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나

by 웅토닌

시인과 나

- 웅토닌


시인은

나보다 한 발 늦게 걷는다

나는 오늘을 살고

그는 지나간 자리를 바라본다


나는 상처를 피하려 애쓰고

시인은 그 상처에 이름을 붙인다

아플 때 나는 말을 삼키고

시인은 침묵을 기록한다


내가 무너지면

그는 그 자리에 줄을 긋고

다음 사람이 건너올

다리를 남긴다


오늘도 나는 하루를 버티고

시인은 그 하루를 불러 앉힌다

시인은 나에게서 태어나고

나는 그 덕분에 조금 덜 사라진다


나는 시인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의 소음’에서

한 발 물러나 명상의 자리에서 고통을 바라보고,

그 흔적으로 타인이 건널 다리를 남기는 존재다.

시인은 의지의 직접적 경험 주체가 아니라, 명상적 거리두기를 통해 고통을 표상화하고, 그 흔적을 공유 가능한 의미 구조로 전환하는 반성적·윤리적 사유 주체로 기능한다.


시인의 기록 행위는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명상 기반 중재(MBSR/MBCT)의 메타인지적 관찰의 결과이며, ‘알아차림의 자리’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기록은 존재의 연장이며, 부활이다.

기록은 고통을 소거하지 않는다.

기록은 고통이 지나간 자리를 사유의 장으로 보존한다.

그곳에서 존재는 시간적으로 연장되고,

의미적으로 재현되어 다시 살아난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