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란 국가공동체를 공정하고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문명사회의 약속이다.
힘이 센 사람이나 약한 사람 혹은
특정 기관이나 집단만을 위함이 아닌,
사회구성원 모두의 약속이며 모두가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토대이다.
법은 철저하게 이성의 영역이며
대한민국 역시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객관적 체계와 양형기준으로 법을 집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처럼 고도화된 민주사회에서 공정을 이야기하는 법제도에 수많은 약점들이 대두되고 있다.
법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간에 큰 차이가 발생하고
법적 그물망의 크기에 따라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세밀하게 짜여진 법률에
휘발성 강한 국민여론을 반영하여 ‘특별법’이라는 명목 등으로 추가로 복잡하고 또 어렵게 만들어
보통의 사회구성원이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위법을 저지를 위험이 발생하고 있다.
진영논리와 정치논리로 점철된 입법기관의 폐단에 의해
단죄해야 할 악질적인 위법행위를 처벌하고 보호해야 할 국민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여타의 자유진영 국가들처럼 대한민국 또한
사익보다는 공익을 더 중시할 수 있는 인물들을 대표자로 내세워
국회라는 기관에서 '입법'이라는 과업과 책임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당들의 입법 작태들을 보면
정말 그들이 국가공동체와 국민, 그리고 우리 청년세대의 미래를 위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들의 사익과 진영, 배타적 시민단체, 그리고 특정 정치인을 위한 것인지 강한 의문이 든다.
입법은 분명히
대한민국의 공정, 정의, 그리고 시대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최상의 가치들을 담아내야 한다.
이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으며 명백한 명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이상만을 쫓거나 특정한 동정, 그리고 일차원적 가치만을 고려하여 강행된 입법은
금방 사문화되거나 본질적 취지와는 맞지 않는 부정적 결과만을 초래하는 악법이 된다.
법은 당장 우리의 삶을 속박하는 근거이다.
그리고 법은 사람이 이를 적용하고 판단하고 집행해야 하기에
위법과 합법의 구분이 모호해서는 안된다.
명확하고 가치중립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법관의 주관적 해석을 축소시키며 법적 논박거리를 최소화해야한다.
나는 진보정당에서 밀어붙이거나 강행시켰던
비동의간음죄나 민식이법, 노란봉투법, 그리고 차별금지법 등의 법률은
분명히 우리 사회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최상의 가치와 이념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적으로 제정된 감정적 법률에는 그 형식과 내용에서 수많은 허점과 사각지대들이 존재하며
실생활에서 이를 적용하게 된다면
무고한 피의자, 나아가서는 억울한 범죄자를 양산하게 될 개연성이 치명적으로 크다.
가령 비동의간음죄는 분명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입법이라고 보인다.
남녀 간 일방이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제로 갖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큰 죄악이며
이건 너무나도 일반적이고도 선험적 상식인 것으로
법을 모르는 초딩들도 당연하게 알고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비동의간음죄라는 것이 없어서,
혹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나 노란 봉투법, 그리고 민식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없어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비동의간음죄라는 새로운 법이 제정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갖고 있는 현행의 성폭력방지법 등의 형법 조항들이 충분이 해당행위가 위법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범죄자들을 처벌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이 '비동의간음'이라는 피의사실의 범주를 대폭 확대하고
위법의 판단기준을 객관적 증거가 아닌 피해자의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것,
그리고 피고소인, 혹은 피의자 스스로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도록 형법적 강제하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사회에서 어떠한 부작용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거대하고 막강한 국가권력이
개인을 속박하고 압박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한 형법은
개인의 범죄행위를 경찰과 검찰이라는 수사 조직이 증명하고, 법원이라는 사법조직이 심판한다.
체포, 수사, 압수, 구속, 기소, 재판, 집행 등
국가가 어떤 잘못이 있었는가를 증명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며, 이를 심판하기도 쉽다.
하지만 개인이 모종의 잘못이 없었다는 걸 증명해 내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이 피자를 먹었다는 걸 증명해 내는 것은
피자를 먹는 그 순간 길어봐야 5분 내외의 시간을 증명해내는 것이라면
내가 이 피자를 '먹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내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 피자를 먹었다는 걸 증명해 내거나
몇시간동안 모든 동선과 시간을 증명하여 나와 이 피자와의 연관성을 소거시켜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다양한 재원들과 기술들에 국가와 달리 개인의 영역에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점도 막대하다.
즉,
막강한 국가권력이 공권력과 영장을 활용하여 범죄행위가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과
일개의 개인이 행위가 없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은 극단적 차이가 있다.
어젯밤 클럽이나 헌포에서 같이 놀던 여자가,
사귀던 여자친구가,
파트너로 만나던 친구가,
특별하지 않은 밤을 보내고 갑자기 상대를 강간범으로 지목하고 고소 및 고발한다면,
남성 피고소인이 불법적 성행위를 저질렀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지만,
단지 상대여성이 성관계에 대해서 진심으로 동의하지 않았다는 증언만이 있을 뿐이라면,
더 나아가
여성의 증언만 믿고 피고소인에게 서로 간의 성관계의 동의를 했다는 증거를 제시하도록 강제하도록 된다면,
과연 이가 정상적이고도 평등한 구성원 간의 규칙이냐 라는 강력한 의심으로 귀결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서로간의 의사에 반해 잠자리를 가지는것은 단죄되어야 하는 범죄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선진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자평하는 대한민국의 수사 및 사법체계가
어떤 법률적 기준으로 해당 범죄를 규정하고 처벌 것이냐 하는 그 방법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