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 이별은 스며듦이다

by 웅토닌

봄비

- 웅토닌


함박산에 비가 온다

소리 없이


마른 잎 사이로

스며드는 작은 물결들


그것들은 비가 아니라

기억이었다


발걸음이 멈춘 자리마다

젖어드는 시간들


누군가의 이름이

흙냄새로 피어오르고


말하지 못했던 말들이

빗방울 끝에 맺힌다


툭, 빗방울이

떨어지는 그 순간


이별은 슬픔이 아니라

스며듦이라는 걸

4월 함박산에 비가 내립니다

봄비 입니다.


「봄비」는

비를 통해 옛 기억을 소환하는 시입니다.

젊은 날의 비는 하나의 ‘현상’으로 스쳐 지나가지만,

시간이 흐른 뒤의 비는 황순원 님의 「소나기」처럼

기억을 불러오는 매개로 전환됩니다.


“비가 아니라 기억이었다”

이 문장으로 비라는 자연 현상을 내면의 시간으로 바꾸고자 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비를 좋아해 왔습니다.

'비의 이미지', ‘당신 고운 눈에’, '레이니 나잇', '비가 오네', '비가 본 너'처럼 비관련 노래도 많이 만들어 왔고, 그 감정의 연장선에서 이 시가 탄생했습니다.


이 시에서 저는 ‘이별’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했습니다.

이별은 끊어짐이나 상실, 단절이 아니라

감정의 ‘스며듦’입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남아 있는 것,

아픔이 아니라 잔존하고 축적되는 감정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시 속의 이미지들은 이러한 감정을 오감으로 끌어올립니다.

“흙냄새로 피어오르는 이름”은 후각을 통해 기억을 불러오고,

“빗방울 끝에 맺힌 말들”은 말하지 못한 감정을 시각화하며,

“젖어드는 시간들”은 시간을 하나의 물성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그래서 시를 읽는 동안 숲 속에서 함께 비를 맞으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마지막 구절,

“함박산은 아무 말도 않는다 / 숲은 다 받아주고 젖어간다”는

비는 슬픔을 씻어내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스며들게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스며듦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는 것,

자연을 통해 감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처럼 감정을 받아들이라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