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아는 자
[K-Zodiac] 네 번째. "토끼 兎(토)" 이야기
- 상처를 아는 자
그 숲에는 오래도록 질서가 있었다.
누가 함부로 사냥하지 않는지, 어디까지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인지, 숲의 동물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 질서를 잡고 있던 호랑이가
산 너머 새로운 땅을 향해 떠난 뒤, 숲은 조용해졌다.
너무 조용해져서 위험해질 만큼.
그 틈을 노려 못된 무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빨만 믿는 자들, 숫자에 기대는 자들,
밤을 틈타 약한 자를 노리는 자들.
그들은 혼자일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무리를 이루자 숲을 휘젓기 시작했다.
사슴은 쫓겼고, 다람쥐는 나무 위로 숨었고,
작은 동물들은 움직이지 못한 채 떨었다.
그때 토끼는 굴 앞에 앉아
귀를 세우고 있었다.
토끼는 싸울 수 없었다.
이빨도, 발톱도, 힘도 없었다.
그래서 토끼는 숲의 소리를 들었다.
발소리가 몇 개인지, 숨이 거친 지,
누가 앞서고 누가 뒤따르는지.
그날 밤, 못된 무리 하나가
토끼의 굴을 향해 다가왔다.
토끼는 도망치지 않았다.
곧장 달리지도 않았다.
대신 굴 앞의 풀을 일부러 밟아
발자국을 남기고, 다른 방향으로 크게 돌아
다시 자기 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굴을 세 개로 나눴다.
하나는 깊고 어두운 굴, 하나는 얕고 넓은 굴,
하나는 아무 데도 이어지지 않는 헛굴이었다.
무리들이 들이닥쳤을 때, 토끼는 이미 헛굴을 지나
반대편 숲으로 빠져 있었다.
그들은 굴 속을 헤집으며 서로 부딪혔고,
길을 잃고, 서로를 의심했다.
토끼는 풀숲에 엎드려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싸우지 않아도 된다. 이길 필요도 없다.
살아남으면 된다.’
그날 이후, 토끼는 늘 먼저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조금 일찍 움직였다.
위험이 완전히 닥치기 전에 자리를 옮겼고,
눈에 띄기 전에 방향을 바꿨다.
못된 무리들은 숲을 차지했지만,
토끼는 끝내 잡지 못했다.
그들은 토끼가 겁이 많아 숨어 다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토끼가 숲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며칠 뒤, 호랑이가 돌아왔을 때 숲은 이미 큰 피해를 입은 뒤였다.
그러나 상처 하나 없이 토끼는 살아 있었다.
하늘은 토끼를 보고 말했다.
“너는 이기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준 존재다.”
그래서 토끼는 ‘회피와 회복의 별’이 되었다.
이 별은 세상이 이렇게 말할 때 빛난다.
“도망치면 지는 거야.”
그때 토끼는 조용히 대답한다.
“아니요. 다치지 않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토끼 = 상황을 읽고 빠져나오는 생존자
호랑이의 부재 = 혼란
토끼의 역할 = 혼란 속에서 상처를 최소화하는 지혜
이제 토끼는 열두 동물 가운데 가장 현대적인 캐릭터,
“현실에서 살아남는 법을 아는 존재”로
아주 또렷하게 살아 있습니다.
다음 "곰 熊(웅) 이야기"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