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념이 다른 사람과 친구를 할 수 있을까?

by Jay Kwon

내 대답은 ‘할 수 있다’이다.


오늘 아침에 뉴스를 봤는데

탄핵 인용 여론 약 50%, 탄핵 기각 여론 약 50%.

여당과 야당의 지지율의 격차도 점차 줄어들어 경합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대한민국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2030과 4050, 남성과 여성, 보수와 진보, TK와 전라도

세대갈등, 젠더갈등, 이념갈등, 지역갈등 등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한 적이 없었다.


영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에 대한 열외자를 자처했으나,

오늘 갑자기 유튜브 알고리즘에 등장한 100분 토론 영상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과연 가치관과 이념이 전면적으로 대립하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정말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친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신념이 있다.

그리고 그 신념은 대개 개인의 삶의 경험에 따라 형성된다.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거친 586 세대는 대개 진보성향이 강하다.

최근 여러 지표들에 따르면 2030 세대는 보수성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가치관은 경험의 조화에 따라 진보가 되기도, 보수가 되기도 한다.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이해력에 관한 탐구’에서 ‘경험론적 인식’을 제시한다.

세상의 모든 이념적 가치관들은 감각기관에 의해 축적된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

삶의 경험은 무궁무진하게 다양하고 상대적인 것이고,

그 조합에 따라 형성되는 가치관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치나 공산주의 신념처럼 사람을 해하고

권력층을 배 불리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간악한 신념이 아니라면,

범죄자의 목표달성을 위한 미친 신념이 아니라면,

진영논리에 따라 넌 안되고 난 된다는 내로남불 신념이 아니라면,

나는 어떤 형태로든 신념을 가지고 이를 지켜가는데 큰 거부감이 없다.


더 나아가, 사회 갈등을 조장하고 촉매하는 여러 베타적 시민운동들도,

화합을 이간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지역주의도,

타인을 다치게 하고 재물을 손괴하는 등의 위법적인 방법으로 관철시키고자 하지 않는다면

조금 불쾌할 수는 있어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잣대로 타인의 가치관을 폄훼하는 행동은 비열한 행동이다.

가치관의 차이를 틀림으로 나와 다른 생각을 무식함과 비상식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며 깔보는 그 태도에서 모든 극단적 갈등이 시작된다.

이러한 행동을 행하는 사람과는 난 친구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나와 전면적으로 대립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 내가 보는 시각과 의견에 경청해 준다면

나는 그 사람과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대한민국 사회에서 비열한 행동을 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은 상식이고

타인의 그것은 비상식이라고 매도하는 그러한 폭력이 횡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상식'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가치관에 정당성과 동조를 구하고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 같다.


이상

나는 상식적인 사람인가.

당신은 상식적인 친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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