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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Oct 22. 2022

IWC와 블륌레인


당시 37살이었던 귄터 블륌레인(1943-2001)은 1982년부터 샤프하우젠에 위치한 IWC의 사장에서 시작하여, 1991년 샤프하우젠에 설립된 IWC와 JLC의 지주회사인 LMH(Les Manufacture Horlogères)의 사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IWC는 회중시계 시절부터 오메가, 론진, 제니스급의 고급 시계를 만들었다. 1944년 알버트 펠라톤(1898-1966)이 바쉐론 콘스탄틴을 그만두고 IWC로 옮겨 1966년까지 근무하면서 IWC의 대표적인 수동 무브먼트인 칼리버 89와 자동 무브먼트를 개발하게 된다. 커트 클라우스(Kurt Klaus, 1934~)는 펠라톤의 기술감독이던 시절인 1957년에 입사했다.


IWC Ref. 431 B-Uhr


쿼츠 혁명이 시작되기 전까지 1939년 회중시계 무브먼트로 만들어 판매한 포르투기저(Ref. 325, 1981년까지 690개 판매), 영국 공군에 납품한 Mark 9, 10과 11, 독일 공군에 납품한 B-Uhr시계, 1954년 자동 무브먼트로 발매한 내자성 시계인 인제뉴어(Ingenieur)와 1967년에 발표한 다이버 시계인 요트클럽(Yacht Club)이 대표적인 시계들이었다.


1980년 당시 IWC의 상황은 1957년에 입사하여 근무하던 커트 클라우스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시계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자 IWC의 기술자들은 대부분 회사를 떠나 커트 클라우스는 혼자만 남은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무브먼트 개발은 중단되고 쿼츠 시계에 전념하던 시기였다. 또한 회사에 남은 기술자들도 임금을 줄이기 위해 일주일에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4일만 근무하고 있었다.


커트 클라우스(Kurt Klaus, 1934~)


IWC가 VOD에 인수된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블륌레인이 IWC의 사장으로 취업한 시기는 비버가 블랑팡의 상표권을 구입하여 블랑팡을 창업한 후 매년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발표하던 시절이다. 블륌레인이 IWC의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IWC는 1970년대 말에 쿼츠 시계와 경쟁하기 위해 오데마 피게, 블랑팡, 파텍 필립 등에서 시작한 컴플리케이션 개발 경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1985년 IWC의 기계식 시계 복귀작인 다빈치(Da Vinci)는 이런 과정을 통해 준비된 것이다. 얇은 시계 전쟁에 이어진 컴플리케이션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한편, VDO에 인수된 1978년 IWC가 포르셰와의 협업으로 IWC-Porsche compass를 개발하게 된다. 그 무렵 자동 무브먼트 생산을 중단한 상태였고, 기존의 자동 무브먼트는 포르셰의 디자인에는 사용하기 어려운 두꺼운 무브먼트였다. 그런 이유로 창업 이후 100년 이상 무브먼트를 제조해 왔던 IWC에서 ETA 2892를 사용한 첫 시계였다. 그러나 얼마 후 시장의 추세에 맞추어 쿼츠 시계로 바뀌게 된다. 



일본 혼다의 영향으로 가족이 사업에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정책에 따라 포르셰 911과 904를 디자인했던 페르디난드 알렉산더 '부치' 포르셰(1935-2012)는 1972년에 '포르셰 디자인'을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첫 번째 사업으로 시작한 것이 시계 디자인이었다. 1972년 포르셰 디자인의 시계는 Orfina와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IWC가 VDO로 인수된 직후인 1978년 오르피나와 결별하고 기술력이 더 우수한 IWC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IWC와 포르셰 디자인의 공동작업은 1978년에 시작되어 1997년까지 20년간 진행된 장기간 유지된 프로젝트였다. 가장 어렵던 시기에 도움이 되었던 사업이다. 이 시기에 포르셰 디자인과 IWC의 공동 브랜드 시계는 IWC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했다고 한다.



포르셰 디자인과의 협업은 그 이전에 IWC에는 없었던 프로페셔널 다이버 시계를 개발하는 시발점이 된다. 1997년 포르셰 디자인과의 협업이 종료되자 IWC는 GST(Gold, Steel and Titanium) 라인을 출시한다. 올 티타늄 모델을 상징하는 라인이었지만, Porshe Design의 Ocean 2000의 후계자인 Deep One 등 프로페셔널 다이버 시계가 등장한 것이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로써 IWC는 2000년대에 롤렉스 섭마리너, 오메가 씨마스터, 블랑팡 피프티 페이톰스와 경쟁할 프로페셔널 다이버 시계 디자인을 가진 주요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롤렉스, 오메가, IWC, 파네라이가 경쟁하게 되는 2000년대 큰 시계의 인기는 방수 성능을 극대화한 프로페셔널 다이버 와치가 출발점이 되었다. 얇은 시계 전쟁에 이어 컴플리케이션 전쟁이 벌어지고 다이버 시계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30~34밀리의 시계들을 밀어내고 40 밀리 이상의 큰 시계들이 보편화되는 시기로 변하게 된다.


IWC Ref. 5250 회중시계와 Ref. 5251 포르토피노 손목시계


쿼츠 혁명이 진행되는 1970년대에 IWC의 손목시계용 무브먼트들의 생산은 중단되지만, 회중시계를 찾는 나이 많은 고객들을 위해 회중시계는 1980년대까지 소량 제조되고 있었다. 커트 클라우스가 개발한 문페이스 기능을 추가하여 1979년에 판매된 제품번호 5250의 문페이스 회중시계는 1984년 제품번호 5251의 손목시계로 형태만 바꾸어 발매되었다. 문페이스가 추가되어 20세기 초 대중적인 시계였던 타임 온리 회중시계와 구분되는 매력적인 시계로 변모되었다. 당시 특별한 이름 없이 판매되었다가 2011년 '포르토피노' 라인이 등장하면서 'Portofino'의 첫 모델로 인용되고 있다. 1980년대에 경쟁적으로 등장하는 컴플리케이션 중 문페이스의 역할을 보여주는 시계이다. 



당시 유행하던 LCD 쿼츠 시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계식 시계의 매력은 문페이스와 캘린더 기능을 통해 표현되었고 소비자들은 문페이스 다이얼을 통해 고급 시계식 시계의 매력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1980년대 캘린더 와치, 퍼페츄얼 캘린더 와치가 컴플리케이션 시대의 출발점이었던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Porsche Design-IWC의 쿼츠 무브먼트


1981년 포르셰 디자인이 티타늄 시계 개발을 원하면서, IWC는 무브먼트 생산을 중단하는 대신 시계 케이스를 내부에서 제작하게 된다. 덕분에 IWC는 시계 케이스를 브랜드 내에서 제작하는 몇 안 되는 스위스 브랜드가 된다. 포르셰는 1978년 올블랙 시계 이후 스테인리스보다 가벼운 티타늄으로 시계를 제조할 것을 제안하게 되고, 블륌레인은 이를 받아들여 IWC 내에 티타늄 시계 케이스 개발을 위한 R&D그룹을 만들게 된다. 티타늄 시계는 1970년 일본의 시티즌이 처음 개발했으므로 IWC의 티타늄 시계는 스위스에서 처음 제조된 티타늄 시계였다.


Ref. 3710 수동 크로노그래프 캘린더와 Ref. 2050 수동 퍼페츄얼 캘린더 'Romana'


커트 클라우스는 1979년 바젤 페어에서 쿼츠 인제니어 모델 등과 함께 캘린더 회중시계를 발표했다가 인기를 끌자 1983년에는 수동 크로노그래프에 캘린더 기능을 추가한 제품번호 3710을 개발한다. 그리고, 1985년 다빈치와 함께 JLC의 슬림한 수동 무브먼트 칼리버 849에 퍼페츄얼 캘린더 모듈을 설치한 슬림한 퍼페츄얼 캘린더인 'Romana'를 발표한다.


IWC Ref. 3741 메카 쿼츠 파일럿 와치


1980년대 초반 캘린더 모델로 시작된 컴플리케이션은 비슷한 다이얼 배치를 가지는 크로노그래프 개발 경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1988년 IWC는 JLC에서 개발한 쿼츠 기술을 이용한 하이브리드 크로노그래프인 메카 쿼츠를 사용하여 현행 Flieger(파일럿) 라인의 첫 모델인 제품번호 3741의 파일럿 와치를 발매하게 된다. 1994년에는 JLC의 자동 무브먼트를 사용하는 마크 12와  밸쥬 7750을 사용하는 플리거 크로노그래프가 등장하며 IWC의 군용 시계 라인이 만들어지게 된다.


쿼츠 시계가 등장하던 시기에 에드먼트 캡트가 설계했다가 생산이 중단되었던 밸쥬 7750은 IWC를 통해 기계식 시계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1985년 밸쥬 7750에 퍼페츄얼 캘린더 모듈을 설치한 다빈치를 발표했던 IWC는 밸쥬 7750을 베이스로 르노&파피에서 개발한 미니츠 리피터 모듈을 설치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을 개발한다.

IWC  Ref. 3770 Grande Complicaiton


1986년 블륌레인은 막 개업한 르노 & 파피를 찾아가 IWC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에 사용할 미니츠 리피터 모듈의 개발을 의뢰하게 된다. 3년간의 개발을 거쳐 1989년에 완성된 미니츠 리피터 모듈에 커트 클라우스가 개발한 퍼페츄얼 캘린더를 결합하여 밸쥬 7750에 기반한 1990년 IWC 최초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 발표된다.



한편, 1970년대 IWC는 기술자들을 대량 해고했으나, 1985년 다빈치의 발표와 성공에 힘입어 젊은 시계 기술자들을 고용하게 된다. 1990년 가을에 IWC의 R&D 팀장으로 입사한 리처드 하브링은 밸쥬 7750에 스플릿 세컨드 기능을 추가하는 과제를 받는다. 1992년 하브링이 완성한 스플릿 세컨드 기능을 사용하여 1992년 IWC의 기계식 파일럿 라인의 첫 시계였던 도펠 크로노그래프(Doppel Chronograph)가 발표된다. 스플릿 세컨드(split second)는 크로노그래프의 초침이 2개인 크로노그래프로 시계의 표준어인 프랑스어로는 라트라팡테(Rattrapante)로 불리며, 독일어로는 IWC가 사용하는 도펠(영어로 double을 의미)로도 불린다. 



리처드 하브링은 IWC에 입사하기 전 오스트리아의 시계학교에서 투루비용을 만들어 1985년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작은 아틀리에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리처드 하브링은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블륌레인에 의해 1990년 IWC에 채용되었다. 블륌레인은 리처드 하브링이 스플릿 세컨드를 개발한 직후 밸쥬 7750에 설치할 투루비용 개발을 지시하게 된다. 리처드 하브링은 티타늄과 볼베어링을 사용하여 손목시계 사용할 수 있는 초경량의 투루비용 케이지를 설계한다. 커트 클라우스의 퍼페츄얼 캘린더, 르노&파피의 미니츠 리피터, 하브링이 설계한 스플릿 세컨드와 투루비용을 하나로 모으면 슈퍼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1993년 IWC의 125주년을 기념하여 투루비용까지 포함하는 IWC의 슈퍼 컴플리케이션 '일 데스트리에로 스카푸시아(Il Destriero Scafusia, Warhorse of Schaffhausen)'가 발표된다. 1991년 블랑팡에서 1735 슈퍼 컴플리케이션이 발표한 지 2년 후였다. 블랑팡과 IWC의 컴플리케이션 경쟁의 마지막 피날레였다. 



1991년 IWC의 125주년 기념 모델들로 포르투기즈 한정판 1,750개(스틸 1,000개, 로즈 골드 500개, 플리티늄 250개)가 등장한 것이 IWC를 대표하는 현행 포르투기즈의 출발점이었다.


IWC Ref. 3712와 Ref. 3714


포르투기즈가 정규 제품으로 등장한 것은 1995년의 제품번호 3712이며 리처드 하브링이 개발한 스플릿 크로노그래프를 추가한 밸쥬 7750을 6-12 섭다이얼로 변경한 제품이었다. 3년 후인 1998년에는 제품번호 3714의 자동 크로노그래프가 출시되어 IWC 큰 시계의 대표 모델로 성장하게 된다. IWC의 크로노그래프는 파일럿 라인은 물론 포르투기즈 라인에서도 스플릿 세컨드 모델이 자동 크로노그래프 보다 먼저 출시되었다. 기계식 시계의 부활이 컴플리케이션 경쟁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브랜드들과의 경쟁을 위해 컴플리케이션부터 만들고 이를 단순화한 보급형 모델이 나중에 등장했던 것이다.


IWC Ref. 3752 다빈치 투루비용


1999년에는 퍼페츄얼 캘린더+크로노그래프+투루비용이 다빈치 모델로 등장한다. 1993년의 슈퍼 컴플리케이션을 발표하면서 개발했던 투루비용을 1985년의 다빈치와 결합하면서 투루비용 케이지를 보여주기 위해 수동으로 변경한 모델이었다. 1985년에 다빈치를 시작으로 1990년의 미니츠 리피터를 결합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1993년 투루비용까지 포함하는 슈퍼 컴플리케이션의 발표를 통해 IWC는 컴플리케이션의 모든 기술들인 퍼페츄얼 캘린더, 미니츠 리피터,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와 투루비용을 8년간에 걸쳐 모두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컴플리케이션을 단독으로 혹은 두 개 이상 다양하게 결합함으로써 스위스에서 가장 다양한 컴플리케이션을 대량으로 제조할 수 있는 회사가 되었던 것이다.



올블랙 시계, 티타늄 시계를 개발했던 포르셰 디자인과의 공동 작업, 커트 클라우스가 여가 시간에 개발하던 문페이스에서 시작된 퍼페츄얼 캘린더를 이용한 '다 빈치'에서 시작된 컴플리케이션과 1991년의 한정판 포르투기즈의 발매 등으로 이어진 IWC의 부활은 블륌레인이 대중적인 시계 회사인 융한스를 떠나 하이엔드 시계 사업에 참여하여 얻은 첫 번째 성과였다.



블륌레인이 VDO로 옮기기 전에 근무한  융한스는 2차 대전 때 수백 명의 포로들이 일하던 독일의 전쟁물자 생산기지였고, 그 대가로 2차 대전 말 프랑스군에 의해 폐허가 된 회사였다. 그러나 종전 후 서독에 위치하여 1950년대 고급시계를 개발 판매하며 서독의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융한스의 부흥이 시작되었다. 쿼츠 시대가 시작된 1971년에는 자체 쿼츠 시계 개발에 성공하고, 1972년 뮌헨 올림픽의 공식 시계였다. 1991년에는 세계 최초로 GPS 방식의 'Mega 1'을 발표하여 쿼츠 시대의 이정표를 만들며 일본의 세이코, 시티즌, 카시오와 경쟁할 수 있는 유럽의 시계 대기업이었다. 그러나 쿼츠 기술 개발에 전념하던 융한스에서 VDO로 옮긴 블륌레인이 블랑팡의 비버와 함께 기계식 시계 부활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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