알베르 켁은 VDO에서 자동차용 클럭을 직접 제조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라디오 시보와 틀리지 않기 위해 시계는 당시 공급되는 전기 시계보다 100배는 정확해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쿼츠 클럭이었다. 1960년대 중반 스위스와 일본에서 소형 쿼츠 클럭이 개발되어 있었지만 자동차 한 대 값에 육박하는 엄청난 고가의 클럭이었다. 자동차 계기판에 설치하려면 가격도 당시의 전기시계 가격인 10 마르크 정도로 저렴해야 했다. 그래서 알베르 켁은 네덜란드 필립스와 제휴하여 자동차에 사용할 소형 쿼츠 클럭을 직접 개발하게 된다.



소형 쿼츠 클럭의 개발에는 3천만 마르크를 투입하여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쿼츠 클럭 개발에 이 정도의 비용에 들었으므로 이보다 작은 손목시계용 쿼츠 무브먼트의 개발이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었던 것임을 이로부터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다. VDO의 쿼츠 클럭은 1969년 개발이 완료되어 시제품으로 1,000개의 클럭이 만들어졌고, 이듬해부터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다. 1975년까지 기존의 전기 클럭 가격으로 쿼츠 클럭을 판매하는 회사는 VDO 뿐이었다. 그 결과 VDO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계기판용 클럭 제조업체로 성장하게 된다. 1985년까지 3천만 개의 계기판 클럭을 판매하게 된다.


이런 성공에 힘 입어 알베르 켁은 1974년 VDO의 사장으로 승진하게 된다, 이어 1978년에는 VDO의 회장이 된다. 이 무렵 쿼츠 혁명과 달러 대비 스위스 프랑의 높은 환율로 고전하던 IWC와 Jaeger LeCoultre(JLC)가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었다. 쿼츠 클럭으로 성공을 거둔 알베르 켁은 엄청난 수익을 바탕으로 소비자와 직접 상대하는 미래의 사업으로 IWC와 JLC를 인수하게 된다. 이 무렵 프랑스의 시계 회사 LIP도 인수 대상이었으나 다른 회사로 넘어갔다고 한다. 


한편, 2차 대전이 진행 중인 1943년 뉘렘베르크에서 태어난 귄터 블륌레인은 기계식 계산기와 클럭을 만드는 Diehl에서 직업 교육을 받게 된다. Diehl은 기계식 계산기를 제조 판매하는 회사로 1956년 서독 최대의 시계 회사인 융한스를 인수하여 기계식 클럭과 손목시계도 제조하고 있었다. 수습을 마친 후 성적이 우수했던 블륌레인은 회사의 지원을 받아 푸르트방겐의 국립 시계학교에 다니며 기계공학을 전공하게 된다. 1968년 학교를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업무를 시작하지만 외국어 능력과 마케팅 감각이 인정되어 융한스의 마케팅과 판매를 담당하게 된다. 1970년대 융한스는 세계 최대의 시계 회사 중 하나였다.


1978년 IWC와 JLC를 인수한 알베르 켁은 1980년 학교의 후배이며 융한스의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이끌던 블륌레인을 영입하고 이후 IWC와 JLC의 경영을 맡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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