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공정

by Jay Kwon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하는 것.

그리고 국가공동체와 구성원들로부터 정의롭고 공정한 배분이라고 평가받는 것.


배제된 자의 목소리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구성원 모두의 존엄성이 제도 안에서 동등하게 취급받는 구조를 수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학의 종착점이자

현대 지도자가 해야 할 정치의 처음과 끝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광복 이후 위대한 지도자들과 산업화세대의 근면과 성실,

그리고 미국의 전폭적 보조와 중국, 일본을 비롯한 접경 국가들과의 전략적 이점을 잘 살려

한반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상의 황금기를 지내고 있다.


3000년 한반도 역사 처음으로 유일하게

돈이 없어 굶어 죽거나,

힘이 없어 침탈당하거나,

집이 없어서 병사하는 사람이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찬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역사와 인류는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며,

그 본질의 불변으로 동일한 역사가 반복된다.

내가 생각하는 역사와 인류의 고정불변하는 이치는

지구상의 모든 것은 냉혹한 적자생존이라는 것이다.

강한 것은 살아남고 약한 것은 도태된다.

강한 것은 후세를 남기고 약한 것은 자신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민주주의라는 체제와 그를 보존하는 헌법과 준법정신이라는 토대가 정립되어

국가라는 공동집단이 구축되고

‘인간 존엄성’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관철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국가라는 공동집단을 통하여 우리 모두의 안전을 보장받고

그 대가로 국방, 납세, 교육, 근로라는 국민의 의무라는 것을 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세계를 리드하는, 21세기 AI 디지털 첨단을 달린다는

우리 대한민국 땅에서

국가공동체와 국가구성원들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당하는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과

주목받지 못한 채 피땀눈물 흘리는 청년들,

그리고 그를 야기하는 수많은 모순적 시스템들을 목도해 왔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한 동기는 28살에 징집되어 왔는데

아버지를 어린 나이에 잃고 투석을 받으며 조현병을 앓는 부모님과 어린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어린 나이 때부터 공장을 전전하며 여러 노동을 닥치는 대로 하며 살아왔다.

난 그 동기와 꽤 친하게 지냈었는데,

절망적인 인생을 사는 청년이 끌려와 애써 열심히 지내보려는 장면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던 것이었다.


난 자립의 미덕과 자유경쟁체제를 신봉한다.

살기 위해선 스스로 노력하고 스스로 일어나야 하며

가진 자가 짊어졌던 리스크와 노력을 폄훼하고

무조건 손 벌리며 국가에 일방적 권리주장만 하는 몰염치를 멀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발버둥과 노력에도 자립할 수 없고

자유경쟁이라는 경기장에 입장조차 할 수 없는,

일어서는건 커녕 지금 당장 굶어 죽는 걸 걱정하며 교통받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는

국가의 의무와 자유경쟁이라는 채찍이 아닌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빵 한 조각을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빵 한 조각이 점점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있다.

건물주 노인들에게도 25만 원 챙겨줘야 하고

배부른 기득권들에게도 25만 원 챙겨줘야 한다.

집에 누워서 유튜브나 보는 나태한 캥거루족들한테도 지원금 챙겨줘야 하고

연 가구소득 몇십억 넘는 강남권 초중학생들한테도 무상급식과 무상우유를 해줘야 한다.

빚투한 사람들의 대출연체를 위로하기 위해 돈도 갚아줘야 하고

목소리 큰 배타적 시민단체들에게 후원금도 줘야 한다.


그러면서 국가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내 동기처럼 지옥에서 버티는 비통한 청년들을,

심지어 작금에 와서는 인구 감소라는 이유로 암수술 및 뇌졸중 이력이 있고 4급 판정받은 취약한 청년들마저

무분별하게 군대라는 곳에 구속시켜 젊은 2년의 시간과 기회를 도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굶주림과 절망에서 몸부림치는 그들의 빵 한 조각이

다른 수백 개의 작은 조각들로 쪼개져 수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아주지는 못할망정

강제로 잡아들여 시간과 기회를 박탈시키고 있다.

자칭 약자 대변의 슬로건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은

착한 척 경쟁하며 인기에 영합하는 선동적인 정책들에만 매달리며

뒤에서는 철저하게 본인들의 사익을 쟁취하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말하는 정의인지

이것이 선진국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박애와 존중과 배려인지


오늘 문득 자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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