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타민·가려움에 대한 철학적 탐구

-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그리고 웅토닌

by 웅토닌

헬리코박테리아 제균제 부작용으로
가려움증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히스타민과 가려움을 대하는 철학자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래서 나는

세상을 정반대로 바라본 두 철학자,
헤겔과 쇼펜하우어를 떠올렸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세계에 대고 전혀 다른 눈을 들이댄 사람들.

낙관적 체계와 비관적 통찰,

마치 두 개의 렌즈로 세계를 바라본 것처럼 말이다.


헤겔의 생각은 유명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며,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다.”

2_ggaUd018svcs2lrp5phix7k_qj5d0d.png?type=w520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그래서 헤겔은

역사의 진보를 믿었고,

체계와 구조를 만들었으며,

고통조차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의미 있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에게 고통은

피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이성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반면 쇼펜하우어는 전혀 달랐다.

그는 헤겔을 “철학적 사기꾼”이라고까지 부를 만큼

정면으로 대립했다.

5_ggaUd018svcyispa3kwpe05_qj5d0d.png?type=w520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에게 세계란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맹목적인 의지가 끝없이 자신을 반복하는 공간이었다.


그는 말했다.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고통은 예외가 아니라 삶의 기본값이라고.


그리고 여기에 니체가 등장한다.

니체는 젊은 시절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고,

헤겔 이후 독일 철학 전통의 한가운데서 자랐다.

그래서 그는 두 철학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고,

그래서 더 가차 없이 부숴버렸다.

b_8gaUd018svc2pfupubk3kpy_qj5d0d.png?type=w520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의미를 찾지 마라, 가치를 만들어라.”

그에게 고통은 설명해야 할 대상도,

도망쳐야 할 대상도 아니었다.


고통은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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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철학자들이

히스타민의 가려움증을 만난다면

과연 뭐라고 말했을까.


• 헤겔의 관점 :

헤겔에게 세계는 모순을 통해 발전하는
이성의 과정이다.

불편함은 오류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긴장이다.


가려움도 마찬가지다.
몸이 스스로를 부정하고, 다시 조정하며,
더 높은 균형으로 가려는 변증법적 신호다.


긁고 싶다는 충동(정)과
참아야 한다는 자각(반)이 충돌하고,
그 사이에서 “왜 이런 반응이 생겼는가”라는
이해(합)가 태어난다.


가려움은 실패가 아니라,
몸의 이성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 쇼펜하우어의 관점 :

쇼펜하우어에게 세계는
이성이 아니라 맹목적 의지가 지배한다.

살고자 하는 충동은 끝없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가려움은 이유도 목적도 없다.
그냥 생긴다.

참아도 괴롭고, 긁어도 괴롭다.

해결은 발전이 아니라
거리 두기와 체념에 가깝다.


가려움은 설명할 대상이 아니라,
덜 휘말려야 할 현상이다.

몸은 끊임없이 불편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고통은 원래 삶의 기본값이다.”


• 니체의 관점 :

니체에게 고통은
제거해야 할 오류가 아니다.

고통은 삶이 나를 시험하는 방식이며,
그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곧 인간의 격이다.

가려움은 묻는다.

“너는 이 자극 앞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나를 재해석할 것인가?”


니체는 묻지 않는다.
왜 가렵냐고.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 가려움을 너는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니체식 히스타민 해석

긁고 싶은 충동에 즉시 굴복한다면 → 반응하는 인간

참기만 하며 억누른다면 → 원한을 쌓는 인간

가려움을 관찰하고, 거리 두고, 리듬을 바꾼다면 → 자기 극복의 인간


니체에게 중요한 건
증상의 원인도, 완치도 아니다. 태도다.

가려움은 나를 약하게 만드는 신호가 아니라,
나의 힘의 형식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자극이다.


세 철학자를 한 줄로 정리하면

헤겔 : “이 가려움은 발전의 계기다.”

쇼펜하우어 : “이 가려움은 세계의 본질이다. 기대하지 마라.”

니체 : “이 가려움을 어떤 인간으로 통과할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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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토닌 :

“이 고통을 없애려 들기 전에 일단 국부터 각자 떠먹자.”

“몸과 싸우지 말고, 입으로 들어가는 도구를 분리하자.”


“철학은 어렵지만, 예방은 숟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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