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기준은 무엇일까

by Jay Kwon

나카노 노부코의 ‘정의중독’을 읽었다.

이 책은 군대 당직 서면서 잠깐 읽다 말았었는데, 문득 기억이 나서 E북으로 구매하여 일독하게 되었다.


‘정의중독’은 일본의 역사와 경험에 따라 형성된 일본 국민의 민족성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요약하자면, 지진과 태풍 등 자연 재난이 빈번한 지리기후적특성상 국가적 생존을 위해 재난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직 위주의 의사결정’이 고착화되었고,

이에 따라 ‘개인의사’가 의도적으로 간과되는 문화가 생성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를 뇌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정의중독’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정의중독’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지 방안을 제시한다.


‘정의중독’은 나와 내조직만이 옳고 다른 사람과 다른 조직은 틀리다는 관념의 고정화를 경고하는 단어이다.

사람의 뇌는 나의 기준만이 옳고 그 기준에 따라 타인을 평가하고 단죄하는 언행과 행동을 통해 쾌감을 얻도록 설계되었다고 설명하면서

많은 사례들을 뇌과학적 연구와 연계하며 제시하고 있다.


한편 인터넷과 AI 알고리즘이 발달된 요즘 사회에서 다양한 정보를 접하기 위한 수단이

오히려 편향적 사고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즉, 특정 사용자가 좋아하는 성향의 영상물을 AI가 분석 및 링크시키며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데

이를 무비판적으로 접하다 보면 다양한 정보가 아닌 오히려 편향된 정보 속에 갇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조직과 국민들 사이 분열과 마찰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개인과 개인이 속한 조직의 ‘정의중독’이 심화되면서 치유되지 못하고 극단으로 치우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익명성에 기초한 ‘악플’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단죄하며 쾌감을 얻는 문화의 보편화와

상대 진영의 사람들과 그 조직의 행태들을 ‘내로남불’하며 평가질하는 현상도

결국 조직과 국민들의 ‘정의중독’에서 촉발한 것이라고 한다.


정의중독에 빠진 사람들이 외치는 정의는 결코 정의롭지 않았다.

최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는 김새론 배우의 경우에도 공인인 배우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연달아했다는 것에 대한 개인적 자책과 있었겠지만,

어쩌면 불특정 다수의 지나친 악플과 괴롭힘,

그리고 나름의 기준으로 정의에 중독된 여론의 집중보도가 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정의중독에 빠지지 않은 ‘정의’는 무엇일까 숙고해 보았다.


첫 번째는 ‘준법정신에 입각한 객관적 잣대’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헌법이 정해놓은 규칙, 규범,

즉, '된다 안된다 하는 명확한 선'이 정의의 객관적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그 선을 넘는 사람은 헌법이 명시한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김새론 배우의 경우에 음주운전을 하여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기소되었고 벌금 2000만 원을 납부하였다.

객관적으로 음주운전을 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또한 객관적으로 국가와 헌법이 요구하는 책임을 다했다.


더 중요한 두 번째는 ‘비례의 원칙에 입각한 주관적 잣대’라고 생각한다.

즉, 개개인이 저지른 잘못에 비례한 벌을 받고 있는가 이다.

김새론 배우의 경우 주변 상가들을 돌아다니며 금전적 피해보상을 하고 자필 사과문을 돌리는 등 유명인으로써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했고,

일반인이라면 하지 않았을 속죄의 행동이었다.


그녀를 향한 대중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회사의 위약금을 갚기 위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던 그녀의 사진을 찍어 해고하라고 협박하기도 했고,

수많은 악플 테러로 끊임없이 괴롭혔다.

몇년전, 알바를 하고있는 그녀를 찍은 도촬사진이 sns에 돌아다녔던 것이 문득 생각이 났다.

이러한 대중들의 손가락질이

현직 대통령도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마당에,

사람이 먼저라던 전직 대통령 딸도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마당에

너무 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러한 형태의 집단주의적 정의중독은 과거에도 빈번했다.

악플, sns 도배, 비난, 협박, 사이버 렉카질 등

수많은 유명인들을 연예인이나 공인이라는 이유로 광기 휩싸인 캔슬컬처와 조리돌림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처형시켰는데

대한민국 군중은 잠깐 안타까워하면서 계속해서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대한민국 군중의 법정에는 비례의 원칙이 적용되는가.


이러한 일련의 고민들을 하던 중 몇 가지의 위화감에 도달했다.

수두룩한 전과기록을 가진 수많은 정치인들.

사회 통념상 용서받지 못할 범죄와 잘못을 저지른 저명한 정치인들.

예를들면 사람을 과도로 찔러 중태에 이르게 만든 강도살인미수 흉악범이

국회부의장에 안착하여 내가 필사적으로 멀리하는 ‘그들’로부터 민주화유공자로 칭송받는다.


우리나라 군중들의 ‘정의중독’ 손가락은 왜 일관되게 그들을 향하지 않을까.

사람들의 선택적 ‘정의중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포기할수 없는 이기주의인가

아니면 저지능인가.


나는 정의로운 사람일까

너는 정의로운 사람인가.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가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정의로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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