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버티는 식물들의 생존전략

자체발열시스템, 춘화현상, 로제트형, 부동액, 씨앗 휴면, 낙엽, 수피와

by 웅토닌


복수초가 눈밭을 뚫고 나왔습니다.

1. 겨울을 버티는 식물들의 생존전략

치유약용식물 강의를 하면서도 매번 느끼는 것이 있지만 식물들의 생존전략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가슴 벅찬 감동을 주는 식물들이 있습니다.

복수초- 안인 권혁준

봄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눈이 소복이 쌓인 산비탈에서 복수초를 만났을 때입니다.


복수초는 정윌이 오기도 전에 먼저 피는 참 부지런한 풀꽃입니다.

2월만 되면 여기저기서 복수초가 피었다는 사진이 SNS에 올라옵니다.

하얀 눈이 그대로인데도 복수초 주변만은 신기하게 눈이 녹아 있습니다.


‘무슨 열불이 나서 저렇게 눈을 녹일까?

누구에게 복수라도 하려는 걸까?’


하지만 복수초는 한자로 복 복(福), 목숨 수(壽),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뜻을 지닌 이름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염원하는 ‘장수의 복’을 상징하는 꽃이 가장 먼저 봄을 연다니,

조금은 생뚱맞으면서도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어떻게 식물이 열을 낼 수 있을까?


그 감동을 담아 시를 써 보았습니다.
https://brunch.co.kr/@a4707dbb23374ec/139

궁금증은 자연스레 검색의 바다로 흘러갑니다.

자체발열 시스템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입니다.
키가 작은 복수초는 나무나 키 큰 풀들이 잎을 펼치기 시작하면 그늘에 가려
햇빛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라질 운명에 놓입니다.

그래서 복수초는 계산합니다.
“모든 식물이 겨울잠에 빠져 있을 때,
나뭇잎이 나오기 전에 누구보다 먼저 꽃을 피우자.”
그러면 햇빛을 독점할 수 있고,
지나가는 곤충 또한 선택의 여지없이 자신에게 오게 됩니다.

물론 추운 날씨에 곤충이 오지 않을 가능성도 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수초는 암수 한 그루 식물체제를 갖추고 있어,
필요할 경우 자가수정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근친의 위험성은 동식물을 가리지 않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얼어붙은 땅과 두꺼운 눈을 어떻게 뚫고 나올 것인가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이 바로 복수초의 ‘자체 발전소’입니다.

복수초는 2월에 꽃눈이 올라오고,
3~4월에 만개한 뒤 5월이면 지상부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뿌리는 본격적으로 에너지를 비축합니다.

6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양분을 흡수·축적하며,
강심 작용을 하는 강심배당체와 여러 가수분해성 성분을 만들어 저장합니다.

그리고 엄동설한이 끝나갈 즈음,
양지바른 곳에서 녹은 눈물이 뿌리를 적시면
이 성분들이 물과 반응하여 화학적 발열이 일어나고,
그 열로 주변의 눈과 얼어붙은 토양을 녹여냅니다.

또 하나의 비밀.
복수초의 겹꽃잎은 접시 안테나처럼 펼쳐져
햇볕을 가운데로 모으는 오목거울 효과를 냅니다.
그 결과 꽃 내부는 따뜻한 ‘꽃방’이 되고,
꿀벌을 불러들여 번식을 완성합니다.

복수초의 발열시스템을 가진 식물들을 검색하다

희말라야의 설산이나 티베트 산악지방에는 ‘노드바’라는 식물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히말라야 만년설 아래 바위틈에서 자라며,

꽃이 필 때 스스로 열을 내어 3~4미터나 쌓인 눈을 녹인다 합니다.

식물의 난로’라 불리는 이 약초는
신장병·방광 질환·부종·복수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라마승들이 매우 귀하게 여긴다는 식물인데

더 이상의 정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볼수 있는 복수초,
원망 대신 극복을 선택하고,
스스로 열을 내어 눈을 뚫고 꽃을 피우는 복수초.
참 멋진 생존자 아닐까요?

2. 겨울을 버티는 식물들의 생존전략

로제트형 잎
식물이 추위를 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로제트형 잎입니다.
뿌리에서 바로 나온 잎이 땅바닥에 바짝 붙어
장미꽃처럼 둥글게 퍼진 형태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지면 가까운 곳은 바람이 덜 불고,
기온도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식물은 이 환경을 이용해 잎을 최대한 낮게 펼치고
햇빛을 골고루 받도록 배열합니다.

잎이 서로 겹치지 않도록 돌아가며 자라는 구조는
겨울을 극복하기 위한 매우 효율적인 생태 전략입니다.

민들레가 대표적이며,
지칭개·방가지똥·뽀리뱅이·망초·냉이·달맞이꽃·곰보배추 등에서도 관찰됩니다.

식물의 부동액
백두산 천지 주변에 사는 상록 소관목 노랑만병초는
세포 안에 또 다른 전략을 숨겨두고 있습니다.

세포 내 인지질 함량을 늘리고,
당·아미노산·질소 화합물을 이용해
일종의 식물 부동액을 만듭니다.

핵심은 부동단백질(Antifreeze Protein, AFP)입니다.
이 단백질은 세포 내 물이 얼어 큰 얼음 결정으로 성장하는 것을 억제합니다.

기온이 떨어지면 에틸렌과 같은 식물 호르몬의 작용으로
AFP 합성이 촉진되고, 이 단백질은 세포벽 쪽에 축적되어
얼음 결정의 형성을 막거나 크기를 극도로 작게 만듭니다.

현재까지 겨울호밀, 노박덩굴, 당근, 복숭아 등에서
20여 종 이상의 AFP가 확인되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거부하지 않고,
그 조건을 끌어안아 자신만의 생존 전략을 만들어내는 식물들.

뇌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는 존재라 여겼던 식물에게
이런 정교한 과학이 오래전부터 ‘기본 옵션’으로 내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자연 앞에서,
괜히 까불지 맙시다.

3. 겨울을 버티는 식물들의 생존전략


씨앗 휴면 - 기다릴 줄 아는 생존
식물에게 겨울은 견뎌야 할 계절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되기도 합니다.
그 선택이 바로 ‘씨앗 휴면’입니다.

씨앗은 이미 하나의 완성된 생명체입니다.
다만, 그 생명은 스스로 깨어날 시점을 철저히 통제합니다.
추운 겨울에 성급히 발아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식물의 씨앗은 단단한 종피에 싸여 있습니다.
이 종피는 단순한 껍질이 아니라, 시간과 환경을 감지하는 센서에 가깝습니다.
저온, 수분, 산소, 빛의 조건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야만
씨앗은 비로소 ‘지금이구나’ 하고 깨어납니다.

이를 저온 처리(춘화, vernalization)라 부르기도 합니다.
겨울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씨앗은
아예 싹을 틔울 자격조차 얻지 못합니다.

어떤 씨앗은 겨울의 혹독함을 일부러 이용합니다.
눈과 얼음, 미생물, 반복되는 동결과 해빙 과정 속에서
종피가 서서히 약해지고,
그제야 물과 산소가 스며들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기다림의 전략은 단순한 인내가 아닙니다.
환경이 허락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 용기,
그것이 씨앗이 택한 겨울나기입니다.

씨앗 휴면은 또한 위험 분산 전략이기도 합니다.
모든 씨앗이 동시에 발아하지 않고,
일부는 몇 해를 더 기다립니다.

올해가 흉년이면 내년이 있고,
내년도 아니라면 그다음 해가 있습니다.
식물은 미래를 예측하지 않습니다.
대신, 가능성을 분산시킵니다.

자연에서 살아남는 것은
가장 빠른 종도, 가장 강한 종도 아닌
가장 오래 버틴 종이라는 말을
씨앗은 조용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4. 겨울을 버티는 식물들의 생존전략

낙엽 전략 – 버림으로써 지키는 것
겨울 숲을 보면 나무들은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보입니다.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낙엽은 패배가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생존 전략입니다.

잎은 광합성의 공장이지만, 동시에 큰 위험 요소이기도 합니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과 눈은 잎에 쌓여
가지가 부러질 정도의 하중을 만듭니다.

또한 잎 표면에서는 끊임없이 수분이 증발합니다.
땅이 얼어 수분 흡수가 불가능한 겨울에
잎을 유지하는 것은 곧 탈수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나무는 가을이 되면
엽병의 기부에 이층(離層)이라는 분리 조직을 형성합니다.
이 조직이 완성되면, 잎은 스스로 떨어질 준비를 마칩니다.

잎을 버리기 전, 나무는 할 일을 모두 합니다.
엽록소를 분해하고,
질소와 인, 마그네슘 같은 귀한 영양분을
줄기와 뿌리로 회수합니다.

우리가 보는 단풍은
떠나기 전 마지막 정리 과정입니다.
떨어진 낙엽은 끝이 아닙니다.

땅 위에 쌓인 낙엽층은
토양의 보온을 돕고,
미생물과 곤충의 먹이가 되며,
다음 세대를 위한 양분으로 되돌아갑니다.

버림은 소멸이 아니라
순환의 시작입니다.

수피와 눈 비늘 – 잠든 생명을 지키는 갑옷
겨울 숲에서 살아남은 나무를 자세히 보면
또 하나의 방어선이 보입니다.
바로 두꺼운 수피와 단단히 닫힌 눈(芽)입니다.

수피는 단순한 껍질이 아닙니다.
외부의 냉기와 병원균, 해충으로부터
형성층과 관다발을 보호하는 생명의 방패입니다.

코르크층에는 공기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뛰어난 단열 효과를 냅니다.
마치 겨울 외투처럼,
나무의 체온 손실을 최소화합니다.

눈(芽)은 더 놀랍습니다.
눈 비늘은 여러 겹으로 겹쳐져 있으며,
수지나 왁스 성분으로 코팅되어 있습니다.

이 구조는
냉기와 건조를 차단하고,
병원균 침입을 막으며,
내부의 어린잎과 꽃눈을 안전하게 봉인합니다.

눈은 겨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완벽히 보호된 상태로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씨앗은 시작을 미루고,
나무는 잎을 내려놓으며,
줄기와 눈은 단단히 닫힙니다.
식물은 겨울을 이기려 하지 않습니다.
겨울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을 뿐입니다.

버티는 것,
기다리는 것,
내려놓는 것.
그 모든 선택이 모여
봄이라는 결과를 만듭니다.
자연은 언제나 말없이 가르칩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때로 가장 조용한 선택이라는 것을.

복수초- 안인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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