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의 끝에서 ‘무위자연’을 만나다

- 쇼펜하우어·염지관·MBCT명 상의 차이와 경계

by 웅토닌

마음 챙김 기반 명상인 MBCT, MBSR 명상이 나옵니다. 이는 동양철학이 서양에서 포장되어 다시 동양으로 역수입되어 폭발적 인기를 끌었고 산림치유지도사 수업내용으로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챙김’ 이란 명제와 결을 함께하는 철학과 심리학을 연결하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습니다.

앞서 게시한 「명상의 이해」에서는 염지관 명상과 MBCT의 구조와 의미에 대해 정리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쇼펜하우어가 동양 사상, 특히 불교와 우파니샤드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그의 철학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거리두기’라는 점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거리두기'는 감정과 욕망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한 발 물러서서 그것들을 관조하려는 사유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거리 두기는 염지관 명상의 핵심 구조인

'알아차린다 → 멈춘다 → 통찰한다'라는 과정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두 접근 모두 감정과 욕망에 대한 동일시를 내려놓음으로써 고통을 완화하려는 태도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서로 깊이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양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쇼펜하우어의 '거리두기'가 의지를 억제하거나 약화시켜 고통을 줄이려는 사유적·윤리적 태도에 머무르는 반면, 염지관 명상은 알아차림을 통해 욕망과 집착을 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착이 성립되는 조건 자체가 해체되는 수행적 전환으로 나아갑니다.


즉, 쇼펜하우어의 '거리두기'는 고통으로부터 물러나려는 사유의 태도이며, 염지관 명상은 고통이 성립되는 조건을 비추어 소멸시키는 수행적 전환입니다.


가려움에서 시작된 생각이 ‘거리두기’라는 말에 걸려, 동서양 철학과 심리학까지 돌아보게 됩니다.

노자·장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이 있습니다. 노자와 장자가 말한 무위자연은 흔히 오해되듯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위(無爲)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개입과 억지, 인위적인 조작을 하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자연(自然) 또한 자연경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함’, 이미 그렇게 굴러가고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따라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억지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개입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욕망을 눌러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망이 스스로 일어나고 스스로 사라지게 두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거리두기’조차 의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가에서는 거리 두기를 연습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개입하지 않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무위자연은 욕망을 없애려 애쓰지 않고, 감정을 통제하려 들지도 않으며, 삶을 고쳐 쓰려하지 않는 태도로 드러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쇼펜하우어의 ‘거리두기’는 도가와 불교 사상의 문 앞까지는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위자연처럼 그 흐름 속으로 흘러들지는 못했고, 달마처럼 집착의 뿌리를 끊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가려움이 철학을 깊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유라는 것은, 어쩌면 괴로움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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