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과 1976년에 발표된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 1985년의 파샤에 이어 1994년의 랑에 1이 등장하던 시기를 전후하여 큰 시계의 인기는 다른 브랜드들에서도 동시 다발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1993년 IWC는 회중시계 무브먼트를 사용하는 포르투기즈를 한정판으로 발매했다. 370개를 판매하는 데 60년이 걸린 시계가 한정판 치고도 많은 물량인 1,500개를 판매했지만 이번에는 몇 년도 되지 않아 매진되어 버린 것이다. 골드 시계를 구입하는 것이 부담이 된 컬렉터들이 스테인리스 시계를 찾자 리테일러들의 문의가 빗발친 것이다. 골드 시계와 스테인리스 모델을 함께 만들면 늘 생기는 일들이다. 1993년에 발표된 포르투기즈 쥬빌리 모델은 그 이듬해에 등장한 랑에 1보다 타임존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더 관심사였다. 스테인리스 모델이 전부 매진되고 IWC에서 추가 판매 계획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출시 후 몇 년도 되지 않아 고가에 거래되는 IWC의 가장 유명한 시계가 되었다. 기계식 시계 부활 후 투자 목적의 한정판에 대한 인기가 시작된 시점이다.
표준 사이즈 시계인 35 밀리를 넘어선 IWC의 41밀리 시계가 매진되어 버린 것이다. IWC에서 1980년대부터 개발하며 대표 상품으로 예정했던 다빈치와 군용 시계의 인기를 넘어서 버린 것이었다. IWC조차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컴플리케이션 전쟁을 통해 자동 크로노그래프가 인기를 끌 가능성이 큰 시계였으므로 IWC는 크로노그래프 포르투기즈를 디자인하여 그 후 IWC의 대표 상품이 된 3714가 탄생하게 된다. 2006년 첫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개발하자 이를 사용하는 첫 모델로 46 밀리의 '빅 파일럿(Big Pilot)'이 등장하여 포르투기즈와 함께 IWC의 상징이 된다.
1993년 오데마 피게에서는 로열 오크의 크기를 42밀리로 키우며, 크로노그래프로 로열 오크 오프쇼어(offshore)를 발표한다. 바젤 페어에서 이를 본 제랄드 젠타는 물론 수많은 관계자들이 오프쇼어가 제랄드 젠타의 디자인을 망쳤다며 곧 사라질 시계라고들 말했다. 이때까지도 큰 시계의 시대가 이미 한참 진행 중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1998년 로열 오크 오프쇼어 팬이었던 슈워제네거가 영화 '엔드 오브 데이스(End of Days)'에 출연하면서 착용할 시계를 찾아 오데마 피게를 방문하게 된다. 슈워제네거가 고른 오프쇼어는 검은색이었다. 올 검정 시계는 2010년대 큰 시계 중에서도 가장 유행하게 되는 시계이다.
패션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는 스테인리스 로열 오크를 구입한 후 검은색 페인트로 칠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1972년 오르피나와의 콜래보로 첫 번째 시계를 디자인할 때 페르디난드 포르셰가 디자인한 시계가 올 블랙이었다. 디자이너들의 안목은 일반인들보다는 몇십 년은 앞서가는 듯하다. 1990년대에 로열 오크는 수많은 유명인들이 사용하며 1970년대에 입사했던 비버가 신제품 개발을 건의하자 골레이 사장이 기다리라고 했던 20년 후에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1997년 3월 리치몬트는 재정상 어려움을 겪던 이태리 플로렌스의 파네라이의 브랜드인 'Officine Panerai'와 파네라이에서 보유 중인 현행 제품과 빈티지 아이템을 합쳐서 백만 유로에 구입하게 된다. 이때 파네라이가 오랫동안 보유하고 있던 무브먼트는 60개의 롤렉스의 회중시계 무브먼트 칼리버 618과 190개의 안젤루스 칼리버 240개였다. 1997년 11월 새롭게 설립된 파네라이는 리치몬트 그룹의 회사로 설립된다. 파네라이의 CEO로 임명된 안젤로 보나티는 1940년에서 1944년 사이 롤렉스에서 공급되었던 파네라이 제품번호 3646을 리치몬트 파네라이의 첫 시계이자 한정판으로 발매하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해서 리치몬트 파네라이의 첫 번째 제품이었던 플래티늄의 파네라이 PAM21이 판매된다. 42 밀리를 넘어 47 밀리 시계의 등장이다.
'1998년 당시에 좀 비싼 가격이었지만 하나당 2만 유로에 판매했어요. 2주일도 안돼서 매진되었죠.'
(안젤로 보나티의 인터뷰 중에서)
리치몬트 파네라이의 첫 시계이자 파네라이 컬렉터들의 다이포 와치인 PAM 21은 2017년 11월 필립스 경매에서 60개의 한정판 중 2번째 시계가 125,000 스위스 프랑에 경매되었다. 2000년대 큰 시계 유행의 가장 뜨거웠던 시계 중 하나인 파네라이의 등장이다.
기계식 시계가 부활되면서 1980년대부터 시계 잡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이태리 출신의 사진작가인 몬티 쉐도우(Monty Shadow)는 1992년에 발행된 일본 시계 잡지를 통해 파네라이를 알게 되었다. 그 후 1995년에 슈워제네거와 스탤론에게 영화의 소품으로 사용할 파네라이를 소개하면서 파네라이의 유행이 시작된다. 1996년에 개봉된 슈워제네거의 '이레이저'와 스탤론의 '데이 라이트'를 통해 파네라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편 몬티 쉐도우는 리치몬트의 회장인 요한 루퍼트와 잘 아는 사이였다. 쉐도우를 통해 이 정보를 알게 된 루퍼트는 이태리 출신의 안젤로 보나티를 사장으로 임명하여 큰 시계 시대의 빅 브랜드인 파네라이를 저렴한 가격에 매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스위스의 가장 보수적인 브래드 롤렉스는 2016년 41 밀리의 데이트 저스트를 발표했고, 파텍 필립은 39 밀리의 칼라트라바가 정규 제품 중 가장 큰 사이즈의 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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