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무르지 못하는 이유
가출, 외출, 여행
- 웅토닌
집을 떠나는 데에도
이름이 많다
머리를 깎고 떠나면
그것을 출가라 하고
서류를 들고 떠나면
출장이라 부르며
아무 말 없이 나서면
출타라 적는다
같은 문을 나서도
사람은 저마다
다른 이름을 붙인다
누군가는 세상을 버리러 가고
누군가는 세상을 만나러 가며
누군가는 그저
세상에서 잠시 비켜선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서
문을 나섰다
처음엔 가출이었다
이유는 없었고
숨이 막혔을 뿐이었다
골목을 지나
사람들 사이를 흐르다 보니
그건 외출이 되었고
발걸음이 멈추지 않자
어느새 여행이 되었다
돌아갈 곳이 있는 날엔
그저 외출이었고
돌아갈 마음이 없는 날엔
그건 가출이었으며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
비로소 여행이 된다
머무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머무를 수 없는 마음이
나를 계속 길 위에 세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관측되지 않은 가능성으로
나를 통과해 걷는다
이 시는 나의 삶을 관통한다.
돌아보면
나는 늘 집을 떠나 있었다.
학업을 위해서였고,
생업을 위해서였다.
나의 선택이었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나를 밀어냈다.
그래도 나는
늘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래서 그 떠남은
가출이 아니라 여행이었고,
어딘가 낭만으로 남아 있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Modern Times 속 장면처럼,
사람은 어느 순간
하나의 부품이 되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같은 방식으로 반복한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싫었을 뿐이다.
그래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고,
처음 해보는 일들을 자주 선택하게 되었다.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한
호기심이 그보다 더 컸다.
집을 떠난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갖지만
결국 하나의 기준으로 나뉜다.
돌아갈 곳이 있는가, 없는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자 보이지 않는 배경이 된다.
억울한 일이 생기고 힘든 순간이 찾아와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면
사람은 더 치열하게 상황과 맞서게 되고
어쩌면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끌고 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떠남의 의미는 얼마나 멀리 갔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그 길 위에 서 있었느냐에
달려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