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쁨, 생존, 본능

우리는 왜 끌릴 수밖에 없을까

by 웅토닌

TV를 보다가
어릴 적 무척 좋아했던 배우 정윤희의 리즈 시절이 화면에 나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영화 정윤희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한 장면


그 순간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남자는 왜 예쁜 여자를 좋아할까요?
이 질문은 이렇게 바꾸어도 답이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자는 왜 멋진 남자를 좋아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몇 가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물생리학 그리고 상담심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 글에서는 개인적 취향이나 도덕적 판단을 내려놓고
인간의 선택을 가능한 한 객관적인 관점,
즉 생존과 본능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사슴의 암컷은 왜 뿔이 멋지게 자란 수컷을 선택할까요?
공작새 암컷은 왜 그렇게 화려한 꼬리를 가진 수컷을 좋아할까요?

픽사베이 사슴
픽사베이 공작

사슴의 거대한 뿔은 포식자를 피해 달아나기에 분명 불리합니다.
공작의 화려한 꼬리 역시 생존에는 불편한 구조입니다.
그런데도 암컷은 그런 수컷을 선택합니다.

거미 수컷은 교미 중 암컷에게 잡아먹히기도 하고,
사마귀 수컷은 머리를 뜯긴 채로도 교미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답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이들의 존재 목적은 생존과 번식이며,
그중에서도 진화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번식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은 개인 취향이 아니라 집단의 흐름이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로널드 피셔(Ronald Fisher)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왜 암컷 공작새는 화려한 꼬리의 수컷을 좋아하는가?”
“그것은 다른 암컷들도 그렇게 선택하기 때문이다.”

처음 들으면 다소 허무한 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말속에는 트렌드, 더 정확히 말하면
종 전체가 공유하는 선택의 방향이 숨어 있습니다.

만약 어떤 암컷 공작이
“나는 화려한 꼬리는 싫고 수수한 꼬리가 좋아”라고 생각해
수수한 꼬리의 수컷을 선택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선택 자체는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로 태어난 수컷 새끼 역시 수수한 꼬리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자라서 짝을 찾을 때,
다른 암컷들이 모두 화려한 꼬리를 선호한다면
그 수컷은 선택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결국 그 계통은 번식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집단의 선택이 진화를 이끄는 이유입니다.

아름다움은 왜 강력한가
이 논리를 인간에게 적용해 보면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왜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할까요?

왜 여자는 멋진 남자에게 끌릴까요?
진화적으로 보자면 이는
좋은 유전자를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영화 브룩쉴즈의 '블루라군' 한 장면
영화 피비케이츠의 '파라다이스' 한 장면

균형 잡힌 얼굴은
발달 과정의 안정성과 건강을 반영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신호로 작동합니다.
이를 흔히 ‘좋은 유전자 이론’이라 부릅니다.

앞서 게시한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로 상징되는

균형 잡힌 몸매,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는
순산과 양육에 유리한 신체 조건을 상징해 왔습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남성의 건장한 체격은 생존 그 자체였고,
여성의 신체적 특징은 번식 능력과 직결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튼튼한 아빠의 몸과, 예쁜 엄마의 외모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코카콜라 병이 여성의 S라인을 닮은 디자인으로 바뀐 뒤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아름다움이 본능을 자극한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렵 시대가 아닙니다.
현대 사회는 훨씬 더 복잡합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번식 전략 역시 더 많은 요소를 요구받습니다.
이제 필요한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건강한 몸
2. 아름다움
3. 상식과 지성, 그리고 지혜
4. 온화한 감정 상태
5. 배려심
6. 유머와 웃음

‘건강한 몸’과 ‘아름다움’은 여전히 강력한 기본 조건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건강하고 외모가 뛰어나도
지성이 부족하고, 감정이 불안정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사회적 관계와 가정은 쉽게 무너집니다.

최근 문제가 되는 데이트 폭력 역시
외적 조건만을 중시하고
정서적 성숙과 배려를 간과한 결과라 볼 수 있습니다.

‘유머와 웃음’은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함께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본능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인간은 밝은 곳을 좋아하고,
시야가 트인 높은 장소에 끌립니다.
트리하우스를 좋아하는 이유도
주변을 관찰하기 쉽고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여전히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형성된
생존 중심의 구조를 기본값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종족 번식의 욕구는 최상위 우선순위입니다.
남자가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
여자가 멋진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 역시
결국은 생존에 유리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기 위해
비너스의 육체는 더 이상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건강한 몸, 아름다움에 더해
지성, 감정의 안정, 배려, 유머가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삶과 관계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자기 관리라는 이름으로 묶입니다.

배 나오게 살지 말 것.
귀찮다고 멈추지 말 것.
주저앉지 말고, 계속 움직일 것.

『주역(周易)』이 말하는 운명이란
정해진 미래가 아니라 변화 그 자체입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운명은 닫히고,
변화하는 한, 운명은 계속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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