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진 지도자는 보지 못하는 것
행정수도 이동의 민족사적 중요성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나이가 어려서는 사람의 마음을 주로 남녀 간의 이성문제에 국한하여 해석하려 한 적이 있다.
여자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며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겼던 나이였다.
여자들의 세상은 너무 다른 미지의 세계로만 여겨졌다.
어린 나이였지만 남성적인 '용기'와 '신의'를 자연스럽게 무장했다.
남자 친구 사이에는 의심이나 배신을 하면 안 돼는 것이었다.
친구의 말은 무조건 믿는 것이 남자였다.
남자는 마음을 돌과 같이 굳게 하는 것이 당연한 진리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정 짓기는 쉽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배우고 알게 되었다.
학문과 수양의 정도와 환경적 배경에 따른 정도의 차이는 있겠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습관처럼 생각하고 습관처럼 '자기세 뇌'속에 살아가기 쉽다.
중국을 동에서 서편 끝까지 북에서 남쪽 끝까지 도로를 따라 달려 보았다.
중국과 고조선이래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관찰해 보았다.
이웃나라인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사실이다.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다!'
남자나 여자 모두 마찬가지다.
모든 자연계들도 역시 포함되는 이치다.
자연적 기후, 자연적 환경이 사회적 환경과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끼친다.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단된 지 어언 70여 년이 흘렀다.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막힌 벽을 두고 살았다.
한민족이 한때는 고비사막에서 연해주에 이르는 위도 선상에서 수도를 두고 살았다.
민족성지인 백두산을 남쪽에 두었다.
조상들은 대륙을 마당처럼 휘젓고 다녔던 것이다.
남자들은 야생 호랑이처럼 용맹하였고 가슴이 들판처럼 호탕하였다.
고조선 시대의 수도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보다 더욱 북위에
위치하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도를 백두산의
아래에 위치한 평양 쪽으로 이전하였다.
수도가 바뀌면 민심과 마음의 중심이 따라서 이동한다.
아마도 중국과의 거듭되는 전쟁과 북방 여진 등의 침략들을 피하려는 고육지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결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민족의 성지인 백두산에 대한 예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중국의 동북지역을 시찰하였다.
베이징을 지나 백두산, 하얼빈으로 향할 때도 살펴보았다.
중국에서만 달린 총거리가 1만 킬로를 넘었다.
고조선 시대의 수도 '아사달'은 현덕부에 있었다.
오늘날 북한의 수도 평양은 아사달이 될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규원사화>에서 기록된 것이 그대로 타당하였다.
중국의 만리장성을 보라!
만리장성은 북방 오랑캐의 침략을 저지할 목적으로 건설된 최후의 보루이다.
그곳이 중국 외곽 국경의 기준점이다.
만리장성 밖은 고조선이나 거란의 활동 무대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한민족의 잃어버린 구토이다.
다시 말해 만리장성 이북의 광활한 대지는 고대 중국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규원사화 >에 기록된 바에 따라 아사달의 정확한 위치를
논해야 타당한 것이다.
발해 중경 현덕부는 고조선의 수도 '아사달'이었다.
거듭되는 거란 여진 그리고 중국 왕들의 거센 도전은 수도를
이전하는 동기가 되었다.
압록강 이남으로 이동하여 거센 대륙의 중원에서의 거듭되는 수난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물이다!'
수도를 옮기면 이전 땅은 자연스레 잊혀버리는 것이다.
다른 그릇에 담긴 물이 되는 것이다.
수도가 압록강과 백두산 이남으로 이전하자 사람들의 마음은 압록강 이남만 한 용기에 담겼다.
구토 회복의 마음은 세대가 지나면서 서서히 흐려졌다.
처음 수도를 옮길 당시에는 영구히 이전할 마음으로 이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국력을 강화한 후 구토 회복을 이루겠다는 국가적 염원을
다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이전의 다짐은 지워져 버린다.
'백두산'은 한민족 대대로 민족의 성산이었다.
불과 80년 전까지 남북 간에 국경이 없었다.
누구나 '백두산'을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었다.
백두산을 기준으로 사고와 생활은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남과 북이 장벽으로 가로막히고
남한의 수도는 '서울' 북한의 수도는 '평양'으로 양분되었다.
남한의 국민들은 수도인 서울이 정신과 사고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흐르면 그대로 굳어버린다.
사람들은 백두산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는 세대가 태어나
사회를 차지했다.
어느새 백두산은 지워지고 '남산'이 생각과 마음에 들어와 차지하였다.
위정자들의 '교육철학 부재'가 낳은 비극이다.
'먹고살기 바쁘다!'
'돈이면 최고다!'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가 있다.
'이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지난해 아니 그 이전에 모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대한민국 행정수도를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전한다는 공약을 한 걸로 알고 있다.
이글 읽은 독자 중에 서둘러 예단하지 말기를 민족의 이름으로 먼저 부탁한다.
좌니 우니 보수니 진보니 한편으로 몰아넣어 공격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결단코 조상들과 이순신 장군의 입을 빌려 말하고 싶다.
좌니 우니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은 해방 그 훨씬 이전에는 없었던 단어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서양식 정의에 결코 동화되고 싶지 않다.
별을 헤아리는 마음이다.
윤동주 시인 할아버지의 비탄하는 심정으로 글을 적는다.
이육사 할아버지의 그'광야'이다.
심훈 할아버지의 절규 '그날이 오면'이다.
국민과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
국민과 사람의 마음은 담겨지는 물과 같다.
세대가 흐르면 바뀐 용기 그릇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이전 조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아이들로 채워진다.
이 같은 옹기 같은 그릇의 변화에도 이전 마음을 유지시킬 수 있는 것은 선각자들의 교육이다.
지속적 교육만이 변형된 옹기에 담긴 마음을 깨어있게 할 수 있다.
교육은 최고의 변형 방지를 위한 최선의 방부제이다.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다!'
해방 이후 대통령들은 모두 실패했다.
다음 대통령도 역시 실패할 것이 자명하다.
'그 우물에 그 개구리다!'
수도를 서울에서 대전으로 옮긴다는 것에 조상 선열들의 이름으로 반대한다.
함석헌 할아버지, 백기완 선생님의 혼령도 침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수도이전 문제는 당리당략의 문제가 아니다.
기득권 세력 견제와 연결되어서도 안 되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남북통일 이후를 멀리 내다보고 결정할 일이다.
아사달에서 마라도까지 보면서 결정할 사안이다.
빼앗긴 백두산의 정령께 물어야 할 사안이다.
남과 북한의 동포들의 일치하는 묵시적 동의나 합의가 없이는 실행할 수 없는 일이다.
최소한 삼팔 이남의 국민투표에 붙여서 결정할 사안이다.
대통령 단독의 결정으로 이루어질 사안이 아니다.
그나마 남북통일의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주는 북한산과 남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존치하기 바란다.
수도가 만일 대전으로 이전한다면 용납할 수 없다.
다음 세대는
영원히 백두산과 북방에 대한 마음이 닫혀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서울 이남으로 수도를 옮긴다는 것은
남과 북의 통일을 포기한다는 정치적 의미이기도 하다.
동의할 수 없다.
어린아이들의 마음과 시선은 남산에서 다시 계룡산으로 따라 이전하는 것이다.
참으로 비극적 민족이다.
가엾은 다음 세대다.
잃어버린 세대가 될 것이 뻔하다.
이는 민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며 반민족적 낭비이다.
재삼 강조하거니와 행정수도 이전건은 백지화하기 바란다.
그러지 않아도 국가적으로 할 일이 너무 많다.
괜한 국가예산을 낭비하지 말기 바란다.
만일 서울의 이북으로 이동한다면 그것은 찬성이다.
백두산에 더 가까이 가는것이고 남북통일 이후를 고려한것이다.
베이징을 보라 모스크바를보라!
지역적 안배는 없다.
중국의 베이징은 티벳에서나 홍콩으로부터 얼마나 먼가?
러시아 모스크바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얼마나 먼곳인가?
수도이전에 쏟아부을 예산이 있다면 국방과 '조기 통일교육'등에 더욱 전념하기 바란다.
'사람의 마음은 그릇에 담기는 물과 같다'
북방의 잃어버린 구토와 민족성지 백두산을 기억하게 하여야 한다.
지금 우리는 민족혼이 사라진 얼빠진 민족에 직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