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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도둑사업

엄마는 나이고 나는 엄마였다.

by for healing

엄마는 꽤 미인이었다. 그리고 지혜로운 여성이었지만 6.25를 겪으며 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엄마가 늘 마음에 걸려하던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는(아니다, 엄마에게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에 재미있다는 표현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이름에 관한 것이다. 우리 엄마 이름은 '장 ○ 자'이다. 당시에는 이렇게 '자'로 끝나는 이름이 많았다. 사실 지금도 가끔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영자, 순자, 미자, 춘자, 화자, 경자.... 이런 식이다. 그 이름이 왜 그리 싫었을까? 나에게 엄마 소원이라며 이름 좀 개명해 달라고 하도 부탁을 해서 구청에 가서 여러 번 개명 신청을 해도 딱히 명분이 없다며(예를 들어 개명이 가능한 경우,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이름, 심한 외설의 놀림감이 되는 이름.) 딱지를 맞고 돌아오면 " 망할 놈들! 지들이 이 이름으로 살아보라 그래, 얼마나 창피한지, 주민등록증을 내놓을 수가 없어, 내가 아주, 명분 같은 소리 하네, 내가 싫으면 그게 명분이지. 무슨 명분타령이야? 내 이름이 창피해서 죽겠다는데 다른 명분이 어디 있어?"라며 공무원들을 싸잡아 욕하곤 했다. 말씀은 얼마나 이치에 맞게 잘하시는지...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자'로 끝나는 이름을 보면

"아니, 예쁘고 세련된 이름이 얼마나 많은데~ 요즘 누가 이름을 저렇게 촌스럽게 짓니? 부모들이 애들 이름을 왜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막 지어 그냥!" 라며 그 부모들(본인의 돌아가신 부모님 포함)까지 소환하여 열을 내곤 하셨다.

결국 엄마는 정식으로 개명은 못하셨지만, 어디에 나가서 이름을 댈 때에는 본인이 평상시에 갖고 싶었던 다른 이름을 사용하셨다. 그래서 굳이 주민등록증을 낼 필요가 없는 모임이나 교회에서는 아무도 엄마 이름이 '장○자'라는 걸 모른다. 그만큼 그 이름이 싫었던가 보다.

엄마가 앞장서는 바람에 같은 '자' 자 돌림이었던 독수리 오자매 이모들까지 덩달아 그 시절 유행하던 예쁜 이름으로 바꾸어 버렸다.

비공식적으로.... 내가 정말..... 못살아.....


아무튼 그런 우리 엄마가 제일 잘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사업이었다.

이른바 '도둑 사업'


아빠 병원은 지하 물리치료실부터 4층 입원실까지 총 5층 건물이었는데, 막판에 홀라당 말아 잡수시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수시로 드나들며 돈을 빌려 가기도 하고, (그중 못 돌려받은 게 태반이지만), 기부를 받아가기도 했는데, (아빠가 가끔 좋은 일을 하기도 했다. 형편이 어려운 환자를 공짜로 치료해 준다던가, 기독교 학교 테니스부를 후원한다던가) 원래 기분파이기도 하고 옆에서 엄마가 부추긴 탓도 많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식당 아주머니, 간호사포함,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원장실뿐 아니라 안방 내실까지 드나들 수 있었다.

병원은 집과 떨어져 있지 않고 언제나 아빠가 진료나 수술 후 사이사이, 잠깐 씩 쉴 수 있게 진료실과 안방 내실이 이어지게 지어진 구조였다.


엄마가 병원에 내려가보면 원장실에 딸려있는 안방 금고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는 상태였단다. 누구나 금고 안에 현금이 환히 보이게... 아빠 사전에 '문단속'이란 없는 단어이다. 나쁜 마음만 먹으면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는 고도의 심리 테스트가 아닐 수 없다.


엄마는 그때부터 조금씩 금고를 털기 시작했단다. 물론 없어진 현금이 얼마인지 눈치챌 아빠도 아니었지만 너무 티가 나면 안 되니까 한번 내려갈 때마다 얼마 정도 빼내는 식으로 ㅎㅎ, 이걸 우리 모녀는 '사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전화로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내가 "엄마, 이번에 사업은 잘 됐어?" 하면 엄마가 "이번엔 좀 어려웠어"라던가 "이번엔 판을 좀 크게 벌였어"라며 웃었다. 사실 엄마의 생각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빠의 헤픈 씀씀이와 퍼주기 좋아하고 이용당하기 쉬운 성격으로 봤을 때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떼처럼 달려드는 아부꾼들의 성화에 쪽박 차기 십상이라던 예상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 도둑사업의 결과, 비록 허무하게 병원을 날리게는 되었지만 남들이 걱정할 정도의 경제적 어려움은 피할 수 있었었다. 역시 여자는 지혜로워야 하고 여자의 힘은 위대하다는 걸 엄마를 보고 배웠다.


'대학 못 나왔다고 기죽어있던 엄마여! 이름 끝자가 '자'이면 뭐 어때?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떡하니 병원을 세웠으나 바람피워 가정을 배신하고 보증으로 재산을 날린 아빠보다 백배, 천배 위대한 진정한 여장부였음에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시게!!!!'


비록 후에 그동안 아빠의 통장에서 매달 불륜녀에게로 생활비 명분으로 돈이 빠져나간 걸 알게 되어, 다시는 욕 할 일 없을 줄 알았던 아빠에게 '원 모어 타임' 피가 거꾸로 솟아 욕을 바가지로 퍼부었지만...

그러고 보니 사람이 욕을 먹으면 오래 산다고 했는데 그것도 사실이 아니네?


한때는 엄마를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아빠의 외도... 나에게도 감춰줬으면 했었다. 물론 나중에야 어떻게든 알게 됐겠지만... 감당하기 너무 어린 나이였다. 왜 그랬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엄마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 딸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엄만 너 없으면 안 돼"

그걸로 됐다. 엄마의 절박함이, 사랑이... 전해졌다

.

엄마와 나는..

엄마가 나이고... 내가 엄마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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