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치

사라진 뒤에야 보이는 것들

by 웅토닌

발치

- 웅토닌


힘들었겠지요


부서지고 아픈 당신에게

저는 황금 갑옷을 입혀 드렸습니다


그 후로 서른 해

당신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버텨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당신을 보내드립니다


겉은 멀쩡해 보였지만

뿌리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차피 진행됩니다”

그 한마디에

저 역시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금까지 버텨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끝내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260321 뽑힌 왼쪽아래어금니


발치, 그리고 오래된 기억

중국 유학 시절의 일입니다.

식탐이 많았던 저는


무엇이든 뜯고 씹으며

때로는 병뚜껑까지 이로 따곤 했습니다.


그 결과

어금니 하나가 깨지고

충치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무렵

동네에 대만 출신 치과의사가 개원을 했고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금니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중국에서 대만 의사에게

한국인이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낯설면서 묘하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대만인은 왜

중국에서 자리를 잡았을까요.

한국인은 왜

그 낯선 이를 믿고 치료를 맡겼을까요.


아픈 이를 들고 찾아온 사람과

그 아픔을 고쳐주려는 사람.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세 사람이

한 공간에서 잠시 겹쳐졌던 순간.


생각해 보면

삶은 늘 그렇게 이어져 왔습니다.

어디서 왔는지보다

지금 어디에 닿아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들.


그 이후로는 큰 불편 없이

오랜 시간을 잘 지내왔습니다.


그러다 최근

살짝 시큰거리는 느낌이 있어

다시 치과를 찾았습니다.


검사 결과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던 치아의

뿌리 주변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결국 발치하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결국 이를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뽑혀 나온 치아를 바라보니

오랜 세월

험한 시간을 견뎌온

제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아무 말 없이

버텨주었던 시간들이 떠올라

연민과 미안함이

조용히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은 이별을 기억하기 위해

이 시를 남깁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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