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Zodiac] "돼지 猪(저)" 이야기

- 음식의 수호자

by 웅토닌

[K-Zodiac] 열 두 번째. "돼지 猪(저)" 이야기

- 음식의 수호자


모든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된 뒤에도
숲에는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길은 열렸고, 질서는 돌아왔고, 위험도 잦아들었다.
그런데도 배는 여전히 고팠다.

사람들과 동물들은 깨달았다.
위험은 싸움에서 끝나지만,
배고픔은 매일 돌아온다는 것을.
그때 돼지가 있었다.

돼지는 늘 먹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는
“점심엔 뭐 먹지?”
점심에는
“저녁은 미리 준비해야지.”
저녁에는
“이건 밤참으로 괜찮겠네.”

다른 동물들은 돼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쟤는 참… 위기감이 없어.”
“맨날 먹을 생각뿐이야.”
돼지는 그 말을 들어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위기는 배고플 때가 제일 위험해.”

숲의 동물들은 각자 먹는 것이 달랐다.
소는 풀만 먹었고, 사슴도 풀을 가렸다.
호랑이는 고기만 찾았고,
여우는 냄새나는 것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닭은 곡식만 쪼았고,
오리는 물속 먹이에만 고개를 넣었다.
입맛은 곧 정체성이 되었고, 정체성은 제한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해,
숲에 다시 흉년이 들었다.
곡식은 줄었고, 열매는 맺히지 않았고,
풀도 시들었다.
동물들의 얼굴은 점점 말라 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돼지는 여전히 통통했다.
동물들은 수군거렸다.
“혹시… 혼자 숨겨 둔 거 아니야?”
“어딘가에 창고가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들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돼지는 편식을 하지 않았다.
다른 동물들이 “이건 입맛에 안 맞아.”
“이건 내가 먹는 게 아니야.”
하며 외면한 것들을, 돼지는 그저 음식으로 보았다.

곡식이 떨어지면 뿌리를 먹었고,
뿌리가 없으면 껍질을 씹었고,
껍질도 없으면 버려진 찌꺼기를 먹었다.


고기든 풀이든, 익었든 덜 익었든,
남은 것이든 흘린 것이든, 돼지는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몸이 무너지지 않았고,
그래서 다음 날을 맞을 수 있었다.

그제야 동물들은 깨달았다.
돼지가 많이 먹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먹을 수 있는 범위를 넓게 열어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때 하늘이 말했다.
“너희는 먹을 수 있는 것을 줄이며 고귀함을 지켰다.
그러나 이 아이는 고귀함을 내려놓고 생명을 지켰다.”

돼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땅을 보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하늘은 다시 말했다.
“음식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그리하여 돼지는 ‘음식의 수호자’가 되었다.


이 별은 풍요할 때 빛나지 않는다.
선택지가 많을 때도 아니다. 먹을 것이 줄어들고,
입맛이 조건이 될 때,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인다.
“먹을 수 있다면, 살 수 있다.
가리지 않는 것이 가장 강한 생존이다.”


이제 돼지는 탐욕의 상징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몸을 지키는
섭취의 지혜, 생존의 최후 방패로
K-Zodiac의 마지막 자리에 섰다.

다음 [K-Zodiac] 에필로그 -살아가는 우리 이야기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