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는 사라지고 야바위만 남아
개검과 개판
- 웅토닌
정의를 말하는 두 자리가 있다
하나는
죄를 밝히라며 칼을 쥔 자리
하나는
죄의 무게를 묻겠다며
저울을 든 자리
그런데 어느 날
칼은 진실이 아니라
사람을 겨누고
저울은 사실이 아니라
칼의 편의를 잰다
가해자는 울음을 연기하고
피해자는 죄를 뒤집어쓴다
서류는 진실대신 소설을 쓰고
판결은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범인을 찾아야 할 눈이
범인을 만들어낼 때
더 이상 법의 사람이 아니고
그저 권력을 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그 모든 것을 덮어
정의라 부르는 손이 있다면
칼과 저울은 공범이 된다
죄를 묻지 않는 칼
무게를 재지 않는 저울
그 위에 앉아
정의를 말하는 입
참으로 편리하다
풀려난 발걸음은 가볍고
붙잡힌 한숨은 무겁다
정의는 말하지 않는다
무너진 사람의 숨 속에서만
정의는 겨우 숨을 쉰다
“칼은 누구를 위해 들렸는가”
“저울은 무엇을 재고 있었는가”
대답은 늘 같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끝내 남는 것은
직함이 아니라 기록이다
지워지지 않는 이름
지워지지 않는 역할
정의를 말하던 자리에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이 시를 쓰게 된 이유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 서 있고,
피해자의 말은 묻히거나 지워지는 장면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밝혀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때로는 진실의 방향을 바꾸고,
비리를 드러내야 할 손이
오히려 그것을 덮는 데 쓰이는 현실.
그리고 법의 이름으로 누군가는 보호받고,
누군가는 사라지는 그 구조.
그 모습이 너무도 반복되어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법은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고 말합니다.
그 보루가 스스로 무너질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이 시는
누군가를 지목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 있는 권력이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묻는 글입니다.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장면들을
시의 형식을 빌려 남겨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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